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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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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시장은 언제나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0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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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세계적인 불황 타개를 위해 각국 정부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이러한 대규모 경제개입은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명시적 또는 암묵적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시장은 호황기에만 작동하고 불황기에는 작동하지 않는 것인가? 또 불황의 의미는 무엇인가?

작금의 경제위기와 시장의 작동 여부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기변동론으로 잘 설명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불황은 중앙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에 의해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된 이자율 때문에 그 동안 잘못됐던 자원배분, 특히 소비자 선호와 맞지 않은 자본의 시제간(時際間, intertemporal) 배분을 교정하는 과정으로서 시장이 작동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자는 현재 나에게 가용(可用)하지 않은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데 대한 대가이자, 현재 나에게 가용한 자원을 사용하지 않고 미래로 연기시키는 데 대한 보상이다. 그 비율이 이자율이다. 즉 이자율이란 현재와 미래의 자원에 대한 사람들의 시간 선호율이다. 현재보다 미래의 자원을 더 선호하게 되면 시간 선호율인 이자율은 낮아지고 반대의 경우에는 높아진다.

저축 증가는 사람들이 이전에 비해 현재보다 미래의 소비를 선호하는 소비의 시제간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곧 시간 선호율인 이자율이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시장에서는 저축 증가로 대부자금이 증가하여 이자율이 낮아지며, 그에 따라 투자가 증가한다. 따라서 사람들의 시간 선호 변화에 바탕을 둔 이자율 하락에 따라 투자가 증가하는 것은 미래의 소비자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무런 문제가 없고 지속 가능한 것이다. 거품이 생기지 않고 건실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

반면에 중앙은행이 통화공급 증가를 통해 인위적으로 이자율을 낮추면, 오늘 가용하지 않은 자원의 사용기회가 확대되어 역시 투자가 증가하고 경기를 자극하게 된다.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의 주택시장 등이 붐(boom)을 이룬 이유이다. 문제는 이런 투자 증가가 사람들의 시간 선호율 변화에 따른 저축 증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현재와 미래의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가 변하지 않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생산에만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소비와 생산 간의 시제간 자원배분이 어긋나게 된다. 즉 소비자의 소비 행태와 소비자에게 소득을 창출해주는 생산자의 의사결정 간에 심각한 괴리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으로 사람들의 저축은 줄어드는 데 반해 통화공급 증가에 따른 투자는 증가하기 때문에 저축과 투자 간의 불균형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투자가 저축 수준으로 복귀함에 따라 거품이 꺼지면서(bust) 붐은 끝나고 불황 국면에 접어든다.

거품이 꺼진다는 것은 이러한 인위적인 붐은 지속될 수 없다는 시장의 인식이며 자본의 시제간 재배분을 요구하는 표현이다. 경제 전체의 총투자나 순투자도 중요하지만 투자 부문 내에서 소비자의 선호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재배분하라는 요구이며,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불황의 터널이다. 그러므로 불황은 소비와 생산 간의 시제간 괴리 현상을 교정하는 시장과정(market process)이며, 바로 여기에 끊임없이 작동하는 시장의 위력이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자원배분의 왜곡이 심해진 만큼 조정에 필요한 불황의 기간도 길어질 것이다. 또한 괴리 현상이 조정됨에 따라 소득창출 패턴도 바뀌게 되며, 그 과정에서 실업도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각국 정부가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 펼치고 있는 저금리 정책은 의도한 결과보다는 시제간 자본을 재배분하는 시장의 조정 과정을 또 다시 방해하여 경제의 회복속도를 지연시킬 것이다.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그 동안의 투자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정리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여론으로 말미암아 정치적으로는 많은 부담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불황기에 시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yykim@chon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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