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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수요의 법칙에 예외는 있는가?

08.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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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어느 경제학 서적에 명품에 대한 소비행태는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기 위한 과시적인 것이며, 비싼 가격은 차별화를 위한 심볼 마크에 지불하는 것으로서, 이런 상품의 경우에는 고가일수록 더욱 잘 팔리는 경향이 생길 수 있으므로 수요의 법칙의 중요한 예외가 되는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상대 가격과 소비자들이 구매하고자 하는 수요량이 정(正)의 관계가 있으므로 수요의 법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 검색을 해보아도 이런 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비싼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한다거나, 주제넘게 이른바 명품만 선호한다는 소비자들의 구매 행위를 은근히 못마땅해 하는 투다. 그런데 이는 과연 수요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인가?

명품을 소지하는 것이 소지자의 ‘명성’이나 ‘사회적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명성이나 위상에 대한 욕망이 증가하여 명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 수요곡선이 우측으로 이동하는 것이지, 수요곡선의 기울기가 양(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수요곡선의 기울기는 음(陰)이므로 가격이 오르면 명품 수요량은 줄어든다는 수요의 법칙은 여전히 작동하는 것이다. 만일 명품에 대한 가격이 오를 때 수요량도 증가하여 수요곡선의 기울기가 양이라면, 명품에 대한 수요 증가로 끝없이 오를 수 있는 가격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비록 명품에 대한 수요가 과시적 욕구에서 기인하여 높은 가격에서 더 많이 팔린다고 하더라도, 이는 수요곡선의 이동에 따른 것이지 수요곡선의 기울기가 음이라는 수요의 법칙을 부정하는 현상이 아니다.

유사한 예로서 “가격을 낮게 매겼을 때는 잘 안 팔리던 상품이 가격을 높게 매겼더니 불티나게 잘 팔린다”라는 보도를 가끔 접한다. 시장가격보다 꽤 낮은 가격으로 팔려고 하면 구매자로 하여금 상품의 품질을 의심케 하여 시장 가격으로 파는 것보다 더 어렵게 된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구매자들로 하여금 특정 상품의 품질이 좋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하여 가격을 높게 매기면 더 많이 팔리는 현상은 수요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흔히 가격이 품질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이 수요의 법칙을 부정하는 것인가?

소비자는 물리적 특성이 동일한 상품이더라도 가격이 낮게 매겨졌을 때의 상품과 높게 매겨졌을 때의 상품을 다른 상품으로 인식한다. 상품이 다른 만큼 수요도 다르다. 즉, 후자의 경우에는 수요곡선이 전자의 경우보다 원점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수요곡선은 모두 우하향(右下向)하여 수요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가격을 높게 매겼을 때 더 많이 팔리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현상이 수요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 비해 가격이 떨어졌는데도 수요량이 더 떨어지는 현상도 가끔 목격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수요의 법칙의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가격은 특정 상품과 다른 상품 간의 가격 비율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상품의 다른 시점 간의 가격 비율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품가격이 이전에 비해 떨어졌지만, 잠재적 구매자들이 가격이 미래에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면 오늘의 가격은 미래의 기대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른 것이다. 상대가격 상승으로 오늘의 수요량이 떨어진 것이므로 이는 수요의 법칙을 확인하는 현상이지 부정하는 현상이 아니다.

결국 가격과 수요량 간에 역(逆)관계가 있다는 수요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일견 그렇게 보이는 현상을 수요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모두 수요의 법칙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내용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오로지 경제학자의 머릿속에서만 개념과 내용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들이 경제학을 어렵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도 사실은 집값 결정 원리와 투기 등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기본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부질없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서도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르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김영용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yykim@chon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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