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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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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법과 제도이슈

공정거래법 정비작업에 부쳐

08.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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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철

1​. 들어가며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법령선진화추진단을 구성하여 공정거래법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 왔다. 지금쯤이면 30년 이전의 공정거래법의 골격을 우리 경제 수준에 맞추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시기가 되었으므로 필자는 공정위의 이러한 노력을 시의적절한 것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이번의 법령정비작업에 반드시 반영되기를 바라는 내용들을 간략히 적어보고자 한다. 사실 다음의 내용은 필자가 2004년에 이미 어느 정기간행물에 기고하였던 것으로서, 그 이후에도 상황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아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 실체규정의 정비


가.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과 불공정거래행위의 중복문제 해소


우선, 경쟁법은 일반이론상으로는 국적 불명의 개념인 불공정거래행위금지의 조항을 삭제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여하한 방법으로든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금지의 조항과 통합하여 그 내용이 중복되는 문제를 정리하여야 한다.


시장지배력의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 단독행위는 애초부터 경쟁법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공정거래법은 시장지배력 남용에 대해서는 제3조의 2에 그 금지규정을 설정하여 두었으면서도, 다시 제23조에서 불공정거래행위 금지조항을 만들어서 그 남용의 구체적인 유형이라 할 수 있는 행위들을 열거해 두고 있어서 양자의 관계에 관하여 많은 의문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원래 일본이 미국의 경쟁법을 수계하는 과정에서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즉 셔먼법 제1조, 제2조는 그 나름대로의 완결성을 갖되 DOJ가 집행하는 법이고, FTC법 제5조는 역시 그 자체로서의 완결성을 갖되 별도의 기관인 FTC가 집행하는 법일 뿐이지 서로 보완해서 비로소 하나의 경쟁법체계가 완결되는 것이 아님에도, 일본은 공정취인위원회라는 하나의 집행기관만을 설치하면서도 이 두 가지 법체계를 중복하여 그들의 법에 담아와 버린 것이다.


이러한 일본법의 수계상의 오류로 인하여 발생한 큰 문제는 사적독점 또는 거래제한의 금지조항과 불공정한 경쟁방법 금지조항의 중복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양자에 적용되는 ‘경쟁의 실질적 제한’과 ‘공정경쟁 저해성’ 사이에는 위법성의 정도가 다르다는 무리한 해석을 하여야만 할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고, 그래서 공정경쟁의 저해성에 대하여는 그 ‘우려’만 있어도 금지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입법해서 이러한 중복의 문제를 비껴가려고 시도하게 된 것이다.


우리 공정거래법은 일본의 경쟁법을 수계함으로써 일본이 저지른 오류까지 그대로 이어받았다. 더욱이 일본은 사적독점의 금지라는 포괄적인 일반조항으로 그쳤기 때문에 앞서 본 모순을 해석에 의하여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지만, 우리 공정거래법은 제3조의 2 제1항에서 그 구체적인 유형까지 설정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일부는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과 직접으로 중복되게 되었고(제3호, 제4호, 제5호 전단), 일부는 시장에서의 가격결정원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규정(제1호, 제2호, 제5호 후단)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불공정거래행위와의 중복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불공정거래행위에서 요구되는 경쟁제한성은 아주 미약하거나 조그마한 우려만 있어도 되는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경쟁질서와 관계없는 사소한 사적분쟁에 경쟁법의 이름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현상을 야기하였고, 이로 인하여 경쟁당국의 한정된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나. 경쟁법으로의 순수화


다음으로 경쟁법의 순수혈통이 아닌 부분을 분리하여 별도의 법률로서 입법함으로써 경쟁법의 순수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즉 우리의 공정거래법에 포함되어 있는 경제력 집중 억제부분은 그 합헌성과 필요성이 계속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공정거래법과는 별개의 법으로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고, 지금 불공정거래행위의 한 유형으로 편제되어 있는 부당지원행위금지의 조항도 경제력 집중 억제의 한 유형으로서의 요건을 깔끔하게 재설정하여 이 법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이 조항의 요건인 경쟁제한성을 둘러싼 명쾌하지 않는 논의를 정리해야 한다. 물론 이 제도 역시 먼저 경제력 집중 억제제도로서의 합리성과 합헌성을 먼저 이론적으로 재검증할 필요가 있다.


