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경기낙관론보다는 경제내실을 다질 때
09.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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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권
3월이 지나갔다. 위기 이후에 찾아든 기회라고나 할까. 3월 위기설이 설(說)로 끝나면서 일부 경기지표가 호전되고 있다. 2월 중 광공업생산과 소비가 전월보다 소폭 증가했다. 공장가동률이 상승세로 반전하고 재고도 줄었고 물가도 안정되고 있다. 경기선행지수는 15개월 만에 전월대비 플러스로 반전했다. 기업의 체감경기도 회복되고 있다. 경상수지가 2월에 36억 달러 흑자에 이어 3월에 월간 사상 최대 규모인 5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외화수급사정을 반영하는 경상수지의 월별 흑자 지속은 외화유동성 위기에 대한 일부 외신들의 시비를 줄이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실물경기의 회복 기미에 힘입어 금융시장도 안정세를 다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6일 장중 한때 1,300선을 넘나들었고,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에 머물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도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주가 상승과 환율 안정에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및 채권시장 귀환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일부 지표들이 호전되면서 경기바닥론이 점차 세를 얻고 있다. 그러나 경기바닥론을 신뢰하기에는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일부 지표들이 전월대비로는 소폭 개선되고 있는 모습이나 전년 동기로 보면 아직도 큰 폭의 마이너스인 점에서 그렇다. 주가는 실물경기에 대개 3~6개월 정도 선행하므로 경기저점이 가까워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도 경기침체기에 반짝 주가가 올랐다가 꺼져버린 경우가 많다. 금리인하에 따른 유동성장세로 잠시 주가를 밀어 올렸다가 기업실적으로 대표되는 실물경기가 이를 뒤받치지 못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가늠하는 기업의 설비투자와 고용이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월에 설비투자는 전년 동월 대비 21.2%, 신규 취업자 수는 14만2천 명이나 감소했다. 게다가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수출도 18.3% 감소했다. 수출과 내수가 늘어나야 설비투자와 고용이 증가세로 돌아설 수 있는데 감소폭이 너무 커 증가세로 반전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어서 언제 다시 악화될지 모른다. FRB의 제로금리 수준 금리인하와 양적 완화, 미 정부의 과감한 부실자산정리계획 및 대형 경기부양책 등에 힘입어 뉴욕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것은 희소식이나 아직 남아 있는 불안요인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발표와 GM 등 구조조정과정의 불협화음 등에 따라 미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칠 수도 있다. 제조업과 소비 및 주택경기지표 등 일부 지표에서 호전기미가 나타나고 있으나 경기후퇴의 종료가 아직 멀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의 실업률이 3월중 8.5%로 25년래 최고 수준인데다 올 하반기에는 10%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신규 및 기존주택 판매건수는 늘고 있으나 주택가격 하락세는 지속되고 있어 주택경기가 회복세로 반전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최근 일부 지표의 호전은 경기급락세가 진정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바닥을 찍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오히려 경제주체의 체감경기는 더 나빠지거나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1분기 지나 기업의 부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게 되면 고용사정이 악화되고 개인들이 삶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지난해 4분기의 과도한 하강에 따른 반작용으로 1분기에 전분기 대비 성장률이 플러스를 기록할 수 있으나 소비·투자·수출 등에서 실적이 받쳐주지 않을 경우 2분기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하반기쯤에는 각국의 경기부양책과 부실금융구제안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회복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하반기에는 지난해 하반기의 성장률 급락세에 따른 통계기법상 기저효과에 힘입어서라도 성장률이 많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급반등하기보다는 완만한 회복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각종 경기부양책들이 효과를 나타내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데다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경기침체를 감안할 때 빠른 속도로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반기에 기저효과를 제외한 견실한 성장세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 경제의 체질을 다지는 노력이 절실하다. 경기가 좀 풀린다고 기업체질 개선과 구조조정이 유야무야되어서는 안 된다. 건설·조선부문의 부실을 과감히 도려내어 은행의 건전성 약화를 막고 금융시장의 자금흐름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환율상승으로 누리고 있는 이익에 도취되지 말고 기술 및 품질경쟁력 강화의 재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엔고와 수출 감소에 대응,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일본 기업들에게 경기회복기에는 경쟁력이 밀리지 않도록 경영합리화도 적극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대외채무가 대외채권보다 더 많은 데다 단기외채 비중이 높은 외채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또다시 위기설에 시달릴 수 있다. 금융기관의 총외화차입금 중 단기차입금 비중을 일정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낙관론을 앞장서 피력하기 보다는 향후 예상되는 모든 위험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kahn@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