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법과 제도이슈
포이즌필 도입 문턱에서 버려야 할 편견들
08.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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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훈
지난 11월 21일, ‘경영권 방어법제 개선위원회’는 일반적으로 ‘포이즌필’이라고 알려진 ‘신주인수선택권’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는 상법 회사편 개정 초안을 마련하여 정부에 제출하였다. 신주인수선택권은 적대적 매수자가 지배권 취득을 위해 대상회사 주식의 일정비율을 매입했을 경우 적대적 매수자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에게만 신주가 발행되도록 하여 적대적 매수자가 취득했던 대상회사의 주식을 희석시킴으로써 경영권 취득을 포기하도록 하는 경영권방어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경영권 방어법제 개선위원회는 지난 4월 법무부가 발족하였고, 법무부는 이번 개정 초안을 바탕으로 공청회와 기획재정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등 다른 경제부처 간 협의를 거쳐 상법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그러나 법무부를 제외한 다른 부처들은 포이즌필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어 아직은 도입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구체적인 개정 초안이 만들어진 만큼 포이즌필 도입논쟁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포이즌필 도입을 눈앞에 둔 현 시점에서 제대로 된 포이즌필의 도입과 정착을 바라며, 이하에서는 포이즌필 도입논쟁 과정에서 흔히 가지기 쉬운 편견들을 제시해 보고 정말 그러한지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물론 필자만 편견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포이즌필 도입논쟁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아직 개정 초안이 공개되지 않아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고 또한 개정 초안의 내용이 확정된 것도 아니므로 이하에서는 포이즌필의 일반이론과 이미 포이즌필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이즌필에 대해 가지기 쉬운 편견들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신주인수선택권과 포이즌필은 동일하다?
흔히 포이즌필(독약증권)과 신주인수선택권(미국에서는 워런트, 일본에서는 신주예약권)을 동일시한다. 그러나 양자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개념상 구별되어야 한다. 양자를 동일시 할 경우 ‘포이즌필’이라는 용어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신주인수선택권 역시 부정적인 제도로 비춰질 수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신주인수선택권은 일정한 기간 내에 발행회사로부터 일정한 수량의 주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의 일종으로 이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주가 상승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주인수선택권을 적대적 매수자가 가지고 있는 주식을 희석시켜 기업인수를 포기하도록 하는 경영권 방어수단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경영권 방어의 기능은 신주인수선택권 기능의 일부에 불과하다. 신주인수선택권은 경영권 방어와 무관하게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성향의 투자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며 원활한 자본조달을 가능하게 해주기 위한 금융상품의 일종이다.
예를 들어 신주인수선택권은 부실기업의 처리와 관련하여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도산상태에 빠진 기업의 갱생을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기업이 자금을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돈을 꿔준다고 해도 이러한 기업이 이자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고 높은 이자 때문에 회생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주식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지만 다 망해가는 기업의 주식을 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때 신주인수선택권이 돌파구를 마련해 준다. 채권자에게 낮은 이자로 빌려줄 것을 요구하며 대신 신주인수선택권을 제공해 준다고 제안하면 채권자도 이를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채권자가 비록 낮은 이자를 받지만 만일 부실기업이 차후에 회생하여 주가가 상승하는 경우, 신주인수선택권을 행사하여 낮은 가격으로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여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으므로 투자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신주인수선택권이 자본시장에서 수행할 수 있는 기능들은 상당히 많다. 만일 신주인수선택권을 경영권 방어수단으로만 생각하며 도입을 주저할 경우에는 이러한 유용한 기능들 역시 잃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 ‘회사법’에는 ‘포이즌필’에 대한 ‘직접적’인 규정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포이즌필 도입논쟁은 ‘독약증권’을 경영권 방어만을 위한 ‘특정한 증권’의 한 종류인 것처럼 보며 이것을 도입할지 말지에 대해 격론을 벌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미 독약증권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회사법’에서는 이러한 독약증권에 대한 규정이 상세히 나와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미국 회사지배구조와 달리 우리나라는 지배주주가 존재하고 사외이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며 기관투자가의 감시를 받고 있지 않으므로 미국 회사법상의 포이즌필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약증권이라는 별도의 증권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으며 미국 회사법과 일본 회사법 어디에도 독약증권 또는 포이즌필이라는 용어조차 없다. 미국 회사법에는 워런트, 일본 회사법에는 신주예약권이라는 용어만 있고 이것에 대해서만 규정되어 있다. 즉 양국의 회사법에서는 경영권 방어와 무관하게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성향의 투자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며 원활한 자본조달을 가능하게 해주기 위해 ‘워런트’와 ‘신주예약권제도’를 마련해놓고 있고, 이것을 경영진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경영진이 이러한 제도들을 사용하여 자본조달이 아닌 경영권 방어의 목적으로 공격회사가 가지고 있는 대상회사의 주식을 희석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었을 때 비로소 ‘독약증권’이 되는 것뿐이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자본조달의 편의를 위해 마련해 놓은 워런트나 신주예약권을 경영권 방어라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였을 경우 어느 정도까지 적법한 사용이라고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주예약권이나 워런트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는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므로 이에 대한 정당한 사용방법을 모두 사전적으로 회사법에 규정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불합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건을 전제로 사후적으로 사법부에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일본 사법부는 미국과 달리 경험이 부족하므로 행정부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의 형식을 통해 적법성 판단기준을 제공해 주고 있다.
