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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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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환율이 급락하면 경제가 불안하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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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경제회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내수가 침체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성장을 이끌고 있는 수출마저 부진하게 되면 그만큼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이다.


반면 1997년의 외환·금융위기 당시에는 원·달러 환율의 급등이 많은 사람들을 한숨짓게 했었다. 그해 여름까지만 해도 1달러에 800원대 후반에 머물던 환율이 겨울 한때 1,900원대까지 치솟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국가 전체적으로 달러표시 국부의 크기가 절반 가까이 줄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다음 해에는 6,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화를 빌려 쓰고 있던 기업 입장에서도 갑자기 외채부담이 크게 늘어 경영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해외유학생을 비롯한 개인들도 해외여행 또는 현지생활에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그때와는 반대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반겨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은 것을 보면 환율 변동은 상승이건 하락이건 간에 경제안정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환율은 크게 '명목환율'과 '실질환율'로 구분할 수 있는데 최근 환율의 하락은 명목환율이 하락하는 것이다. 명목환율에 외국의 가격수준을 곱하고, 이를 다시 국내 가격수준으로 나눈 값이 실질환율이라고 할 수 있다. 명목환율은 외환시장의 수급상황에 따라 단기적으로 결정되는 것이고, 실질환율은 국내외 경기상황에 따른 가격수준의 변화가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소 장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할 변수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국내외 가격수준의 조정이 쉽지 않으므로 명목환율의 하락은 실질환율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명목환율 하락은 해외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단기적인 가격상승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국내가격이 1,200원인 상품은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일 때 미국시장에서 1달러로 표시되지만, 원·달러 환율이 1,000원으로 낮추어짐으로써 가격이 1달러20센트로 20% 상승하게 된다. 즉 명목환율의 하락으로 우리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지게 되며, 이에 따라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1달러였던 수입상품의 국내가격은 1,2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아지기 때문에 수입이 증가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와 같이 환율의 하락은 수출을 감소시키고 수입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전체적인 교역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환율 하락이 경제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실질환율의 하락은 우리 경제의 상대적 안정성을 나타내는 신호라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의 원·달러 환율 하락은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기록적인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데 기인한다. 물론 이러한 쌍둥이 적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정부가 의도적으로 약한 달러를 용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달러화의 약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경제의 상대적인 취약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미국경제의 안정성에 대해 의문을 품은 투자자들이 미국 이외의 다른 투자처를 찾으면서 우리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등 다른 화폐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환율 변동은 국가간 경제상황의 상대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환율 변동 자체가 경제안정을 해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다만 단기간에 환율이 급격히 변동하는 것은 경제주체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명목환율이 갑작스럽게 상승하면 수입원자재를 많이 필요로 하는 기업들에게 어려움을 준다. 반대로 명목환율이 갑작스럽게 하락하면 수출시장에 의존해 있는 기업들에게 어려움이 발생한다. 또한 이러한 환율의 급등과 급락이 반복되면 불확실성이 높아져 경제안정을 해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종종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으며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외환시장의 개입목적은 어디까지나 환율 변동 속도의 조절에 국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수출경쟁력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무리하게 외환시장에 개입해 오히려 외환시장의 안정을 해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물론 내수가 극도로 부진한 상황에서 수출마저 부진하게 되면 국내경기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달러약세는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원화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이를 저지하는 것은 무리이다. 지금과 같이 환율 하락이 대세인 시기에 이를 막으려고 섣불리 개입한다면 귀중한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어정쩡한 수준에서의 환율 방어는 오히려 나중에 더 큰 폭의 환율 변동을 불러 경제안정을 해칠 수도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는 환율에 있어 지금과는 반대의 상황에 있었다. 당시에는 수년간 누적된 무역적자로 인해 원화가치의 하락이 불가피한 시기였다. 따라서 원·달러 환율의 상승이 대세였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저지하려다가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본 것이다. 현재 우리는 매년 수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외환보유고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달러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원·달러 환율의 하락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기에 인위적인 정책으로 이를 저지하거나 방향을 전환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또 한 번의 정책 오류를 야기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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