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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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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한국기업이든 미국기업이든 경쟁법의 대상이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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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지난 2006년 9월, 한미 FTA 3차 협상을 앞두고 새로이 부상한 이슈 중 하나는 미국측이 경쟁분야 협상에서 요구한 한국 대규모 기업집단 관련 조항의 신설이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되었던 바에 따르면 미국 협상단은 “대규모 기업집단이 반경쟁적 거래행위에 대한 경쟁법상의 규제대상이라는 점을 보장한다”는 규정을 협정문 제1조의 각주사항으로 삽입할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미국이 이러한 조항의 명문화를 요구하였다는 점에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6차 협상에서도 미국측은 여전히 이 조항의 삽입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는 경쟁제한행위에 대하여 위반주체가 대기업집단이든, 중소기업이든, 외국인 기업이든 구별하지 않고 사건의 심사·처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처벌조항도 매출규모가 클수록 더 많은 과징금이 부과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렇게 정비되어 있는 제도에 의하여 해마다 상당수의 부당한 공동행위, 불공정거래행위, 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행위가 시정되었다. 기업집단 단위의 경쟁제한행위로 대표되는 부당지원행위의 경우도 국내기업에 대하여 철저하게 심사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민간 기업집단의 위반행위 이외에도 공기업집단과 금융기업집단의 부당한 계열사지원행위를 적발하여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경쟁제한행위에 대한 심사·처벌 규정은 수렴해가고 있는 추세이며 한국도 이에 따라 법제도를 글로벌 기준에 맞추어 개선하여 왔다. 한국 경쟁당국과 여러 차례 국제회의를 가진 미국의 경쟁당국도 이러한 한국의 경쟁법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 협상단이 필요없는 조항의 별도 신설을 요구하는데 대해서 선뜻 납득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미국 협상단이 별도로 기업집단 규제조항의 명문화를 요구한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일부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 사건에 대한 불편한 심기로 인하여 미국측이 한국의 경쟁법이 외국기업에 대하여 편파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보다는 한국의 기업집단의 효율성을 약화시켜 한국시장에서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확보하고자하는 미국측의 전략적 판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한미FTA와 비교되곤 하는 미일구조조정(SII)은 미국이 1980년대 대규모 대일적자의 원인을 미일간 경제구조의 차이로 판단하고 일본의 제도를 뜯어 고치려고 시작되었다. 미일구조조정에서 미국측은 특별히 게이레츠(계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계열간 거래가 미국기업의 일본 진출에 장애가 된다고 주장하였으나, 미국측의 의도는 스탠포드 대학의 아오키 교수가 일본의 생산체제로서 극찬한 게이레츠의 효율성을 와해시킴으로써 자국기업의 경쟁력을 회복시키는데 있었다. 미일구조조정도 최종보고서를 작성하기까지 모두 다섯 차례의 협상과정을 거쳤는데, 미국은 제2차 협상에서 계열간 상호주식 보유제한을 요구하였고 제3차 협상에서 배타적 거래와 관련하여 일본 독점금지법의 개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한 요구는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결국 미국측은 일본측이 계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고 배타적 거래에 대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최종 합의하였다. 이러한 합의결과는 미국측이 협상과정에서 게이레츠(계열)에 대해 취하였던 강력한 태도에서 크게 물러선 것이었다.


미일구조조정은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고 두 차례의 연차보고서를 발간한 이후 1990년대 일본경제의 버블붕괴와 미국의 경제성장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미일구조조정은 자유무역협정보다 비공식성이 크고 구속력이 약하여 최종보고서의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측면이 강하였다. 반면에 자유무역협정은 공식적이고 구속력이 있는 국제협정이다. 재벌규제 조항을 공식화시킨다면 한미간 무역마찰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의 전략적 도구로서 이용될 우려가 있다. 한국의 경쟁법은 1980년대 일본의 법제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미일구조조정 과정에서와 유사한 요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표부의 요구사항은 미국 경쟁당국조차 불필요한 조항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미국상공회의소가 미국의회를 통해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된다. 이러한 미국측의 의도를 고려하여 현명하게 협상에 임해줄 것을 한국대표단에게 당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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