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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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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연말정산에 바라는 것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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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해가 바뀌는 시기에 즈음해서 대부분의 근로소득자가 매번 해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연말정산이다. 연말정산이란 쉽게 이야기 하자면 연중에 대략 낸 근로소득세를 연말에 정확히 계산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납세자가 벌어들인 연간소득이 대개 연말이 되어야 명확히 파악되기 때문이다. 봉급생활자라고 해서 매달 받는 월급의 열두 배를 한 것이 한해의 소득이 되는 것은 아니며, 더욱이 성과급 등 월급 외의 다른 근로소득이 있는 경우에는 정산시점에 가야만 정확한 소득을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연말정산이란 한해의 소득이 정확히 파악되는 연말에 세금을 다시 계산하여 덜 낸 것이 있으면 더 내고, 더 낸 것이 있으면 이를 다시 돌려받는 것이다. 따라서 연말정산은 계산을 정확히 하자는 것이므로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소득이 정확히 파악되고 난 다음에는 세법에 규정되어있는 소득공제사항들을 따져보아야 한다. 물론 법에서 정한 세금보다 더 많이 내고 싶은 사람들은 이 과정을 안 거쳐도 될 것이지만, 대개의 경우 그리할 인센티브는 별로 없으므로 소득공제를 충실히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것이다. 소득공제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해당되는 관련서류를 챙기고 이를 계산, 정리해서 제출해야 한다. 납부할 세금은 이러한 공제과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데, 이러한 절세의 노력을 일컬어 소위 '세테크'라 부르기도 한다. 소득공제 항목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공제액수는 부양가족의 수, 구성원의 연령, 취학여부, 보험·예금 등의 금융상품,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 사용액 등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영수증 등의 관련서류가 있어야 하며, 계산을 위한 수고가 추가되어야 한다.


연말정산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점은 이러한 과정들이 다분히 복잡하고 번거롭다는 것이다. 물론 달려들어서 하자고 치면 못할 정도로 어렵지는 않다 하겠지만, 적정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익숙한 사람의 조력없이 혼자 처리할 만큼 용이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번거로움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에 기인한다. 첫째는 용어의 생소함 때문이다. 연말정산을 처음 해본 사람은 물론이고 몇 번씩 해본 사람도 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1년에 한 번씩 해보게 되니 그 전에 알았던 용어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돈’이라는 실리가 걸려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혹시 실수로 손해를 보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물어보고 확인하는 불편도 따르는 것이다. 둘째는 소득공제의 항목의 처리에 관련된 번거로움 때문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나 보험료 공제 등은 해당회사에서 계산까지 다해서 보내주니 그다지 어렵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외의 학비나 병원비, 그리고 기부금 등과 관련된 증빙서류들은 납세자들이 일일이 다 요청하고 돌아다니면서 챙겨야 한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증빙서류를 발급받기 위한 수수료까지 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여 정부에서는 연말정산을 간단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보완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지만, 정산서류를 작성하는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그리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연말정산에 매달리는 대부분의 근로소득자들은 다만 얼마라도 돌려받을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며 이들은 기본적으로 성실납세자들일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근로소득자들은 흔히 유리지갑이라 할 정도로 소득이 투명하게 파악되는데다가, 그마저도 원천징수라는 제도 때문에 본인이 봉급을 받아보기 전에 세금부터 떼이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실납세자들에게는 연말정산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어떠한가 싶다. 이들은 세금 얼마 떼어먹자고 소득을 줄여서 신고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 혹시나 하는 걱정 때문에 의도적인 부정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득은 이미 다 파악되고 있고, 그 외의 사항들 역시 징세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파악할 수 있을 터이므로 과세자와 납세자 간의 상호존중(mutual respect)만 충분하다면 행정적인 절차를 단축하여 납세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성실납세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었으면 한다. 무릇 세금이란 나라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국가재정의 원천이다. 따라서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은 그만큼 나라살림에 기여하는 바도 큰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세금을 적게 내는 사람일수록 더 큰 목소리를 내는 비합리적인 현상이 발견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정치적·사회적인 또 다른 이유도 존재하겠지만, 세금을 안내거나 적게 내는 것이 자랑이 아닐 터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이들의 목소리는 항상 큰 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을 무슨 부정한 짓이나 한 듯이 매도하는 현상도 관찰된다. 반면, 열심히 연말정산서류를 작성하는 대다수 성실납세자들은 별로 말이 없다. 정부가 세금을 올리면 비록 내 맘에는 안들지라도 나라에서 꼭 필요해서 올리는 것이려니 생각하며 선선히 따르는 이가 대부분이다. 기실 세금은 내지도 않으면서 목소리만 큰 사람들과는 나라살림에 기여하는 정도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 덕택에 국가살림이 무리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에 상응하는 대접정도는 해주어야하지 않나 싶다. 원래 조용한 사람들이 더 무서운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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