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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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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법과 제도이슈

포이즌필(poison pill)의 작동원리

08.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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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훈

최근 기업의 경영권방어 수단의 하나인 포이즌필(poison pill)의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다만 아직도 경영진이나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포이즌필의 도입을 반대하는 의견도 다수 있고, 엄격한 조건 하에서 도입하자는 견해도 상당수 있다. 포이즌필의 도입여부와 도입방식에 관한 논쟁의 실마리는 포이즌필이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풀어가야 할 것이다.

포이즌필의 개념: 주식 희석화 메커니즘

포이즌 필이란 공식적인 법률 용어가 아니라 회사가 외부의 질병(적대적 M&A)을 예방하기 위해 평상시 약(pill)을 복용하다가 그 회사를 목표로 한 적대적 M&A 시도가 발생했을 경우 이러한 약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을 형상화한 표현이다.

적대적 M&A를 시도하고자 하는 공격회사가 대상회사를 상당부분 삼켜 목구멍으로 넘기려는 순간 (공격회사가 대상회사의 주식을 상당부분 취득하여 조금만 더 취득하면 지배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되는 순간) 독약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공격회사의 목을 조여와 결국 끝까지 삼키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도록 하거나 또는 삼키는데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게 하는 것 (공격회사가 이미 취득했던 상당부분의 주식을 ‘희석화(dilution)’시켜버림으로써 지배권 취득의 시도를 원점으로 되돌려놓아 결국 공격회사로 하여금 적대적 M&A를 포기하도록 하거나 지배권 취득에 상당한 추가 비용이 소요되도록 하는 것)이다.

공격회사가 가지고 있는 대상회사의 주식을 희석화시킬 수 있는 수단들이 넓게 보면 포이즌필인 것이다. 따라서 현행 상법상 인정되는 ‘제3자 배정 신주발행’제도를 잘만 이용하면 이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주식에는 의결권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제3자에게 신주를 발행하여 인수하도록 한다면 기존 주주들이 주식수에 비례하여 가지고 있던 회사지배권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고 인수시도자가 가지고 있던 주식 역시 희석화 될 것이므로 독약의 효과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의 제3자 배정 신주발행을 이용해 주식을 희석화시켜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는 많은 법적 제약이 있다. 이러한 법적 제약이 없더라도 이를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기 회사의 주식취득을 점점 늘여 가고 있다고 해보자. 이 경우, 그 자의 주식취득 의도가 경영권을 획득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시세차익을 얻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불안한 마음에 미리 신주를 우호적인 제3자에게 발행하여 경영권을 안정시키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주식취득자가 기업인수를 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면 괜한 짓을 한 것이다. 자본조달의 필요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자본을 조달한 것이므로 발행회사뿐 아니라 사회전체적인 관점에서도 낭비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업들은 포이즌필의 도입을 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포이즌필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포이즌필의 핵심요소: 신주예약권(call option)

포이즌필의 핵심요소는 워런트(warrant; 미국) 또는 신주예약권(일본)이라고 불리우는 파생금융상품의 일종인 콜옵션(call option)이다. 일정한 기간내에 일정한 가격으로 발행회사로부터 일정한 수량의 주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권리의 일종이다. 이러한 증권이 우리에게 생소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회사의 임직원에 대해 발행되는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도 일종의 워런트 또는 신주예약권이다. 다만 현재 포이즌필 도입과 관련하여 논의되고 있는 것은 현행법상의 스톡옵션처럼 일정한 조건을 수반하는 법정화된 옵션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이나 요건없이 일반적이고 독립적인 옵션권리를 기업들이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독립된 옵션권리에 기업 스스로 부가적인 여러 가지 조건을 첨가하여 경영권방어수단으로서의 포이즌필을 만들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포이즌필과 신주예약권은 동일한 것이 아니지만 신주예약권이 독약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재료이기 때문에 양자를 동일시 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이러한 옵션을 이용해 포이즌필을 만드는 전형은 회사가 이러한 옵션증권을 개별 보통주 각각에게 배당의 형식으로 발행하며 옵션 증권상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조건을 첨가하는 것이다. 즉 만일 누군가가 회사 주식의 일정지분(일반적으로 20%)을 취득하는 경우 이 자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은 이때부터 할인된 가격으로 대상회사 주식의 매입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이는 것이다. 이 때 20%를 취득한 적대적 매수 시도자만 옵션권리를 행사할 수 없으므로 다른 주주들이 옵션권리를 행사하여 대상회사의 주식을 새롭게 취득하면 적대적 매수시도자가 소유하고 있던 대상회사의 기존 주식이 희석화된다. 따라서 당시까지 유지하고 있던 대상회사에 대한 지배권이 그 만큼 약화되어 적대적 M&A 시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옵션증권을 이용한 포이즌필이 앞에서 설명한 제3자 배정 신주발행제도를 이용한 경우와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은 실질적으로 적대적 M&A 시도(20% 정도의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가 없는 경우에는 회사의 자본구조나 지배구조에 아무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옵션권리의 행사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권리를 행사할 수 없으므로 대상회사의 신주가 발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포이즌필의 핵심재료인 옵션권리와 관련하여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옵션권리가 반드시 경영권방어를 위한 포이즌필의 재료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옵션권리는 원래 포이즌필의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탄생된 것이 아니라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성향의 투자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원활한 자본조달을 위한 수단 또는 자본시장에서의 다양한 이해관계인들 사이의 이해를 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금융상품의 일종이다. 따라서 경영권방어 수단으로서의 포이즌필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단순히 경영권방어 수단 하나의 도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금융수단의 도입 자체를 막을 위험도 있다. 실제로 2006년 상법개정안에서는 신주예약권제도의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결국에는 도입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기업들이 이것으로 포이즌필을 만들어 경영권방어 수단으로 남용할 것을 염려해서였다고 한다.

