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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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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정부, 교육 독점에서 손 떼야…

0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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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권

며칠 전 한 대선후보가 교육부문의 삼불정책에 대한 재검토 발언 후 삼불정책이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향후 대선과정에서 후보들 간 치열한 공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사회에는 유독 교육 평등주의가 팽배해 있다. 교육이 공공재라는 인식 때문이지만 교육은 공공재가 아니다. 공공재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시에 소비할 수 있는 불가분성, 한 사람이 소비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소비의 양이 감소하지 않는 비배제성, 한 사람이 소비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소비로부터 얻는 혜택이 줄지 않는 비배타성의 특성을 갖고 있는 재화로 정의한다. 교육은 이러한 특성을 어느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서비스 상품이다. 다만 교육이 인적 생산성을 증대시켜 국가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고 우리 모두를 잘살게 만드는 외부효과가 있다는 측면에서 일부 공공성이 인정된다. 이 경우 교육의 공공성은 문맹을 벗어나게 하는 초등학교 및 중학교 교육 정도면 충분하다.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대입 본고사, 고교등급제 및 대학 기여입학제 불가라는 삼불정책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기며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하여 왔다. 정부는 일률적인 잣대와 일정한 틀에 맞추어 공장에서 벽돌 찍어 내듯 때로는 양떼 몰듯 학생들을 이리 저리 몰고 다녀왔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돌아온 것은 인성과 창의성 교육은 고사하고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 저하 및 공교육 불신으로 많은 학생 및 학부형들을 해외로 내모는 결과였다.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는 교육 기회의 평등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금지하는 것이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는 실력 있는 학생과 고등학교에 대한 역차별이다. 이 규제로 인해 우수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불가의 원칙은 개인 간 그리고 학교 간에 엄연히 존재하는 격차를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평등주의에 입각한 것이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의미는 ‘신이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지 ‘모든 것에서 동일하게 대우하라’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평등은 능력에 맞게 대우하는 것이다. 실력 있는 학생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될 경우 그는 더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부당하게 박탈당하는 것이다.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비평준화 고등학교 등 학교 간의 수준차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를 금지하고 단지 신뢰성이 떨어지는 내신과 변별력이 없는 수능성적 위주로 하는 입시제도 하에서는 이 학교 출신의 우수한 학생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 따라서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를 금지하는 것이 오히려 역차별이며, 교육기회의 균등에 위배되는 것이다.

학생의 능력에 대한 선별기능은 대학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업의 입장에서 명문대학을 선호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드는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의 입장에서 명문고를 선호하는 것은 불확실성에서 유발하는 선발 비용을 감소시키는 방법이다. 또 본고사를 실시하여 학생을 뽑는 것 역시 우수학생을 선발하는데 드는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평준화 정책으로 고등학교라는 선별장치가 사라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대학에서 선별기능을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유능하지 않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는 것이고, 그것은 또 졸업 후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고교 교육이 더욱 입시 위주가 되었고, 입시위주의 고교 교육은 더욱 암기 위주가 되고 진학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 위주의 교육이 되었다.

교육부가 몇 년 전 2008년부터 내신 위주로 대학입시를 바꾸고 고교등급제를 금지한다고 발표하자마자 두 가지 기현상이 발생하였다. 하나는 과학고, 외국어고, 자립형사립고 등 특목고 1학년 학생들이 대거 일반고로의 전학하는 사태이고, 또 하나는 입시·보습학원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는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금지가 대학입시를 더욱 치열하게 만든다는 증거다. 일반고라면 내신 최상위 등급을 받을 수 있을 학생들이 특목고의 내신 상대평가에서 하위권으로 밀려나게 될 것을 걱정하여 상대적으로 유리한 일반고로 전학을 한 것이다. 또 대학입시에 대비하여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한 보습학원을 통한 과외가 증가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과외를 하는 행위 같은 것은 사회가 대학을 선별기능을 하는 기관으로 이용하는 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부가 교육을 통제하여 교육서비스의 고객인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가 무시되고, 대신 획일적이고 조악한 교육상품 몇 가지만을 고객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강요하는 상황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들의 다양한 욕구를 표출할 곳이 필요하다. 그 결과 과외를 비롯한 이른바 엄청난 사교육시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금일 언론에 보도된 고교비평준화 지역보다 고교평준화 지역에서 사교육비가 더 많다는 연구는 현행 고교평준화 정책이 사교육 억제보다 사교육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대학에 일정액 이상을 기부하여 현저한 재정적 공로가 있거나 대학의 설립 또는 발전에 비물질적으로 기여하는 공로가 있는 사람의 자손에게 입학 때 혜택을 부여하는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기여입학제에 대하여 매우 민감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기여입학제에 대하여 잘못 인식되고 과장된 측면이 크다. 기여입학이라고 해도 대학교육을 수학할 정도의 지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학생이 대학에 가려고 할 것이다. 기여입학을 통하여 들어온 학생이 지적인 능력이 부족한 경우 바로 학사관리와 주위의 시선에 의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지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 단지 경제적 능력만으로 대학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기여입학생을 정원 외로 선발한다면 다른 학생들의 교육기회를 박탈하지 않고 오히려 소득재분배와 교육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장학금을 확대할 수 있어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여입학을 둘러싼 비리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기여입학과 관련한 재정수입은 철저히 교육시설 투자, 장학금 및 연구 활동 지원 등에 한정해 집행하도록 하고, 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관리하도록 한다면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다.

이제 정부는 교육 독점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서 학교의 선택권 및 학생의 선발권을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학생, 학부모 및 학교에 돌려주어야 한다. 정부는 실익이 적고 부작용이 큰 교육 삼불정책을 이제는 움켜진 손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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