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지난자료

KERI 지난자료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전문가 칼럼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을 유연하게

08. 11. 24.

5

강선민

마치 영어가 만국공통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기업의 언어인 회계도 하나로 통일되어 가고 있다. 2007년을 마감하는 지난 12월 21일 회계기준위원회는 오랜 산고 끝에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을 공표하였다. 이는 국제회계기준(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IFRS)이 우리나라의 기업회계기준, 즉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Generally Accepted Accounting Principles : GAAP)으로 채택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향후에는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여부가 아닌 그 적용시기와 적용범위 등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만을 남겨 두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국제회계기준은 자본시장 개방 등으로 국제적으로 통일된 회계기준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로 생겨났고,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서는 IFRS를 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결과로 EU국가들은 2005년부터 IFRS를 전면 도입하였으며, 현재 회계선진국가로 자부하는 미국도 국제회계기준의 선택적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 3월 국제회계기준 전면도입을 위한 로드맵을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르면 국제회계기준 적용을 희망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2009년부터 이를 허용하되, 2년 후인 2011년에는 코스닥을 포함한 모든 상장기업에 대하여 국제회계기준을 강제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비상장기업은 회계처리방법이 간명한 회계기준을 제정·적용함으로써 기업부담을 경감시킬 방침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주요 재무제표를 개별재무제표에서 연결재무제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업능력 등을 고려하여 분·반기연결재무제표에 대해서는 자산 2조원 이상기업은 2011년, 2조원 미만기업은 2013년부터 작성토록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IFRS 도입은 우리나라 회계정보의 투명성 제고를 통한 국제자본시장에서의 Korea discount 해소, 재무제표의 국제적 신뢰성과 국가간 비교가능성 제고, 해외 경제활동의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이중적 재무보고 작성비용 경감 등의 필요성에 따라 강조되었다. 또한 호주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제회계기준을 전면 수용하는 경우 국내 회계기준의 제정 작업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하여 그 절감된 비용을 국제회계기준 제정과정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제 국제회계기준 도입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도입과정에 우리가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니었을까?

2001년 미국의 PriceWaterhouseCoopers(PwC)가 전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35개국을 대상으로 한 투명성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는 회계분야에서의 불투명지수가 조사대상국 35개국 최하위로 평가된 바 있다. 이 당시 우리나라 회계기준은 1997년 외환위기의 경험을 통한 정부의 개선노력으로 이미 회계기준 및 공시기준은 국제적 수준으로 개정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PwC의 조사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이 신뢰받지 못한 원인이 회계기준이 존재하지 않아서 혹은 잘 정비된 회계기준이 없었기 때문인가? 우리나라의 회계불투명성은 잘 정비된 회계기준 및 제도가 존재할지라도 이를 제정의도대로 제대로 적용했는가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이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 제고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도리어 광범위한 시가주의 적용 및 보험수리적 방법에 의한 퇴직급여 추정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국제회계기준을 회계 인프라스트럭처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도입할 때 그것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할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회계신뢰성이 국제적으로 다시 한 번 추락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편 재무제표의 국제적 신뢰성과 국가간 비교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국제회계기준의 또 다른 도입 근거와 관련하여 과연 우리나라의 국제적 비교가능성의 대상이 되는 기업이 몇 개나 되는지도 여전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2005년 말 953개 코스닥상장기업 가운데 중소기업의 비율은 86%이며, 총자산규모가 500억 미만의 기업은 596개사(약 63%)로 집계되고 있다. 또한 주권상장기업이라 할지라도 중소기업의 범주에 속하는 기업은 37%에 달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상장된 많은 기업들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007년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국제회계기준 도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181개 응답기업 중 약 49%에 해당하는 업체가 IFRS 도입과 관련한 비용을 10억원 이하로 예상하였지만, 기업에 따라서는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으로 2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응답결과도 있었다. 이어서 12월에 상장회사협의회는 ‘국제회계기준 적용시 상장회사에 미치는 영향 및 대응방안’이란 연구에서 2011년 IFRS 도입을 위해서는 대기업은 늦어도 2008년부터, 중소기업은 2009년부터 IFRS로의 전환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상장사들은 당장 2008년 중순부터 IFRS 도입에 따른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만 하며, 이와 관련하여 은행권의 경우에는 6~8개월이 소요되는 1단계 컨설팅비용으로 25억~30억원이, 2단계 구축을 위해서는 1년 정도의 기간동안 150억원이 소요된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IFRS 도입은 단순한 회계분야의 변화가 아닌 기업 조직 및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변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IFRS 도입으로 관련업계의 특수가 기대된다는 신문지상의 글들은 결과적으로 기업들에게는 IFRS 도입이 시간적으로나 비용면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상장기업이라는 것은 규모의 크고 작음보다는 공적부담을 지는 이해관계자가 많은 기업으로서 올바른 재무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비상장기업과는 다른 점이 무시될 수는 없으나 획일적인 강제적용은 제도집행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면서 유럽연합 등 100여개 국가들이 이미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였다고 홍보하여 왔다. 그러나 국제회계기준을 개별재무제표까지 전면적으로 도입한 나라들을 살펴보면 시프러스, 에스토니아, 그리스, 몰타 등에 불과하다. 반면 연결재무제표에 대하여 IFRS 적용을 의무화한 독일, 프랑스의 경우 개별재무제표에 대해서는 IFRS가 아닌 자국의 회계기준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IFRS의 산파역할을 한 영국조차도 개별재무제표의 작성에는 단지 국제회계기준의 적용을 허용할 뿐 강제화하고 있지 않다. 나아가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무역대국인 국가들마저도 국제회계기준의 적용을 검토할 뿐인 것이지 아직 도입을 확정한 것인 아니다. 우리가 선진제도의 도입에 뒤떨어질 필요는 없지만, 회계기준을 제정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IFRS 적용이 미칠 재무적 충격이 무엇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앞서 도입을 결정해야 했는가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제회계기준이 우리나라 회계기준으로 대체되면 우리나라 회계기준 제정 비용을 감소시켜 이러한 비용을 국제회계기준 제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기대도 사실 막연하다. 도리어 우리는 국제회계기준의 단순 소비자로 전락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국제회계기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수도 있다.

회계는 기업환경의 소산이다. 그런데 한 국가의 기업 환경은 곧 그 국가의 역사, 가치관, 정치경제적 제도 등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논리로 영어가 만국공통어로 자리잡은지 오래지만,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언어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강선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mkang@keri.or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