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금융전문인력 양성의 필요성과 그 방법에 관한 제언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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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석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을 주도할 것이고 따라서 고급과학기술의 인력확보가 경제발전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할 핵심 과학분야로 IT, BT, NT를 지목하고, 여기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왔다. 최근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는 이러한 정책의 괄목할만한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경쟁력의 고취를 위해 IT, BT, NT의 전문인력 양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금융전문인력의 양성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금융전문인력의 중요성 및 부족상황을 일찌감치 인지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외국과는 달리 금융전문인력의 실제적 양성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금융산업을 이끌 핵심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금융전문대학원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외국에서는 금융산업을 과학기술의 한 분야로 인식하고, 금융공학 또는 금융기술(Financial Technology: F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금융기술 교육 및 연구에 전력 투구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상품은 구조화 경향을 띠면서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며, 하나의 금융상품의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수학, 통계학, 물리학적인 지식이 총동원되어야 한다. 실례로 독일의 한 은행의 리스크부서에는 수백 명의 수학 박사와 물리학 박사가 일하고 있고, 미국 월스트리트의 대부분의 금융인력은 수학과와 물리학과 출신이며, 신용위험시스템 회사에도 백여 명의 수학 및 물리학 박사가 고용되어 있다. 이쯤되면 금융공학 또는 FT라는 단어의 사용이 전혀 어색함이 없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금융기술수준은 아직까지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의 경제현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많은 혜택을 보장해주면서 외국금융회사의 투자를 유치하였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금융회사는 국내금융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금융기술을 이용하여 구조조정, 부동산 등의 분야에서 많은 이득을 누려왔다. 예를 들어, 최근 리딩증권과의 합병이 무산된 브릿지증권의 최대주주인 BIH는 유상감자와 사옥매각, 고액배당을 통해 투자자금을 회수하였다. 또한,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일은행을 인수한 NBC은 매각차익으로 1조 1천 5백억원, 한미은행을 인수한 Carlyle은 매각차익으로 7천억원 정도를 가져갔다. Sovereign 또한 SK에 대한 투자로만 1조원에 가까운 평가차익을 냈으며, 삼성물산 지분매각 과정에서 Hermes는 단기간에 2백억원 정도의 차익을 남겼다. 최근에는 국내 소주시장의 약 55%를 차지하고 있는 진로매각에서 Goldman Sachs는 1조원대 이상의 시세차익을 남긴 사례도 있었다. 이런 예들은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자산가치평가에 대한 기술이 외국금융회사들에 비해 어느 정도로 낙후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기술의 낙후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유형의 사례는 '97년 SK증권ㆍ한남투신ㆍLG금속 3개사가 역외에 설립한 다이아몬드 펀드 사건을 들 수 있다. J.P. Morgan이 '97년 다이아몬드 펀드에 투자자금을 대출해줌으로써 인도네시아 루피아연계채권을 사도록 하고 동시에 신용파생상품인 변형 TRS(Total Return Swap)를 거래했다. 다이아몬드 펀드는 3천 4백만 달러의 자본금과 J.P. Morgan에서 차입한 5천 3백만 달러 상당의 엔화를 동원해 루피아연계채권을 매수하였으나, '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사태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루피화를 포함한 동남아 통화가 폭락하면서 다이아몬드 펀드는 투자원금은 전혀 받을 수 없었고, 파생상품거래로 인해 오히려 1억 8천 9백만 달러를 J.P. Morgan에게 지불해야 했다. J.P. Morgan은 다른 국내금융사들의 역외펀드와도 비슷한 거래를 했고, 결국 J.P. Morgan의 신용파생상품과 관련된 국내 전체 피해액은 총 16억 달러(약 2조원)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이 변형 TRS(Total Return Swap)의 구조에 대한 분석능력과 위험관리능력을 갖지 못했기에 피해를 본 사례다.
이 뿐만 아니라 삼성ㆍ현대ㆍLG 등 국내 유수기업들이 애써서 기술개발과 상품생산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면, 외국금융사들은 정보와 금융기술을 이용해 금융시장에서 그 이익을 수확해 가고 있다. 외국금융사는 준법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었겠지만, 우리 금융사들이 정보 및 금융기술의 부족으로 인해 우리 기업들의 수익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외국금융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금융사들도 고급금융기술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따라서 금융전문가들의 양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외국금융사들이 현재의 금융기술을 갖추게 된 것은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금융기술의 중요성을 조기에 인식하고 증가하는 금융전문인력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주요 대학마다 '90년대 초부터 수학과, 통계학과, 산업공학과, 경제학과, 경영대학원 등에 금융공학과정을 각각 또는 통합과정으로 개설하고 전문화된 금융산업인력을 양성ㆍ배출하고 있다. 최근 금융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KAIST, 연세대학교, 수원금융공학대학원 등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개설하고 있으나 금융산업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까지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금융전문대학원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에서 경쟁을 억제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해야 한다. 경쟁적인 환경 하에서만 금융사들은 생존하기 위해 금융기술인력을 갖추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전문대학원들은 금융공학과정을 설계할 때 현실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금융상품 및 전략의 수학적 원리 등 기초원리의 교육에도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금융공학에서 금융경제학적인 논리적 전개를 위해서는 수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교육을 통해서만 복잡한 구조를 지닌 금융상품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신종 금융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외국금융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 알고 있어서는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금융전문인력의 창의력 배양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기초원리 교육에 좀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국내에 유능한 교수인력이 부족하다면 적극적으로 해외교수인력을 채용해서라도 금융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금융전문대학원이 조속히 그리고 많이 설립되어야 한다. 우리 IT, BT, NT가 맺은 결실을 지켜내는 파수꾼 역할을 우리 FT가 해내야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