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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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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일자리 나누기 실천을 위한 제언

09.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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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규

2월 졸업시즌이 지나면서 실업자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게다가 불황의 끝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지키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선 임금동결과 함께 고용유지를 약속한 노사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공기업 및 대기업은 대졸사원 초임을 삭감하는 대신 인턴사원을 채용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이와 같은 일자리 나누기의 본질은 임금삭감이라는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근로자와 이런 근로자의 양보를 고용 유지 및 창출로 보답하겠다는 기업 간의 공동운명체 의식에 있다. 일자리 나누기의 성공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네덜란드 바세나르협약의 원문을 살펴보면 “재정적인 상황을 감안하여 일자리 나누기는 (노동)비용의 상승을 초래하지 않아야 하며” 또한 “다양한 방식의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청년실업을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근로자의 양보와 사용자의 고용창출 의지가 분명히 나타나는 부분이다.


지난 2월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의 합의문을 통해 노조는 임금을 동결 또는 절감하고 불법 파업을 자제할 것을 약속했으며 재계 역시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해고를 자제하고 잉여보유자금을 성장 동력에 선제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주도로 합의를 만들어낸 지난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노·사 스스로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는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일부에서는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이 사회적 대화에 의한 대협약이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1974년에서 1982년 사이 이미 6차례에 걸쳐 국회의 동의하에 임금동결을 실시했고 1982년에도 빠른 시일 내에 노·사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임금동결을 실시하겠다고 압력을 행사하였다. 이처럼 정부 개입이라는 강제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던 네덜란드 노·사는 결국 바세나르협약이라는 합의에 이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노·사의 자발적인 공동인식에 바탕을 둔 이번 우리나라 노·사·민·정 합의는 바세나르협약보다 더 큰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바세나르협약의 원문을 살펴보면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없는 상징적인 합의 내용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사례로 널리 인용되는 이유는 바세나르협약 이후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강구되고 실행에 옮겨졌다는 점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번의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노·사·민·정 합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일부에선 일자리 나누기 노력은 비정규직 우선 해고 중단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정규직 과보호로 인해 정규직의 해고는 물론 임금조정조차 어려운 상황이며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고용조정 방안은 비정규직을 통한 고용조정일 수밖에 없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여기에다 정규직 전환의무라는 또 다른 부담이 한 개의 일자리라도 아쉬운 지금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어들게 하고 있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려고 해도 불확실성이 강한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고용보호가 엄격한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 이유가 더더욱 없다. 따라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생겨나는 새로운 일자리 역시 정규직과는 거리가 먼 인턴사원과 같은 것일 뿐이다.


정리해 보면, 현재 우리에게는 고용보호가 엄격한 정규직과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로조건하에서 정규직 전환의무라는 부담까지 가진 비정규직 두 가지 근로계약 밖에 없으며 두 가지 고용계약의 사이를 이어줄 고용형태가 전무한 상태이다.


필자는 일자리 나누기의 기본정신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어줄 중간 형태로 ‘전환부 단시간근로제’의 도입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환부 단시간근로제는 정규직 전환의무의 부담을 최소화하여 비정규직 일자리의 급감을 막으며 동시에 비정규직의 근로여건 개선도 가능케 하는 고용계약이다. 우선 처음 일정기간 동안은 채용 및 해고에 아무런 제한이 없는 단시간 근로제를 허용해 가급적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일정기간이 지난 후 능력이 인정된 근로자에 대해서는 현재 정규직과 동일한 시간당 임금, 근로시간에 비례하는 사회보험 및 교육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비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제공해야 한다. 단, 여전히 채용 및 해고는 자유롭게 유지하여 유연한 노동력으로서의 장점은 살릴 필요가 있다. 또 다시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최종적으로 풀타임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결정하여야 한다.


이런 고용형태는 정규직 전환의무 부담에 의한 비정규직 고용감소의 영향을 최소화하며, 능력이 인정된 근로자에겐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동시에 정규직 전환 이전까지 차별적 대우를 받지 않게 하는 장점이 있다. 또한 단시간근로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일거리를 나눌 수도 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전환부 단시간근로제를 악용하여 채용과 해고를 반복하고자 하는 사용자가 여전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는 기업의 고용패턴을 모니터링하여 악의적으로 채용과 해고를 반복하는 사용자에게는 사회보험 부담금의 비율을 상향조정하거나 고용 관련 지원금을 삭감하는 식으로 일정 수준의 제약을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필자가 제시한 전환부 단시간근로제는 일자리 유지 및 창출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단기적 대안에 불과하다.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다양하고 유연한 형태의 고용계약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고용보호의 수준이 다양한 여러 종류의 고용계약을 보급하거나 아니면 근로기간에 따라 고용보호의 정도에 차등을 줄 수 있는 유연한 형태의 단일근로계약을 보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다양한 근로계약의 공급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역동성을 제고하여 고용창출의 기반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conby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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