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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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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재정적자를 걱정한다

09.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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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요즘 교통정체가 좀 더 심해졌다는 느낌이다. 최근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도로공사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 쓸 만한 보도블록이 교체되는가 하면 상하수도관, 어린이놀이터의 개보수 공사들도 한창이다. 대개 이 같은 모습은 연말에 익숙한데, 올해는 일찍이 여름부터 보게 되었다는 점이 예년과 다르다. 계절적으로 낯선 시기에 이 같은 일이 진행되는 이유는 ‘재정의 조기집행’ 때문이다. 어차피 연말 즈음에 불용예산 처리용으로 사용될 돈이라면 가급적 빨리 써서 당장의 어려움 극복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반드시 지금 해야만 하는 절박한 사업이 아닌 곳에 돈을 쓴다는 점은 여전한 문제이지만, 집행시기를 앞당긴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재정을 조기집행하는 이유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2008년 말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는 금융망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며 그 여파로 많은 나라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각국은 경제적 어려움에 대응하고자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대적인 규모로 추경을 편성, 집행하는 것이나 앞서 이야기한 재정의 조기집행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몇 가지 경기지표가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주식시장이 살아나고 있고, 국지적이기는 하지만 부동산 가격의 회복기미도 감지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몇 가지 지표상의 변화를 본격적 경기회복의 징후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반응이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전 세계적 경기침체를 촉발했던 미국의 경기회복 기미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실물경기 지표들 역시 경기회복을 가늠하기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작금의 경기침체가가 더 나빠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재정적 노력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할 수는 있겠지만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론을 펴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할 점은 현재와 같은 정책기조를 언제까지 지속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의 추경집행을 감안하면 확장적 재정지출 정책의 지속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2008년 말 확정된 우리나라의 관리대상 수지는 21조8천억 원 적자로 GDP 대비 2.1%였지만, 2009년 6월 현재 관리대상 수지는 51조 원으로 그 적자규모가 급격히 증가되고 있다. 51조 원이라면 GDP 대비 5%가량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관리대상 적자의 적정수준인 2%대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재정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현 경제상황이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기인한다는 점, 그리고 세계가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비상상황의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단기적 재정적자의 급증은 어느 정도 용인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전 재정을 지향하는 재정운영의 기조를 생각할 때, 이와 같은 재정적자의 급증은 향후 경제정책의 운영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본질적으로 재정지출이라는 것은 한 번 늘리면 쉽사리 줄이기 어려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를 하방경직성이라고 한다. 결국 재정지출이라는 것은 필요에 따라 쉽게 늘렸다 다시 줄이는 식의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비록 일시적으로 늘린 지출이라 하더라도 이를 원상태로 줄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본디 적자라는 것은 나가는 돈이 들어오는 돈보다 많은 경우 발생하는 것이다. 재정적자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국가재정이라는 큰 지갑에 들어오는 돈(수입)보다 나가는 돈(지출)이 더 많은 경우에 발생한다. 따라서 쉽게 생각하면, 재정지출은 줄이고 재정수입을 늘리게 되면 재정적자는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보다 구체적인 수준으로 들어가게 되면 재정지출의 감소와 재정수입의 증가라는 단순한 처방이 현실적으로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지출의 경우에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하방경직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국방·의료·복지 등 어느 하나 쉽게 줄일 수 있는 분야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성장 기조의 본격화나 고령사회로의 빠른 진입으로 인해 지출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재정수입의 급증 역시 쉽게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번 정부는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세수의 급격한 증대는 기대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감세정책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감세는 본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보다 적은 대가(비효율)로 더 많은 세수를 달성시켜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감세정책이 세수증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경제가 활성화될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빠르게 증가하는 재정적자를 만회할 만큼 세수가 급속히 늘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재정지출 감소나 재정수입 증가는 어느 한쪽도 쉽지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재정운영이라는 것은 보다 긴 호흡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이에 따라 단기적 적자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실제로 나라살림의 구성이 1년 단위사업으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며, 이에 따라 연간 단위 재정운영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중기적 관점에서 재정을 운영한다 하더라도 재정적자폭이 급증하게 되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재정적자가 심각하다는 것, 그리고 이를 해소할 묘안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무게 있게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지금이 경제적 비상상황임은 인정하지만, 이번 경제위기를 넘기고 난 이후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상겸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iamskkim@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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