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지난자료

KERI 지난자료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전문가 칼럼

규제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보장한다?

08. 4. 30.

4

안재욱

금융규제의 목적은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동안 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해 수많은 규제를 해왔다. 그러나 금융규제는 그 목적과는 달리 경쟁을 감소시켜 오히려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금융시장의 안전성을 훼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금기준, 검사·감독, 조기개입 및 적기퇴출 등의 건전성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믿음은 확고하다.


물론 자본금 규제는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금융시장의 안정성에서 매우 중요한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 문제를 완화시켜 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사 및 감독과 조기개입 및 적기퇴출 제도는 신중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금융당국은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는 금융기관을 과소 검사·감독하는 경향이 있다. 금융감독자는 이윤과 손실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확한 관련정보를 얻으려는 유인이 적고, 특정 금융기관에 대한 불리한 정보를 발표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적 압력을 받는다. 또한 자신이 감독하는 금융기관이 파산했다하더라도 감독자의 검사·감독 절차만 옳았다면 책임추궁을 받지 않는다. 설령 그 절차가 옳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감독자에 대한 처벌은 비교적 관대하다. 따라서 금융감독자가 금융기관의 부정을 찾아내거나 허위사실을 밝히는 데 그렇게 큰 유인을 갖지 못한다.


몇 년 전에 발생하였던 ‘신용카드 대란’이 이를 잘 증명한다. 380만 명의 신용불량자와 260조 원의 가계부채를 초래하고, 카드빚에 몰린 일가족이 자살하는 사태가 속출하는 등 우리 사회에 엄청난 폐해를 끼쳤던 '신용카드 대란'에 대해 부실한 관리감독의 책임을 물어 감사원이 취한 조치는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3개 기관에 대해 주의경고를 내리고, 당시 감독책임자였던 금감원 부원장 1인에 대해 인사조치를 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렇게 무책임한 규제당국의 행태는 이번만이 아니다. 1997년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금융위기의 주 원인제공자의 하나로 주목받았던 종금사, 종금사의 외화차입은 당시 재정경제원의 승인사항이었다. 따라서 종금사의 금융 흐름은 금융당국이 충분히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던 분야였고, 업무정지 등의 강경한 조치로 그 부작용을 차단하는 것이 가능했는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던 한보와 기아사태 등의 금융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금융기관에 대해 정부 감독기관들이 검사와 감독을 철저히했다면 금융위기와 같은 초유의 사태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기관은 금융기관의 인사권과 자산운용의 의사결정권에 개입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지 경영성과에 대한 검사·감독에는 매우 소홀하였다. 더욱이 종금사와 한보·기아사태와 관련하여 금융기관에 대한 부실 검사·감독에 대해 책임을 진 정부 관리가 없었고, 그로 인해 문책받은 정부관리들도 거의 없었다.


조기개입과 적기퇴출 제도는 자본금의 등급을 나누어 등급이 낮아질수록 정부개입의 강도가 커지게 되는데, 자본금이 각 기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금융기관의 자산이 재편성되거나 청산되는 제도다. 이 제도의 존립 의의는 조기개입과 적기퇴출의 이익이 금융기관을 감시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경제적인 이유보다 정치적 과정에 의해 집행되는 경우가 많다. 금융기관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을 일반 대중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 금융기관은 규제당국에게 자신의 문제가 일시적이며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며 규정적용을 완화해 줄 것을 요청한다. 반대로 실제로는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데도 여론화되어 일반 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경우, 규제당국은 금융기관을 퇴출시킴으로써 자신들이 대중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어느 때는 과잉규제를 하고 어느 때는 과소규제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제도는 규제자의 관용이 많이 작용한다. 자본금이 낮은 등급으로 떨어질수록 규제당국은 금융기관을 처리하는 문제에 더욱 망설이게 된다. 특히 퇴출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1998년 6월 금융감독위원회가 대동, 동남, 동화, 경기, 충청 등 5개 은행에 대해 퇴출초치를 단행했다. 이때 가장 부실한 금융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던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을 퇴출시키지 않고 존립시켰다. 게다가 최근 부실 카드사들을 퇴출시키지 않은 것은 정부의 조기개입과 적기퇴출 정책이 정치적 결정과 규제관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검사감독과 조기개입 및 적기퇴출 제도와 같은 건전성 규제는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한 효과적인 제도가 아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힘에 의존하기보다 시장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바람직하다.


시장의 힘에 의존케 한다는 것이 정부가 금융시장에서 손을 떼라는 말은 아니다. 지금과 같이 정부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제고한다는 명분 하에 금융기관에 대해서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역할을 하라는 말이다. 규제당국은 조직과 기능을 축소하고 최저자본금, 자기자본비율 등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필요한 기본원칙이 잘 지켜지는지의 여부만을 검사· 감독해야 한다. 그리고 규제당국의 역할은 투자자나 예금자들에 의해서 금융기관이 감시·감독될 수 있도록 금융기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 시장에 공개하는 서비스에 충실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금융기관은 시장의 힘에 의해서 규제되어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며 금융시장은 안정될 것이다. 또한 금융기관은 경쟁적 시장에서 고객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jwan@khu.ac.kr)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