포이즌필의 남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전적 행사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포이즌필이 경영진의 이익만을 위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보며 신주인수선택권 자체의 도입을 반대하거나 도입하더라도 이것을 포이즌필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사전적인 요건, 즉 주주총회의 결의를 통해서만 포이즌필을 선택·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거나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고 일정한 사외이사를 갖춘 기업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물론 이러한 사전적 요건들이 갖추어지면 경영진이 포이즌필을 남용할 가능성이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뿐이다. 미국의 실증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사전적 요건을 갖춘 기업이 포이즌필을 도입하였을 경우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일관된 연구는 찾아볼 수 없다.
경영권 분쟁은 대부분 급박한 위기의 상황에서 발생하므로 신속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이 경우 공격자의 적대적 기업인수가 모든 주주와 회사 전체의 이익을 명백히 훼손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주주총회의 결의를 거쳐서만 포이즌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현실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적을 것이다. 또한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고 일정한 수의 사외이사를 갖춘 경우만 포이즌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러한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한 회사는 아무리 회사에 손해를 주는 적대적 기업인수라도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포이즌필 도입의 결정이 이사회 보다는 주주총회에서, 그리고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고 사외이사가 다수인 회사지배구조 하에서 이루어지면 경영진의 권한 남용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건을 회사‘법’에서 포이즌필의 사전적 행사요건으로 규정하게 되면 위에서 본 것처럼 오히려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요건들은 포이즌필의 사전적 행사요건이 아닌 포이즌필을 채택 또는 사용하고 난 후 이루어지는 사후적인 ‘적법성 판단’의 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요건하에서 포이즌필을 사용한 경영진은 자신들의 경영행위에 대해 적법성 판단을 받기가 수월할 것이다. 반면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에는 자신들의 독자적 판단하에 이루어진 포이즌필 사용이 회사와 모든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법원에서 밝혀내야만 하는 엄격한 입증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법원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사전적 행사요건을 법제화하게 되면 경영진은 이러한 설득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된다.
현재 미국에서 포이즌필 도입 기업의 수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우리나라에서 새로 도입하려는 것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
현재 미국에서 정관에 명시적으로 포이즌필을 도입하고 있는 회사의 기관투자가들이 포이즌필 철회를 요구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고 이것은 결국 포이즌필이 주주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우리나라에 포이즌필을 새롭게 도입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가 타당성을 가지려면 모든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기관투자가와 일치하여야 하며, 이러한 기관투자가들의 포이즌필 철회요구가 주주의 이익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특정 목적을 추구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이익이 그 밖의 모든 주주들의 이익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포이즌필 철회요구가 회사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연구도 일관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미국 법원도 경영진이 무조건 기관투자가들의 포이즌필 철회요구를 따라서는 안 되며, 모든 주주와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경영진이 소신껏 의사결정을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또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적대적 인수를 시도하고자 하는 공격자의 입장에서는 대상 미국 기업이 포이즌필을 정관에 명시적으로 도입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포이즌필이란 워런트를 활용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것인데, 미국에서 경영진은 워런트의 사용에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 내에 포이즌필을 만들어낼 수 있고 따라서 모든 미국 기업은 이미 잠재적으로 포이즌필을 도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미국에서처럼 포이즌필을 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상황에 따라 개별 기업이 사용하지 않거나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는 경우와 우리나라에서처럼 처음부터 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서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목욕물(포이즌필의 부정적 측면)을 버리려다 아기(자본조달의 유용한 수단)까지 버리고 마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며
오랜 기간 포이즌필 도입논쟁을 거쳐 이제 도입의 문턱에 이르렀다. 이 시점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도입을 찬성하는 필자의 주장이 미국과 일본에서 운용되고 있는 포이즌필 제도를 우리 ‘회사법’에 그대로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포이즌필 자체’를 ‘회사법’에 도입하자는 견해에 반대한다. 미국과 일본도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다.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행동반경을 넓혀갈 수 있도록 우리나라의 사정에 맞게 회사법에서 신주인수선택권 제도의 적극적 도입을 추진하며 이것을 경영권 방어를 위한 포이즌필로 사용하였을 경우의 적법성 판단기준을 우리나라 회사지배구조의 특징을 고려하며 행정부의 지침과 사법부의 판단을 통해 ‘점차적’으로 적립해 나가는 ‘운용의 묘’를 살려나가자는 것이다.
이번에는 지난 2006년 상법 개정안 논의에서처럼 신주인수선택권이 포이즌필로 사용될 것을 염려해 포이즌필 도입의 문턱에서 도입 자체를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버려야 할 것은 ‘아기(신주인수선택권)’가 아니라 지금까지 포이즌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편견들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