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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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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이제는 농지규제를 풀어야 할 때

08. 4. 30.

1

정기화

조선을 건국한 정치세력에게 토지제도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백성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에게 자기 소유의 농지를 갖게 하는 것은 민심을 얻는 주요 수단이었으며 반대세력의 경제적 기반을 빼앗는 효과적 방법이기도 하였다. 이를 통하여 농업생산이 증가하면 재정도 튼튼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농민에게 분배된 토지가 시간이 지나면서 경작자의 손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토지의 매매금지였다.


모든 토지는 국가가 관리하며 농민에게는 경작을 할 수 있는 권리만 주어졌다. 경작을 할 수 없으면 국가에 반납하고 이러한 토지는 다른 농민에게 주어졌다. 농민들은 사사로이 토지를 매매할 수 없었다. 매매가 이루어지면 토지가 경작자의 손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지의 매매금지는 조세징수비용을 줄이는 장점도 있었다. 납세 의무자를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토지의 매매금지는 농민적 토지소유를 확립할 수 있는 그럴듯한 제도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얼마가지 않아 정책 입안자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개인들의 다양한 이해와 잘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농민들 스스로 다양한 이유로 농지를 매매하였다. 부채를 진 농민들은 부채를 갚기 위하여 농지를 팔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토지를 소작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질병이나 징병 등으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된 농가는 농지를 반납하기보다 소작을 주는 게 이익이었다.


관료들이 농지매매를 철저히 단속하여 처벌하면 농지매매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관료들도 이웃 농민들의 형편을 외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부패한 관료들은 눈감아주고 이익을 챙기기도 하였다. 농지의 매매가 농업생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토지의 매매를 통하여 농업경영능력이 뛰어난 농민들의 토지소유가 늘어나면 농업생산이 늘어날 수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농지의 거래는 점차 증가하였고 소작인도 증가하였다. 조선정부는 여러 차례 이러한 흐름을 되돌리려고 노력하지만 토지에 대한 개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조선정부는 농지에 대한 규제를 포기하고, 단순한 징세권자로 머무르게 된다.


농지규제가 다시 살아난 것은 해방 후 농지개혁을 통해서이다. 농민들에게 농지를 소유하게 하는 것은 국민들의 대대수를 차지하는 이들의 정치적 지지를 얻는데 중요하였다. 그래서 경자유전의 원칙이 재천명되고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되고 만다. 아울러 농지의 다른 용도로의 사용도 규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농지 규제정책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농지개혁 직후부터 다양한 이유로 농지의 매매가 이루어졌고, 소작이 다시 부활하였다. 정부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지만 이를 되돌리기에는 힘이 부쳤다. 그래서 제한적이지만 농지의 임대차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농지에 대한 규제는 농업생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농지에 대한 각종 규제는 효율적인 대농의 출현을 막는데 일조하였다. 농업경영은 기술수준이나 거래관행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이것은 효율성을 제고시킨다. 소작제도 역시 때에 따라서는 생산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 소작방식이라고 하더라도 계약을 통하여 농업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영농방식이 채택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농지에 대한 각종 규제가 농민들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농지는 농민들에게 주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농지규제는 농지 가격을 낮추어 자산으로서의 농지가치를 떨어뜨렸다. 그래서 논 가격이 용도변경이 쉬운 주변의 황무지보다 싼 경우가 흔하게 발생하였다. 정부는 농민들의 불만을 쌀 가격의 유지를 통하여 무마하려 하였지만 이제 이마저 쉽지 않다.


식량의 ‘자급자족’이라는 명분으로 농지를 규제하는 것은 비효율적일뿐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다. 그것은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농업도 세계적인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쌀 시장개방과 관련하여 발등의 불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부가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제는 농지제도에 대한 과감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지제도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풀어 농지에 대한 자유로운 매매가 가능하여야 한다. 그리고 농지의 용도제한도 외부불경제가 없는 한 풀어야 한다. 식량의 ‘자급자족’이라는 명분으로 농업에 부과된 각종 부담을 덜어주어 농민들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아울러 헌법 제121조 제1항에 명시되어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도 향후 개헌 시에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기화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ckh8349@chon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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