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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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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다시 생각한다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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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자신의 물건을 구입해서 제3자에게 다시 팔려는 사람에게 물건 값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간섭을 하는 행동을 ‘재판매가격유지행위(Resale Price Maintenance)’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얼마 이하로는 판매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만약 이를 어길 경우 물건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하였다면 이는 ‘최저가격유지행위’에 해당한다. 반대로 얼마 이상으로 팔지 말라고 재판매가격을 통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최고가격유지행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저가격유지행위는 무조건 불법이고, 최고가격유지행위는 정당한 사유에 한해 위법이 아니다.

최저가격유지행위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불법(당연위법, per se illegal)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현행 규정은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기업들이 “일정 가격이상으로만 팔라”고 주문한다면 소매가격은 올라갈 것이다. 이는 곧 소비자가 고스란히 비싼 값을 치르도록 만든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이 같은 최저가격을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기업의 행동에 대해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라고 인식하고 불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런데, 과연 가격을 올리는 행위라고 해서 반경쟁적이라고 판단해야만 하는 것일까?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업체는 소매점에 직원을 파견하여 제품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반면, 같은 종류의 물건을 파는 다른 업체는 그렇게 하지 않는 대신 그 만큼 가격을 싸게 판매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고객들은 친절한 제품설명을 들은 다음, 가격이 싼 다른 업체의 제품을 구입하려 할 것이다. 즉, 싼 값으로 판매한 업체는 경쟁사의 서비스에 무임승차한 것이 된다. 이러한 무임승차 문제로 시장에는 친절한 서비스가 사라지게 되고 값싼 제품만이 유통될 것이다. 따라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서는 자사의 제품을 판매할 때 친절한 제품 설명을 곁들여 높은 가격을 유지하도록 요구하는 경영방침을 통해 고품질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즉, 최저가격유지행위는 무임승차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질적으로 다양한 제품 간 경쟁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게 해준다.

2007년 6월 28일, 미국에서는 제품의 가격을 올린다는 부정적 측면과 질적 경쟁의 촉진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가진 최저가격유지행위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바로 ‘리진 사건(Leegin creative Leather Products Inc v. PSKS Inc.)’이다. 리진사는 ‘브라이톤(Brighton)’이라는 상표로 여러 피혁제품을 만들어 온 회사로, 대형 유통점 판매보다 고객중심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판매점을 중시하고 있었다. 리진사는 브라이톤 제품을 할인판매할 경우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표명함으로써 판매자들에게 리진사가 제시한 최저가격에 맞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독려하였다.

브라이톤 제품을 판매하는 소매점 중에는 PSKS사가 보유한 ‘케이스 클로젯(Kay’s Kloset)’이라는 75개 점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케이스 클로젯이 브라이톤 제품을 20% 할인하여 판매하자, 리진사는 거래를 중단하였고 이에 PSKS사는 리진사를 재판매가격유지행위로 고소함으로써 사건이 시작되었다. 피고 리진사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1911년 의약품제조사인 닥터 마일즈(Dr. Miles)사가 도소매업자와의 계약을 통해 할인을 금지시키는 등 최저가격유지행위를 하였는데, 대법원은 이를 경쟁제한 행위로 규정하였다. 이 사건 이후 100년 가까이 최저가격유지행위는 당연위법으로 판결되어 왔으며, 리진사가 앞선 두 재판에서 모두 패소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모해 보였던 리진사의 상고는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졌으며, 100년간 적용되어 온 닥터 마일즈 사건을 뒤집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대법원의 결정은 수직적으로 가격을 제한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수직적 거래를 제한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판단에서 비롯하였다. 즉, 수직적 거래제한이 소비자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는 요인이 있듯이 수직적 가격제한도 소비자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논리이다.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여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에 거래를 거절하는 것은 부당한 행위가 아니라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며, 더 나아가서 시장의 위축을 방지하는 수단이다. 마찬가지로 리진사는 브라이톤이라는 피혁제품과 고객중심 서비스를 함께 판매하여 고급제품의 수요자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가격제한을 하였다. 이러한 경영방침을 당연위법으로 처리할 경우 케이스 클로젯의 무임승차 행위로 고품질의 서비스는 위축되고 시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법원은 바로 무임승차의 문제를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반트러스트법의 우선되어야 할 목적은… 브랜드 간 경쟁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지적하였다.

물론, 이번 미국 대법원의 판결은 최저가격유지행위가 무조건 합법이라고 인정한 것은 아니다. 최저가격유지행위를 했다고 해서 무조건 위법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행위의 영향을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위법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 이번 판결의 핵심이다. 최저가격유지행위의 위법성을 따져보기 위해서는 경제학적 분석이 요구된다. 앞선 두 번의 재판에서 거부되었던 전문가 증언(expert testimony)이 대법원 재판과정에 채택된 이유도 보다 논리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당연위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행정적으로 보다 편리할 수도 있다. 일률적으로 무조건 위법으로 판단한다면 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영향력을 분석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법원은 이러한 부분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하였다. 판결의 요지에서 “당연위법의 원칙이 행정상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채택되어서는 안 된다(A per se rule should not be adopted for administrative convenience alone)”고 밝히고 있다. 경제학자들의 분석을 토대로 한 양측의 공방은 매우 복잡하고 지루한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절차를 통한 판례의 형성이 가장 효과적인 문제의 해결방법이라는 점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은 최저가격유지행위를 당연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위법적이며 따라서 행정적 편의를 위해 당연위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행정적으로 편리하다고 해서 유지해야 한다는 논거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기술적으로 가격제한행위의 영향을 분석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당연위법으로 규정해 놓았던 제도를 분석기술이 향상된 현재에도 여전히 유지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대하여 당연위법이 아니라 합리의 원칙을 적용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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