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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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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회사법제의 유연화가 필요할 때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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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훈

“경제가 산다는 것은 결국 기업들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반시장적·반기업적 분위기로 기업인들이 투자를 꺼려온 게 사실이다. 앞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 규제완화를 포함한 기업환경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이 말은 지난해 12월 17대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경제살리기 대안이다.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기업활동을 가로막는 불필요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21세기에 적합한 기업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EU 차원에서의 법적 개입은 시장친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말은 지난해 10월, EU 역내시장담당 집행위원장이 EU회사들에게 1주1의결권 원칙을 통일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2년간의 노력을 포기하며 유럽의회에서 제시한 정책대안이다.

성장과 일자리 창출, 투자유치를 위한 기업환경 개선 등은 우리나라나 EU 모두의 최대 현안이며 이를 위한 해결책은 위에서「규제완화를 통한 시장친화적인 기업환경의 조성」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장친화적인 기업환경의 조성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책적 대안이 있겠는가?

EU 집행위원장은「역동적이고 유연한 회사법제의 틀(Dynamic and Flexible Company Law framework)」을 만드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유연한 회사법제란 하나의 획일적인 회사의 소유형태가 모든 회사들에게 최적의 소유구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를 사전적·획일적으로 강요하기보다는 다양한 회사 소유구조 형태 사이에서의 경쟁이 왜곡 없이 발생할 수 있는 제도적 틀로서의 역할을 하는 법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회사의 소유형태는 궁극적으로 경영의 성과배분은 소유지분비율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는「소유권(현금흐름권)」과 회사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배권(의결권)」사이의 비례정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결정되게 된다.

따라서 1주1의결권 원칙에 충실할 경우에는 이러한 소유권과 지배권이 일치하지만 차등의결권, 피라미드 소유구조, 황금주, 의결권제한, 상호출자 등의 수단(Control Enhancing Mechanisms ; CEM)들이 사용될 경우에는 소유권과 지배권 사이에서 괴리가 발생할 것이다.

유럽의 기업들은 주주가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현금흐름권을 초과하여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러한 CEM 구조를 우리나라의 기업들보다 다양하게 가지고 있고 이를 법적으로 규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견해가 대립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EU 상장회사들에게 1주1의결권 원칙을 채택하도록 하여 유럽금융시장의 통합을 모색하고자 했던 EU 집행위원장이 1주1의결권 원칙을 모든 EU 회사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이에 대한 법적 조치는 필요하지 않다고 언급한 것은 주위를 놀라게 할 만한 일이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꾼 이유는 EU 회사지배구조와 관련된 논쟁에서 가장 치열하게 견해대립이 있었던 1주1의결권 원칙 또는 주주민주주의가 모든 기업의 경제적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는 연구결과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회사법제인 공정거래법과 회사법에서는 어떠한가? 정부는 현재 우리나라 기업집단의 가장 큰 문제는 지배주주가 계열사들을 이용해 실제 자신의 소유지분보다 훨씬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여 적은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원래 자본시장에서의 감시, 즉 적대적 M&A의 위협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기업집단은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로 인해 적은 지분으로 이미 상당한 지배권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외부의 적대적 M&A 위협인 자본시장으로부터의 감시기능이 약화되어 있어 시장 기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집단의 소유구조를 출자총액제한 제도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규제하여 소유권과 지배권 사이의 괴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는 회사법상의 1주1의결권 원칙이나 주주평등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수단인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의 도입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현행 공정거래법상의「기업집단 소유구조의 직접적 규제」와 회사법상의「경영권방어 제도마련에 대한 소극적 태도」의 논리는 동일하며 이러한 논리 속에는 회사의 소유와 지배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것, 즉 1주1의결권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가장 이상적이라고 보아온 1주1의결권 원칙은 이미 살펴본 유럽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기본원칙으로서의 가치를 의심받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구글(Google)은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안정된 경영권을 유지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외부주주들의 대부분이 실질적인 지배권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채택하였으나 투자자들은 구글을 외면하기는커녕 오히려 모집액을 초과하는 신청을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을 고려해 보면 지금까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온 주주들 중에는 회사의 단기이익에 주로 관심을 가지는 주주와 장기적 이익에 관심을 가지는 주주, 그리고 주로 배당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주주와 지배권에 관심을 가지는 주주 등 다양한 성격의 주주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시장에서 이러한 다양한 투자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이들의 투자의욕을 유발하여 시중의 유동자금을 자본시장으로 유입시켜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소유권과 지배권 사이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구성된 금융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회사법제를 유연화하자는 것이 전통적인 1주1의결권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야기시키는 수단들이 효율적인 금융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측면도 함께 고려하며 이러한 수단들에 대해 선입관을 가지지 말고 균형된 시각에서 접근하자는 것뿐이다.

이러한 균형된 시각을 전제로 한 자본시장의 활성화는 기업의 투자활성화로 이어질 것이고 이것은 결국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안으로 새로운 정부가 제시한 “기업들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기업환경 조성”은 기업들에게 하나의 획일적인 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유연한 회사법제의 틀」을 짜는 제도적 개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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