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지난자료

KERI 지난자료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전문가 칼럼

연말 풍경에 대한 단상

08. 12. 23.

0

김상겸

해마다 이맘때면 낯익은 거리 풍경이 펼쳐진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 모금이나 구세군 자선냄비 같은 흐뭇한 것들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것도 있다. 별 문제없던 도로가 파헤쳐지고, 몇 년은 더 씀직한 보도블록이 교체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거론하려는 것은 후자이다.

한 해가 끝나가는 시점에 이 같은 광경이 벌어지는 이유는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바로 ‘예산불용액’을 처리하기 위함이란다. 예산불용액이란 정부기관 등이 올해 받은 예산 가운데 다 쓰지 못하고 남긴 돈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예산제도에 따르면 올해에 받은 예산을 다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 남은 예산의 국고 환수는 물론, 다음해 예산상의 불이익이 가해지도록 되어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산을 받은 기관의 입장에서는 해마다 남는 돈이 없도록 모두 써버리는 편이 더욱 유리할 것이다. 아껴서 남겨 봐야 반납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음해 예산도 삭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억지로 일을 벌여서라도 돈을 쓰려는 행태가 발견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전문용어로 표현하자면 '재정의 비효율적 집행'이라고 하지만, 일상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귀한 돈을 허투루 쓰는 것’이다.

돈을 이렇게 쓰는 것도 문제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더 심각한 문제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이다. 기관의 입장에서, 이왕의 남는 돈을 쓰기로 했다면 아무래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집행하려는 것이 일반적이다. 친분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에 선심을 쓰면서 생색도 내고 싶을 것이다. 당연히 정치적인 고려도 개입될 것이다.

최근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중앙정부의 어떤 기관은 남는 예산을 써버리기 위해 상품권을 구입해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해당 기관의 직원 입장에서야 기분 좋은 일이겠지만, 그 기관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는 곳이며, 상품권으로 변한 그 돈은 어디에서 난 것인가? 세금을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처리하고도 남은 돈이 지난 해 4조4천억 원 정도였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까지 벌여가며 예산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돈이 4조 원이 넘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2007년의 예산집행과정에서 무엇인가 착오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2006년에도 3조3천억 원이 남았으며, 2005년에는 5조 원이 넘게 남았다고 한다. 그러니 꼭 필요한 사업에만 돈을 썼더라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남았을 것이다.

물론 불용예산액의 사용이 뭐 그리 잘못된 것이냐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침체된 경제 상황 때문에 모든 경제주체들이 움츠리고 있으니, 이럴 때 정부라도 나서서 돈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유명한 ‘뉴딜정책’이나 그것을 모방한 각종 ‘유사 뉴딜정책’이라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예산은 그냥 생기는 돈이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세금으로 거두어들이는 돈이 대부분이다. 과연 같은 액수의 돈을 가계나 기업이 쓰게 했더라도 그런 식으로 지출했을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민간부분(private sector)이 더욱 효율적이다”라는 주장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해마다 이렇게 많은 예산이 남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하게 현상으로만 본다면 정부가 거두어들인 돈을 다 쓰지 못해서 벌어진 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서 본다면 그만큼 정부가 돈을 많이 거두어들였다는 말도 된다. 참여정부 때 해마다 10조 원의 세수가 증가했음을 생각해 본다면 그동안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거두었다는 것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감세정책을 시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이론으로 보자면 대부분의 세금은 비효율을 발생시킨다. 비효율이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을 썼지만, 쉽게 말하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경제적 잉여를 소모시키는 것이다. 차라리 다른 이라도 쓰면 덜 아깝겠지만,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조세의 초과부담(excess burden of tax)’이라고 한다. 세금은 그 외의 추가적인 비용도 발생시킨다. 세금을 거두고 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세의 행정비용이 바로 그것이다. 세금을 걷는 기관은 기관대로, 세금을 내는 납세자들은 납세자들대로, 각자 세금을 걷고 쓰기 위한 별도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이다. 이 역시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이다. 결국 세금이라는 것은 그 현상자체로 자원의 낭비요인이 상존하는 제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세금을 걷고 쓰는 행위가 어느 사회에서나 당연하다고 인정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반드시 정부가 세금을 통해서 수행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쓸 만한 도로를 파헤치고, 보도블록을 새로 깔고, 상품권을 사서 직원들에게 나누어주는 일 등은 누가 보더라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결코 아니다. 혹시 필요 이상으로 돈을 거두었더라도 꼭 필요한 사업에만 쓴다면, 아니 국민들이 어렵게 모아준 귀한 돈이니 아껴 쓰겠다는 노력만이라도 보여준다면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하겠는가?

김상겸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iamskkim@dankook.ac.kr)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