또 경쟁법의 순수성 확보와 관련하여, 불공정한 거래행위의 유형들 중 ‘거래상 지위의 남용‘은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의 보호를 위하여 일본에서만 도입된 유형인데, 이렇게 개별사안의 구제에 관련된 항목을 계속 유지하여야 할 것인지의 여부도 깊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다. 형벌 등 제재조항의 정비


마지막으로 공정거래법의 제재규정인 형벌조항과 과징금 조항들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하여서도 전면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형벌규정은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물론 미국의 셔먼법도 형사법이고 그 위반행위에 대하여는 형벌이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의 불공정거래행위는 시장지배력의 행사가 아닌 경우에도, 또 지극히 미약한 ‘우려’에 의하여도 그 위반이 성립한다. 사업자들로서는 일반 형법의 구성요건과 같은 단순일의적인 행위가 아니라 경쟁당국이 사후적으로 수행하는 경쟁제한성의 평가에 의하여 그 위법성이 좌우되는 행위에 대하여, 예측할 수 없고 광범위한 형사제제의 위험에 무제한적으로 노출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법의 원형인 일본의 독점금지법에도 불공정한 경쟁방법에 대하여는 형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그나마 꼭 필요한 보호장치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 개정 때마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의 기능을 오해하는 폐지론자들로부터 불필요한 공격을 당하고 있는데,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기 위하여서도 원천적인 문제인 형벌법규의 정비가 필요한 것이다.


3. 절차규정의 정비 ▸ 적법절차의 보장


사실 우리의 공정거래법에서 가장 미흡한 부분은 절차규정이다. 사법부가 아니면서 이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독특한 기관인 공정위의 사건처리절차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절차를 법률차원에서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FTC법이나 일본의 독점금지법은 많은 조문을 할애하여 대심적인 심리구조, 증거원칙, 경쟁당국의 자기구속성 등에 관한 규정을 설치해 두고 있다.


우리의 공정위의 사건처리절차에서도 적어도 심사보고서가 작성된 이후에는 피심인에 의해 견제될 기회 없이는(ex parte) 심사관과 위원 사이에서 어떠한 의사교환도 있어서는 안 되고, 심사관이 위원회에 제출하는 증거들의 증거가치는 피심인에 의하여 탄핵될 기회가 반드시 부여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나 우리 법체계상 공정위는 그 처분에 대한 불복을 고등법원에 제기하도록 되어 있어서 일종의 특별법원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대심구조의 제도적 구현은 더욱 절실한 형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심구조의 절차는 공정위 내부의 사건절차규칙의 수준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법률의 형태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4. 조직규정의 정비


위원회라는 조직의 본질적 구성요소는 전문성의 확보와 그 보장을 위한 대외적, 대내적 독립성이다. 거시적인 정책의 입안과 시행을 담당하는 기구는 판단에 필요한 보다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하여 외부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증거에 의하여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그렇게 확정된 사실에 법률을 적용하여 그 위반여부를 판단하는 준사법기구는 대내외적으로 어느 누구의 영향도 받으면 안 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경쟁당국을 위원회 조직으로 설치한 이유이다.


대외적 독립성은 주로 대통령과 그 보좌기구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대내적 독립은 다시 위원회 구성원인 위원 간의 독립과, 심판기구인 협의의 위원회와 소추기구인 심사관 사이의 독립을 말한다. 이때 전자의 독립성은 위원 상호 간의 평등성에 의하여 구현되고 후자의 독립성은 위원회의 대심구조 확보의 문제와 표리관계에 있다.


5. 결론


우리나라에서는 형사법의 과잉집행이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개인 간에 민사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형사고소라는 방법을 주로 선택한 결과 우리나라의 1인당 고소율은 일본의 그것보다 무려 120배나 높다. 남설된 처벌법규와 수사과정에서의 공권력 남용을 막지 못하는 절차규정의 미비 때문에 국민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형사고소만 해놓으면 수사기관이 나서서 인신을 구속하는 등 위협적인 방법으로 합의를 강요해 주고, 겁을 먹은 상대방은 빚을 내어서라도 합의를 모색하게 되므로 국민은 이러한 방법을 선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필자가 설명한 공정거래법의 실체규정, 절차규정, 조직규정들의 미비점들이 종합되어 우리나라에서 경쟁법의 과잉집행을 초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그 부작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쟁법이 ‘경쟁’의 보호수단이 아니라 ‘경쟁자’의 보호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예컨대 기업결합심사절차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차원에서 우리 공정거래법이 가진 제도의 세부적인 내용들이 국제규격의 수준으로 정비되어야만, 궁극적으로는 시장경쟁 자체의 보호라는 경쟁법 본연의 목적에 충실히 이바지하도록 우리 경쟁법의 집행수준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필자는 믿고 있다.


임영철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ycyim@shin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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