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법과 제도이슈
동의명령제의 도입 필요성
08.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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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지난해 8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동의명령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고, 지난달 말엔 법무부도 이에 합의를 해주었다고 한다. 동의명령제란 피심인이 자신의 경쟁제한적 행위의 중지를 포함한 시정방안(경쟁 및 거래질서의 회복)과 거래 상대방이나 소비자 등에 대한 피해의 구제 또는 예방을 위한 시정방안(거래 상대방 및 소비자 보호)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시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그 방안의 타당성이 인정될 경우에 동의명령(consent order)에 의해 사건을 종결짓는 것을 말한다. 이 동의명령제의 도입은 한미 FTA에서 합의된 사항이기도 하다.
동의명령제가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는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첫째, 동의명령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심의·의결, 검사의 수사, 그리고 법원의 재판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과정을 조기에 종결시킴으로써 그 사회적 비용을 줄여준다. 하지만 피심인은 경쟁제한상태를 회복시키는 조치를 스스로 취하고, 피해를 입은 소비자나 상대방에게 직접 손해배상을 하고, 심지어 구조조정조치까지 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동의명령제에 의해서도 공정거래질서는 실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신속하게 회복될 수 있게 된다.
둘째, 동의명령제는 당사자들의 법적인 거래비용을 줄여준다. 공정거래법 위반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그 법위반을 판단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담해야 하는 조사, 협의 등의 인적·물적 비용은 상당히 크다. 특히 피심인의 행위가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매우 전문적이고, 불확실하며 정책적인 사항이어서 어떤 판단이든 수많은 불복소송을 야기한다. 소송에 대처해야 하는 부담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활동비용을 더욱 증대시킨다. 피심인인 기업의 부담도 만만치가 않다. 시정조치를 이행해야 하는 부담뿐만 아니라 기업의 수익률을 현저히 낮추는 과징금 부담, 언론보도에 따른 기업 이미지의 실추와 소비자 소송의 유발, 그리고 주가하락 등 다양한 부담이 기업에 돌아간다. 동의명령제도는 바로 이와 같은 당사자들의 법적인 거래비용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셋째, 동의명령제도는 공정거래법적 제재절차가 시장 자체에 주는 부담을 줄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진행되면, 법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특정한 행위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활동을 이미 하고 있거나 하려고 계획하고 있던 기업들은 법적 불확실성 때문에 그런 활동을 그만두거나 계획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로 인해 관련 분야의 시장은 급격히 위축될 수 있고, 투자자들도 그와 같은 시장으로부터 발길을 돌리게 된다. 동의명령은 이런 부작용을 최대한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동의명령제를 도입함에 있어 계속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몇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동의명령제는 중대한 형사범죄를 처벌할 수 없게 함으로써 형사정의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이다. 그래서 법무부는 동의명령을 승인하기 전에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얻을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법무부는 승인 대신에 사전협의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한 발 양보했다고 한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점은 동의명령이 형벌권을 침해한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동의명령제는 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심의, 의결절차를 거쳐 행해지는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납부명령에 대한 행정소송 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에 따른 형사소송의 승패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한 경우에만 작동하기 쉽기 때문이다.
둘째, 하지만 법위반이 중대하고 명백한 사안인데도 공정거래위원회와 피심인의 은밀한 거래에 의해 동의명령이 발하여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 남용의 가능성은, 이를테면 동의명령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동의명령을 심의하고, 그 남용을 감시하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법무부는 이 위원회에 참여하여 동의명령제의 남용을 적극적으로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법무부가 위원회의 결정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 즉 위원회의 구성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동의명령제가 특히 담합과 같은 사업자나 사업자단체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지도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적용배제는 담합과 같은 행위에 대한 시민사회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적용배제에는 법위반행위 가운데 현실적으로 형사소추의 대상이 되는 것은 중대한 ‘부당한 공동행위’이므로 이를 동의명령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결과적으로 형벌권은 침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의 제재대상이 되는 행위유형 가운데 유독 ‘부당한 공동행위’만을 동의명령의 대상으로부터 배제할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이를테면 관점에 따라서는 개별적 불공정거래행위가 부당한 공동행위보다 오히려 형사상 불법성을 띠는 일탈행위이고, 따라서 적용배제의 대상으로는 개별적 불공정거래행위가 우선적으로 선택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어떤 유형의 불공정거래행위보다도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 동의명령제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동의명령제는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하는 매우 현대적인 수단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경제영역에서 발생하는 법적 정의와 경제적 합리성 사이의 간극을 외면하고, 법이 기업 활동에 대해 융통성 없는 제재를 가하게 되면, 기업의 주가하락과 그에 따른 투자자들의 손실 그리고 경영 악화와 그로 인한 고용불안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기 쉽다. 이를 두고 법체계와 경제체계 사이의 갈등과 충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의명령제는 규제당국 뿐만 아니라 기업의 입장에서도 수용 가능한 조치를 통하여 공정거래질서를 확립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특징인 사회체계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체계 간 통합을 달성하는 하나의 기제가 될 것이다. 동의명령제의 조속한 도입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도 합의지향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기제가 더욱 더 풍부해지기를 기대한다.
이상돈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sdyi@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