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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행정수도이전 논의, 타당성 평가부터 차근차근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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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행정수도이전논의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부는 공청회라는 명목의 홍보대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해가며 속전속결 추진하고 있고, 여·야 정치권도 연일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각자의 득실에 따라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지역대립을 부추기고 있고, 집권여당의 대표는 수도이전반대는 일부 부유층과 기득권세력의 의견일 뿐이라며 계층적 편 가르기에 나섰다. 여기에 질세라 대통령은 수도이전을 정권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며 특유의 배수진을 쳤고, 그것도 모자라 반대의견의 제시는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과 불순한 퇴진운동이라며 몰아세우고 있다. 가히 수도이전을 놓고 온 나라가 지역, 계층, 정치성향에 따라 편 갈라 대립하는 갈등국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수도이전의 필요성은 ‘국토균형개발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덧붙여 현재의 수도권은 인구포화로 인하여 비정상이며, 결국 대외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왜 꼭 가야하는지, 왜 수많은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꼭 이전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하여 국민의 반 이상이 반대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로도 입증된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주장대로 가는 것이 옳고 꼭 가야만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정부와 여당이 총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 이상의 국민들이 수도이전에 대하여 수긍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체적이고도 합리적인 논거를 통한 설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수도이전논의는 이렇듯 가열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경제적 사안들에 대한 검토, 즉 타당성 평가나 재원조달방안에 대한 논의는 그리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 아무리 좋은 뜻에서 추진된다 하더라도 이것이 경제적으로 가능한(feasible)한 일인지, 궁극적으로 긴 안목에서도 국민과 국가에 이로운 일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것이다. 예컨대 비용문제만 해도 그러하다. 2년 전 대선당시 4~6조면 충분할 것이라 장담했던 소요비용이 최근에는 공식발표 상으로도 10배가량 불어났다. 일부에서는 100조가 훨씬 넘을 것이라는 의견도 왕왕 제기되고 있다. 개인이 이사를 할 때에도 비용이라는 제약조건하에 유·불리를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하는 것이 일의 바른 순서인데, 하물며 600여년 이상 지속했던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방대한 역사를 추진하면서 그 비용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천문학적 소요비용에 대한 재원조달 방법도 그야말로 막연한 상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재정지출의 수요는 날로 커지고 있다. 고령화의 급속진전에 따른 사회보장성 지출의 증가, 자주국방 실현을 위한 지출수요의 급증, 그리고 동북아 경제중심계획 등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대규모 국책사업 등 정부지출의 수요처는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이미 우려할만한 수준이고, 여기에 경기침체 양상도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아 세입의 획기적 증대 역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가용재원을 총 동원해가며 추경까지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돈 쓸 곳은 많은데 여력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천문학적 재원이 소요되는 사업이, 그것도 꼼꼼한 계획도 없이 추진되려 하고 있다. 어떻게 그 많은 소요비용을 감당하려 하는가? 아마도 특별한 묘안이 없다면, 수도이전의 비용은 늘 그래왔듯이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막중한 짐을 떠 맡아야할 국민들은 도대체 얼마나 소요되는지? 아니 보다 더 근본적으로, 왜 꼭 가야만 하는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재원이 무한정하다면 구태여 골치 아프게 이러저러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벌여놓고 돈을 쓰기만 하면 언젠가는 일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위 ‘계획’이란 것을 세우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재원이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몇 백억이 소요되는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데에도 수차례의 타당성 평가와 각종 검증과정이 꼼꼼히 수반되는데, 하물며 그 크기마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중대사에 제대로 된 타당성 평가가 없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왜 가야하는 지, 왜 꼭 이렇게 서둘러 가야하는 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전 국민의 반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에게 가는 것이 좋으니 무조건 가야한다고 강요하지 말았으면 한다. ‘왜?’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불순하다고 몰아세우고 윽박지르지 않았으면 한다. 그 엄청난 이전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끔, 그래서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는 비용부담을 기꺼이 떠안을 수 있도록 먼저 설득하는 것이 일의 바른 순서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 논거가 필요하다. 과연 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또 갈 수는 있는 것인지, 비용 효과적인 또 다른 대안은 없는 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타당성 평가부터 차근차근 수행해야할 필요가 있다. 입지가 선정되었으니 구체적인 경제성 분석이 수행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었다. 비용을 꼼꼼히 챙겨보고, 사업추진으로 얻어지는 유무형의 편익도 산출해 내야한다. 또한 장기적 안목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대안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찾아봐야 하는 것이다. 고뇌의 흔적이 없는 설득은 그 힘이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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