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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국민연금의 개혁은 가능한가?

0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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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석

이탈리아계 미국 이민자였던 찰스 폰지(Charles Ponzi)는 1920년 보스턴에서 45일 동안에 50%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약속으로 4만 명의 투자자로부터 1,500만 달러를 모금하였으나 결국 파산, 사기죄로 수감되었다가 모국으로 추방되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최초 투자자들의 원리금을 다음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갚는 것이었다. 이후 이와 같은 방법으로 투자액을 늘려가는 사기성 짙은 투자액 모금 방식은 ‘폰지방식(Ponzi scheme)’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방식은 고수익 투자임이 알려지면서 처음에는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투자액이 늘어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앞의 투자자들의 고수익을 보장할 신규 투자액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으면 결국 파산하게 된다.

국민연금의 경우, 납입금보다 수령액이 평균 2.5배 이상 많다고 한다. 선 세대의 지나치게 높은 수령액을 후 세대의 납입금(투자수익 포함)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강제성을 띤 저축성보험이라는 점에서 폰지방식과는 다르지만 그 납입-급여의 구조는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폰지방식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현재 여러 나라에서 인구구조의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국민연금의 파산가능성이 대두되어 각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1930년대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으나 기금의 재정안정 문제로 인한 연금개혁 논란은 계속되어 왔고, 부시 행정부도 개인계정을 포함한 연금개혁안을 제시하였으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차기 정부로 넘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도 4대 연금의 불균형 문제의 시정과 함께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 문제의 해결을 새 정부가 떠맡게 되었다. 인수위에서도 국민연금의 개혁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기존 방법과 별반 차이가 없어 연금개혁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접근방법은 크게 점진적인 것과 급진적인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많은 전문가들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점진적 개혁은 조금 더 내고 나중에 덜 받게 하는, 납입-급여에 대한 계수조정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이 10%를 하회하고 연금수령액이 납입액의 평균 2배를 상회하는 한 기금 고갈은 당연히 발생한다. 단지 그 시점이 늦춰질 뿐이다. 개혁속도가 느려지고, 저출산 및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재정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질 것이다.

한편, 국민연금제도를 급진적으로 개혁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국민연금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문제의 소지를 없애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러한 견해를 일본 소설가가 『남쪽으로 튀어』라는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등장인물인 아나키스트 우에하라 이치로는 강제로 국민연금을 걷는다면 국민이기를 거부하겠다며 국민연금을 부정한다. 국민연금의 정당성과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에 대한 국민의 강한 불신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연금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 이는 국민연금이 강제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민연금은 선 세대를 위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저축성보험이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해 저축성보험을 강요하지 않아도 개개인은 스스로 자신의 노후보장을 위해 투자나 저축을 하기 마련이다. 또한 노후보다 현재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국민연금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웬 국민연금이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국민연금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갖고 있는 불확실성이다. 현재의 연금구조로는 인구변화, 경제성장률, 물가변동 등에 의해 연금수령액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정부의 비효율적인 기금운용도 그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 정부의 기금운용은 민간의 그것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며, 정부의 기금운용수익률 역시 민간의 최우량 금융기관들의 투자수익률에 미치지 못한다. 정부도 이것을 입증하듯 시중 금융기관에 연금기금 일부분의 운용을 맡기고 있다. 연금의 재정안정화를 위해서는 납입금의 운용수익률 정도만을 보장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굳이 정부가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국민연금을 아예 없애는 방안을 신중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연금 가입자의 납입액에 비례해서 지금까지 모아진 기금을 모두 배분하는 것이다. 개인의 노후에 대한 준비는 일차적으로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이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이다. 배분과 공공복지의 측면을 고려한다면, 세금형태의 기초연금제를 통해 생활이 어려운 노령층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한 순간에 국민연금을 없애버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어렵다면, 중간단계로 개인계정을 도입하여 빠른 속도로 국민연금의 규모를 줄여가며 국민연금제도를 없애는 방안이 도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행여라도 우리는 지나치게 불합리한 국민연금의 납입-급여구조를 알면서도 자신의 파이를 지키기 위해 계수조정 수준의 점진적인 연금개혁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다음 세대를 착취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광석 (포항공과대학교 인문사회학부 부교수, econhahn@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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