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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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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수도권을 규제하면 균형발전이 이루어지나?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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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준

최근 176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방침이 확정되고 난 후 수도권 규제 완화를 둘러싼 중앙정부와 수도권 지자체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중앙정부는 전 국토의 균형발전을 온전히 이루어내려면, 행정도시 건설과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야 수도권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이른바 ‘先 지방발전, 後 수도권 규제 완화’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경기도 등 수도권 지자체와 기업들은 수도권 규제가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당장 4조 원의 대기업 투자가 수도권 규제로 묶여 있는 만큼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역간 고른 발전’이 사회통합과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인식에 따라 ‘국가균형발전’을 최고 국정과제의 하나로 설정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가 심각하다는 전제하에 수도권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가하여 사람과 자본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 첫 번째 골격이고, 전국 16개 시도별로 특화된 전략산업 클러스터를 육성하여 지방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줄기이다.


‘모든 지역이 골고루 잘사는 사회’라는 균형발전의 목표에 대해서는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균형발전이 정치적인 공감대일 뿐 경제적인 의미에서는 달성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데 있다. 지역균형발전은 전혀 동질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동질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오류를 내재하고 있고, 균형발전 정책이 지향하는 형평·평등·분산 등의 정치적 가치가 집적과 효율을 중시하는 경제적 가치와 상충될 가능성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수도권을 막으면 지방이 발전하는가


균형발전의 수단으로 수도권을 규제하는 것은 수도권으로의 자본집중을 막으면 그것이 다른 지방으로 가기 때문에 지역간 균형있는 발전이 이루어지고 소득의 분배가 평등해지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현재 세계경제에는 국경이 없다. 자본과 노동의 국가간 이동이 자유로운 개방경제의 현실에서는 수도권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자본이 지방으로 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기업 여건이 더 좋은 해외의 다른 도시로 가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국내에서 최적의 투자대상 지역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투자를 하지 않거나 아니면 해외투자를 통해 자본이 유출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수도권 공장총량제 피해사례 연구에 따르면, 총량규제로 인해 수도권 공장건축이 무산된 시점에서 대부분(81%)의 기업들은 장래에 다시 신청하기로 하였으며, 17%가 사업을 포기·축소하거나 해외이전을 추진하였고, 단 2%만이 지방이전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자본의 경우에는 더더욱 지방으로 갈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아예 국내에 유입되지도 않는다. 덴마크의 세계적 완구기업인 레고(Lego)그룹은 1997년부터 경기도 이천지역에 20만 평 규모의 세계적 테마파크를 2억 달러를 들여 설치하려고 했으나 수도권 입지규제에 막혀 결국 좌절되었다. 이천에 들어오려던 이 테마파크는 2002년 독일 뮌헨 인근에 ‘Lego-Land'라는 이름으로 세워져 한 해 130만 명의 유럽인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땅을 치고 안타까워 해봐도 소용없겠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런 사례가 여전히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억제를 찬성하는 측은 런던과 파리, 도쿄의 수도권 집중억제 사례를 많이 인용한다. 이들 대도시가 한때 강력한 수도권 집중억제 정책을 실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규제로 인한 부작용과 국제적 여건 변화로 집중억제 정책을 대부분 폐지하였고 오히려 수도권을 경제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런던과 파리는 이미 1980년대 중반 수도권의 공장허가제와 사무실허가제를 폐지하고 로마,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브뤼셀 등 유럽 각국의 수도들에 맞서 유럽연합(EU)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강력한 집중전략을 펴고 있다. 일본 또한 2002년에 수도권 기성시가지 공업제한 법률을 폐지하고 도쿄의 경쟁력이 일본의 국가경쟁력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도시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수도권 억제에 대한 선진 외국의 공통된 경험은 규제 중심의 집중 억제책이 당초 의도한 인구분산이나 지역균형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경제발전의 속도를 늦추고 국가경쟁력 저하를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자국 수도에 대한 강력한 입지규제의 편익은 자국의 지방도시가 아닌 경쟁국의 도시로 가게 되고, 이러한 규제의 폐해는 고스란히 자국에 되돌아온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셈이다.


인위적 육성으로는 지방발전 없다


두 번째로, 정부가 어떤 지방에 특정산업을 일으켜 지역발전을 도모하고자 해도 그것이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면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경제활동의 지리적 분포에 관심을 쏟아온 신경제지리학파는 ‘정부가 특정한 지역에 특화된 산업을 인위적으로 육성한다고 해서 그 지역이 산업의 집적지가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정부의 인위적 개입에 의한 집적 형성이 수확체증에 의해 발생하는 시장의 자연적 집적과 합치되지 않을 경우에는 궁극적으로 해당지역에서 산업의 성장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형평성 측면에서도 지역분산 정책이 가져오는 결과가 그리 명확하지는 않다. 오히려 집적을 증대시키는 정책이 전반적인 성장률을 높임으로써 낙후된 지역에도 오히려 도움을 주었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되고 있다. 실례로 우리가 지난 30여 년간 지역형평을 위해 쏟아부은 천문학적 예산은 특별한 성과도 없이 모두 ‘형평’이라는 블랙홀에 잠식되어 버렸다. 지역정책 분야에서 가장 앞선다고 평가되던 유럽도 지역정책이 형평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기대하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였지만 어느 부분도 성과를 거두지 못함으로써 기존의 지역정책을 재검토하는 실정이다.


균형발전의 열쇠는 진정한 지방분권


‘모든 지역이 골고루 잘사는’ 균형발전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정책목표임에 틀림없지만 그만큼 실현되기도 어려운 과제이다. 지역간의 격차가 엄연한 상태에서 수도권 규제를 풀면 사람과 자본이 서울로만 몰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방은 영원히 발전하지 못하리라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하지만 규제를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려는 시도는 국가경쟁력의 저하만을 초래했다는 것이 선진 외국의 공통된 경험이다. 지역균형발전은 행정적, 재정적 분권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수도권 집중 억제를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권력과 예산을 움켜쥐고 지방의 발전방향을 재단하고 재원을 분배해 주는 방식으로는 결코 지방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지방에 실질적인 결정권한과 재원을 주어야만 지방정부가 지역의 특성에 맞는 발전을 이루어나갈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은 정부의 규제와 인위적 육성 정책보다는 지방이 스스로 성장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단추는 중앙정부가 움켜쥐고 있는 법령과 예산, 사람에 대한 권한을 지방에 넘겨주어 지방이 자신의 힘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임상준 (국무총리실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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