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지난자료

KERI 지난자료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전문가 칼럼

미국 자동차산업이 주는 교훈

09. 6. 15.

5

권영민

지난 6월 1일 미국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GM이 뉴욕의 연방파산법원에 Chapter 11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로써 지난 4월 30일 역시 파산보호 신청을 냈던 크라이슬러와 더불어 미국의 3대 자동차 메이커 가운데 두 회사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1903년 창립된 Ford자동차와 더불어 그보다 5년 늦게 출발하였으나 이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GM은 그야말로 미국 소비자문화의 꽃인 자동차산업의 선두주자였다. Model T를 출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Ford는 그로부터 18년간 동일 차종을 생산하면서 컨베이어를 이용한 획기적인 조립방식을 통해 생산비용을 절감하였다. 또한 그로부터 얻은 이윤을 바탕으로 근로자의 임금을 두 배 인상하면서도 8시간 노동제를 도입함으로써 근로자들도 자동차를 구매하고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여가여건을 제공하는 등 Ford가 미국 소비자문화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욕구를 지니게 된 소비자들에게 전국적인 판매망과 부품공급체계를 갖추고 다양한 차종을 선보인 GM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자동차에 대한 할부금융제도와 중고차시장의 활성화 등도 GM에 의해 주도되면서 자동차는 점차 없어서는 안 될 내구소비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규모를 키운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유럽의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세계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사실 처음에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소형자동차로 미국시장의 문을 두드린 일본의 자동차회사들을 대수롭지 않은 상대로 여겼다.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소형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그러한 차종을 생산해 내지 못하는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보호주의의 손쉬운 방어수단을 선택한다. 즉 일본자동차에 대한 자율수출제한(VER) 조치를 이끌어냄으로써 자신들의 시장을 지키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주의 조치는 결국 미국 자동차업계의 자충수로 판명되었으니 일본자동차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더욱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된다. 왜냐하면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이 자율수출제한 조치로 높아진 마진을 즐기며 한숨을 돌리는 사이 일본의 자동차회사들은 추가적인 이윤을 부품과 내장의 고급화를 통한 품질향상(Quality Upgrade)에 투입한 것이다. 그 결과 그저 작고 연비가 좋은 자동차라는 인식을 받았던 일본자동차는 이제 안전하고 고장이 적은 우수한 자동차라는 찬사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일본자동차는 소형에서 뿐만 아니라 중대형과 심지어 유럽산의 아성이었던 고급차 시장에서까지 절대적인 강자로 부상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자동차업계는 또 한 번의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고 여겨지는데 그것은 바로 199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다. NAFTA는 물론 자유무역이라는 용어를 포함하고 있지만 자동차산업에서는 62.5%라는 높은 현지조달비율을 부과함으로써 사실상 보호주의적인 성향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이미 상당한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던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북미시장 전체를 넘나들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일본과 유럽의 자동차회사들은 당장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보호주의정책의 효과는 결국 미국 자동차회사들을 또 다시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었다. 즉 일본을 비롯한 외국계 자동차회사들은 오히려 미국 등 북미시장에의 직접투자를 통해 현지 생산시설을 꾸준히 확충하였다. 그 결과 1990년 미국에서 승용차 생산의 78% 이상을 담당하던 미국 자동차회사들의 생산비중은 NAFTA 10년째인 2003년에 57%까지 하락하게 된다. 즉 이제 미국에서 생산되는 승용차의 절반 가까이가 외국계 자동차회사의 미국 현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신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25%의 여전히 높은 관세가 부과되는 트럭과 스포츠레저차량(SUV)의 생산에 주력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고 또한 미국 금융시장의 위기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처한 것이다. 물론 미국의 자동차회사들도 NAFTA 체제에서 생산 재배치, 설비 현대화, 차종 다양화 등 나름대로 구조조정을 실시했으나 그 노력이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미흡했다는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결국 그들은 그 동안 미루어 왔던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의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우리 기업들은 다른 외국의 경쟁자들에 비해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실적이 원화가치의 급격한 하락 등 인위적인 보호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유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의 자동차산업 사태가 보호 속에 안주하여 구조조정의 노력을 게을리하면 세계시장 경쟁에서 탈락하게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권영민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y_kwon@mju.ac.kr)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