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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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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은행은 마음씨 좋은 공공기관?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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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석

최근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논의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당시에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은 금융기관, 특히 은행이었다. 정부는 경제개발 계획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을 공공기관처럼, 아니 ‘정부 산하기관’처럼 이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그때와는 많이 변했다. ‘은행의 공공기관화’는 독재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 은행 경영을 좌지우지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이것은 최근 정부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개발시대의 사고방식


2003년 말 카드회사들의 부실로 인해 카드회사의 회사채를 매입한 금융기관들이 전전긍긍하고 금융시장이 출렁일 때 LG카드는 그 핵심에 있었다. 다른 카드회사는 모기업에 흡수되거나 모기업의 지원으로 문제를 해결했으나, LG카드는 규모가 매우 컸기 때문에 LG카드 회사채를 구입한 은행들의 금융 지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은행 수익을 이유로 LG카드에 대한 금융 지원을 거절했고 정부는 이를 매우 못마땅해 했다. LG카드 문제가 무사히 해결되지 못하면 대통령을 위시한 경제정책 담당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은행에 공공성을 자각하고 사익만을 추구하지 말라며 LG카드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결국 정부는 과거 금융 구조조정의 책임자를 경제 부총리에 기용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부총리도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했고, 이런 재정경제부의 ‘노력’으로 금융감독원과 국세청은 국민은행을 압박했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LG카드를 인수함으로써 문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김정태 행장은 결국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은행에 대한 국민의 태도 역시 정부와 다를 바 없다. 최근 금리가 하향 추세를 계속하고 있다. 은행들은 콜금리를 기반으로 하는 예금과 자금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다. 콜금리는 계속 하향 추세에 있기 때문에 은행들의 자금조달 금리도 하향 추세에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조달 금리의 변화만큼 대출 금리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은행들은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인 예대 마진을 확대함으로써 수익을 증대시켰으며 이것은 2004년도 은행권의 최대 수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언론이나 국민은 이것에 대해 크게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은행들이 국민의 어려운 생활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최근 은행들은 금융감독 당국의 압력과 여론에 밀려 수수료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정유회사들에 비난이 가해지는 것과 유사하다. 석유 수입 가격이 낮아졌을 때 정유회사들이 휘발유 가격을 그에 상응하는 만큼 내리지 않으면, 정유회사들이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긴다고 여론은 정유회사들을 비난하곤 했다.


은행산업 규제 장벽 걷어내야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은행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이나 은행에서 자금을 빌려야 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은행이 ‘마음씨 좋은 공공기관’이어야 한다. 예금자 입장에서 은행이 마음씨 좋은 공공기관이어야 한다면 예금 금리도 되도록 높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의 적당한 예대 마진은 얼마인가. 그것은 경제학 교과서를 비롯한 어떠한 책에도 적혀 있지 않다. 은행이 공공기관이라면 정부에서는 국립은행 또는 국책은행만을 남기고 다른 은행들을 없애야 한다. 그리고 수익도 거의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 예금자에게 높은 이자율을 보장하고 대출자에게는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예대 마진도 마이너스가 되는 것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세금을 은행원의 급여와 공공은행의 손실을 보전하는 데 써야한다. 다른 사람들의 세금을 예금자ㆍ대출자ㆍ은행원을 위해 써야 한다니, 얼마나 불공정한 일인가?


은행이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명제다. 이것은 위정자들이 옛 시절이 그리워, 또는 자기합리화를 위해 만들어낸 말이다. 은행은 기업이다. 다만 생산에 투입되는 것 중 중요한 것이 돈이고 주요 생산물이 돈이라는 것이 여타 기업과 다를 뿐이다. 기업의 특성은 경쟁 속에서 이윤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LG카드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국민은행의 수익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고 정부의 압력을 거부한 김정태 전 행장은 국민은행을 기업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 것이다.


우리가 비난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다. 왜냐하면 정부는 은행들이 경쟁하지 않고 높은 예대 마진을 누릴 수 있도록 은행 산업에 높은 진입 장벽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은행 최저 자본금이 100만 달러(약 10억원) 밖에 되지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의 은행 최저 자본금은 미국의 약 100배인 1,000억원이나 된다. 또 은행 소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때문에 자본가가 쉽게 은행을 설립하기도 어렵다. 이런 비경쟁적인 환경 하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은 허약한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고 예대 마진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취약한 수익구조를 보여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은행 역시 이윤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기업이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우리나라 은행들이 선진 외국은행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은행들이 자율적인 경영을 하도록 정부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은행 산업의 진입 장벽과 은행 소유 제한을 완화해 은행들이 서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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