포이즌필의 적법성 판단: 제도 도입 자체와 구별해야

현재 포이즌필의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칼(신주예약권)을 도입하면 이것으로 사람을 해칠 것(독약을 만들어 남용)이라는 사실을 우려해 칼이 가져다주는 유용성(자본시장에서의 자본조달의 편이와 이해관계의 조정)을 처음부터 포기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용도에 적합한 다양한 종류의 칼이 있고 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럴 경우 비록 칼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해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칼을 사용하며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다만 그 위험성은 사후적으로 사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만일 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허용하더라도 날카로운 칼의 사용을 금지한다면 분명 칼을 사용한 사고율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보고 우리 사회가 더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칼이 분명 위험한 물건이지만 이것이 가져다 주는 효용이 더 크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사용을 통제하며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외부세력의 침입을 막기 위해 칼의 일반적인 용도를 벗어나 이것으로 상대방을 해하더라도 과연 이러한 행위가 형법상의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적법한 것인지 아니면 상해죄 또는 살인죄에 해당하여 위법한 것인지의 여부는 사후적으로 구체적 사건의 여러 정황을 고려하여 법원이 판단하고 있다. 정당방위 상황이 워낙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정당방위 상황을 자세하게 형법에서 나열할 수 없고 기본적 판단기준(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1조)만 마련한 상태에서 구체적 판단은 사법부에서 사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포이즌필도 마찬가지다. 평상시에는 포이즌필의 재료인 옵션권리(신주예약권)를 자본조달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하다가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외부의 세력이 침입했을 경우 이를 이용해 독약을 만들어 경영권을 방어하는 행위가 현 경영진의 자리보존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회사의 이익을 위한 정당한 행위인지에 대한 구체적 판단기준을 사전적으로 마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발생한 구체적 경영권방어 상황을 고려해 본 후 사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옵션권리를 도입할 경우 이것의 남용을 지나치게 우려해 제도 도입에 주저하는 것은 사전적인 ‘제도 자체의 도입’과 이러한 제도를 실질적으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용했을 경우 사후적으로 이루어지는 ‘적법성판단 기준’을 동일한 시점에서 동시에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이즌필 도입을 인정하더라도 특정한 요건을 갖춘 기업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엄격한 제한조건 하에서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이 구체적인 경영권방어 행위 이전 단계에서 사전적으로 지나친 조건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칼을 사용하도록 하면서 사전적으로 특별히 위험성이 있는 전과자나 특정한 사용방법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고율을 줄일지는 몰라도 복잡하고 다양하게 발생하는 정당방위 상황을 모두 사전적으로 고려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인 이익보다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포이즌필이 개발된 1980년 초 이후 지금까지 이에 대한 방대한 법리(法理)는 포이즌필을 사용할 수 있는 기업의 형태나 사용방법에 관한 입법부의 사전적 제한에 관한 것이 아니라 포이즌필을 이용해 구체적으로 경영권방어 행위를 하고 난 후 이루어지는 사후적인 적법성 판단 기준에 관한 것들이다. 30년 동안 포이즌필을 운용한 미국 법원이 적립한 적법성 판단기준은「회사의 사업방향 기조와 효율적인 운영에 대한 “합리적인 위협”이 존재하고 방어조치는 이러한 위협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상응”하는 정도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상당히 추상적으로 설정되어 있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무엇이 “합리적”인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실제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전적으로 설정하기가 그 만큼 어렵고 실효성도 없기 때문이다.

결론

포이즌필의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그 근거로 포이즌필을 도입한 미국회사들이 그렇지 않은 회사들보다 나쁜 기업성과를 보인다거나 특정한 회사지배구조를 갖춘 경우만 좋은 성과를 보인다는 다수의 실증연구를 들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결과를 보이고 있는 실증연구도 그 만큼은 된다. 결국 포이즌필의 도입과 기업의 성과, 회사지배구조 특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별 회사는 선택가능한 다양한 회사지배구조 관련 규정 중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자신들의 주주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제도를 선택하고 이러한 제도는 이러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작동하며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투자자들의 욕구와 이해관계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금융상품의 효용성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해주면서 이것을 이용해 독약을 만들어 경영권을 방어했을 경우 과연 어떠한 기준 하에서 적법성을 판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포이즌필의 작동원리와 본질을 고려해 보면 제도의 남용을 우려해 신주예약권의 도입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며 또한 도입은 하되 지나치게 사전적으로 통제하려는 것도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물론 포이즌필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우리나라에서 우리와 법체계가 다른 미국에서 탄생하고 수 십 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해 온 미국의 포이즌필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최근 미국의 포이즌필을 도입한 일본의 회사법 운용은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같은 입장이었지만 몇 차례의 법개정을 통해 신주예약권 제도를 도입하는 등 지금은 거의 미국에 버금가는 수준의 포이즌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제도를 이용해 포이즌필을 만들어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했을 경우 어떠한 기준하에서 적법성을 판단할 것인가에 대해 경험이 없으므로 미국의 적법성판단기준에 관한 판례법리를 법이 아닌 지침(guideline)이라는 형식으로 마련하여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포이즌필의 작동원리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포이즌필의 도입에 대한 더욱 더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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