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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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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은행의 경쟁력은 경쟁에서 온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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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석

전통적으로 간접금융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서는 은행산업의 경쟁력이 경제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국내시중은행과 외국은행(국내지점)의 자기자본순이익률(ROE)을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 은행산업은 외국은행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2000-2002년 국내 외국은행의 평균 ROE가 13.1%이었던 반면, 국내 시중은행의 평균 ROE는 5.5%에 불과했다. 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 시중은행에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 은행들의 경쟁력은 훨씬 더 취약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은행경영의 자율성 보장과 은행의 업무영역 확대 등을 통해 은행들이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정착시키는 일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은행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경영자율성의 보장이다. 자율적 경영은 은행소유규제의 개선과 관치금융의 배제를 통해 가능하다. 먼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은행소유규제는 은행을 공공기업처럼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은행은 결코 공공기업은 아니다. 영국이 1987년 은행법을 개정하면서 은행소유규제를 대부분 철폐하고, 은행규제를 은행감독에 중점을 두는 제도로 전환시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와는 다르다. 그 이유는 은행이 기업의 사금고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우리나라의 독특한 반재벌정서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은행의 지배구조 및 은행감독 차원에 속하는 것들로서, 은행소유를 규제하는 것은 적절한 대응책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우려와 정서는 은행소유규제를 완화하는 데에 방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재경부에서 은행주식의 소유한도를 대폭 완화하려는 노력을 했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던 것은 그 예이다.


자율적 경영의 또 다른 방해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관치금융이다. 은행인사에 정부의 개입이 완전히 배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이것은 은행소유권의 분산과 정부의 은행지분 확대에서 비롯되지만, 관행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은 정부의 의지에 반하는 경영을 할 수 없다. 최근 정부가 은행권에 카드채 매입을 강요한 것은 이런 관치금융 현실을 잘 반영한다. 그러므로 은행인사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배제시키는 것은 시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은행지분을 매각하는 것도 은행의 자율적 경영을 도와주는 것이다. 정부는 수익을 목적으로 은행주식을 매입한 것이 아니었고, 최적매각시기도 사전적으로 알 수 없으므로 은행지분을 조속히 매각해야 한다.


둘째, 투자자들이 보다 용이하게 은행을 설립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은행설립자본금은 1000억원으로서 선진국 수준(영국: 1백만파운드, 미국: 1백만달러)의 약 70-80배에 달한다. 이렇게 높은 진입장벽은 은행산업 내의 경쟁성을 떨어뜨리고 기존 은행에 과점적 이윤을 보장함으로써 비효율적인 은행경영을 초래한다.


셋째, 은행간의 인수합병이 보다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효율적 은행을 M&A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전적으로 시장의 몫이며, 은행간 M&A의 실제적 진행은 해당은행간의 자율적인 과정이어야 한다. 규제상의 애로에 의한 합병의 포기나 정부의 간섭에 의한 합병의 성립은 바람직하지 않다.


넷째, 겸업화를 통해 은행의 업무영역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현재 은행이 자회사형태로 증권업에 진출한 것과 곧 시행될 방카슈랑스 제도는 업무영역을 소극적으로만 확대한 것이다. 적극적인 업무영역의 확대는 은행을 겸업은행(universal bank)화하여 은행업, 증권업, 보험업을 한 금융기관에서 취급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겸업은행의 출현은 기관투자가들이 취약한 우리 금융시장의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다. 겸업에 대한 규제가 없는 유럽이나, Gramm-Leach-Bliley법에 의해 1999년에 은행업과 자산운용업의 겸업을 허용한 미국의 예는, 겸업화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한다.


다섯째, 은행감독기관들은 은행들의 차별화에 의한 경쟁, 경쟁에 의한 차별화를 촉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감독기관들이 은행들을 차별화하는 정보를 시장에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차등예금보험제도에 입각한 은행의 보험요율 등, 은행의 위험도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제공하는 것은 그 예가 될 것이다. 이런 지표는 고객들의 자금이동을 초래할 것이며, 은행들의 고객유치노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여섯째,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은행감독체계가 운영되어야 한다. 은행감독은 금융환경이 복잡해짐에 따라 금융위험에 대한 전문성을 갖춰야 하고, 규제유예나 과잉감독이 나타나지 않도록 정부정책과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은행감독체계가 결여되어 있을 경우 앞에서 언급한 제도개선책들의 효과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상의 제안은 은행산업의 제도개선을 은행산업의 경쟁환경 정착이라는 관점에서 고려해본 것이다. 우리나라의 은행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은행들의 치열한 생존경쟁, 이에 따른 은행의 차별화 및 고객자금의 이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다드의 도입을 추진해온 정부는 은행산업의 경쟁환경을 위한 제도개선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의해야 할 것은, 은행간의 경쟁행위가 고객에 대한 사기나 강제를 포함하지 않는 한, ‘과도한’ 경쟁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취급하는 반경쟁정책을 사용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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