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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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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친기업 정책과 반시장 정책

08.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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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훈

현 정부는 친기업 정책을 지속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으로 최근에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와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 등의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친재벌, 반시장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의 골자는 현재 우리나라 기업집단 대부분의 지배주주가 계열사를 이용해 실제 자신의 ‘소유지분’보다 훨씬 많은 ‘의결권(지배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즉 적은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외부로부터의 적대적 M&A 위협을 받지 않으며 소수주주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기업집단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이즌필 등의 경영권 방어 장치의 도입은 말도 안 되고 오히려 ‘출자’등에 대한 사전적이고 직접적 규제를 통해 실질 소유권을 초과하는 의결권 행사를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에 관한 논쟁의 핵심은 소유권과 지배권의 일치 여부에 대한 판단문제로 귀결된다. 이 문제에 대해 회사제도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

흔히 기업과 회사를 동일시하지만 엄격히 따져보면 서로 다르다. 기업이란 자산소유자(기업가)가 노동자를 고용하여 운영하는 생산조직으로서 소유권과 지배권이 일치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기업가는 자신이 소유한 돈으로만 기업운영에 필요한 자산을 모두 구비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이를 위해 거대자본의 조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유한책임, 주식의 자유양도성, 법인격 등의 특징을 가진 회사제도이다. 따라서 ‘회사’는 기업조직 중 주식을 매개로 불특정 다수로부터 대규모의 자금을 끌어 모으는 자본조달의 한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이때 주식은 회사의 경영성과를 배분받을 권리인 소유권과 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지배권(의결권)의 양축으로 구성되어 있고, 양자를 비례적으로 대응시키는 1주1의결권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자신의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더욱 많은 자금을 끌어 모으려는 것은 어찌 보면 기업가의 당연한 속성일 것이다. 따라서 기업가는 복수의결권 주식, 피라미드 소유구조, 중요 의사결정에 대해 특정주주에게 거부권 부여, 계열사 간 상호출자 등의 지배권 강화 수단(Control Enhancing Mechanism, CEM)을 통해 적은 지분만 가지고도 이를 초과하는 의결권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다.

소유권과 지배권을 불일치시키는 이러한 수단들에 대한 우려, 즉 지배주주(경영진)에 의한 소수주주의 권리침해와 회사 지배권 시장의 위축은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EU 집행위원장은 이러한 지배권 강화 수단들을 법적으로 막아 회사의 운영과정에서 모든 주주들이 동일한 발언권을 가지도록 하여 유럽에서 주주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작년 말 자신의 2년간 노력을 포기하였다. EU 16개 회원국과 호주, 일본, 미국 등 다양한 법체계를 가진 국가들을 상대로 한 CEM에 대한 방대한 연구결과 때문이었다. CEM은 모든 국가에서 폭넓게 사용될 수 있고 이것이 회사의 성과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OECD 기업지배구조 조정위원회 역시 작년 말 보고서를 통해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에 대해 미리 선험적으로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규제의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소유권과 지배권을 일치시키기 위한 직접적 규제는 경제행위의 왜곡을 초래하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에 대한 EU와 OECD의 이러한 입장은 모두 동일한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자본시장에 기초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계약의 자유라는 것이다. 즉 개별 회사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다르고 주주들 역시 다양한 선호와 이해관계를 가지므로 주식의 구성요소인 소유권과 지배권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개별회사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공시와 투명성 개선 등에 기초한 회사법의 기본원칙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자본시장에서 계약자유 원칙의 구현은 미국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마다 회사법을 가지고 있고 회사 설립자는 실제 사업지와 무관하게 적용을 받기 원하는 주 회사법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50개의 회사법이 서로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소유권-지배권의 일치 여부와 경영권 방어제도의 인정 여부에 대해 다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50개의 회사법 중 회사 설립자와 주주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 주의 회사법을 선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경쟁에서 승자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작은 델라웨어주다. 델라웨어주 회사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 기업은 모두 80만 개로 이 중에는 미국 공개회사의 50%,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의 60%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는 소유권과 의결권의 조합 및 내용을 개별 회사들이 정관을 통해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하고 경영진이 포이즌필과 같은 강력한 경영권 방어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른 주에 비해 개별회사와 경영진에게 많은 재량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재량을 남용하였을 경우에는 사법부에서 사후적으로 엄격히 책임을 묻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회사조직은 자본을 필요로 하는 경영진이 자본을 제공하는 주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가며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이러한 회사조직이라는 작품은 다른 형태의 회사조직과 상품시장, 노동시장, 자본시장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며 효율성을 검증받게 된다. 즉 다양한 개별시장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회사조직시장’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따라서 경영진과 주주들에게 회사조직의 선택 폭을 넓혀주는 친기업 정책은 궁극적으로 친시장 정책이다.

출자총액을 제한하고 포이즌필 등의 경영권 방어법제 도입을 막아 특정한 형태의 회사조직 출현을 처음부터 차단하는 것이 소수주주에 대한 경영진(지배주주)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어느 정도 줄여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개별 회사의 운신 폭을 좁히고 소수주주나 투기적 자본의 기회주의적 행동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을 어렵게 하여 회사 전체의 이익을 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이것은 결국 경영진의 행동을 사전적·포괄적으로 규제하며 남용의 가능성이 있는 행위를 처음부터 차단하는 정책과 이들의 행동을 가급적 자유롭게 허용하면서 문제되는 행위만을 사후적으로 제재하는 정책 중 어느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한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회사법의 세계적 흐름은 공시와 투명성 강화를 통한 주주들의 선택권 보장을 전제로 한 후자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것이 친기업 정책의 세계적 흐름이면서 동시에 친시장 정책의 흐름이기도 하다.

물론 사법부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의 사후적 통제 시스템이 선진국에 비해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통제 시스템이 친기업 정책의 세계적 흐름을 반시장 정책으로 보고 역행해야만 할 정도로 형편없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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