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지난자료

KERI 지난자료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기업법과 제도이슈

미란다 원칙과 변호인-고객간 비밀유지특권

09. 3. 11.

0

정 환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조사과정에서 피조사기업의 권리를 보장하고 조사의 공정성과 투명성 및 신속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앞으로 피조사기업에게 소위 ‘미란다 원칙’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미란다 원칙’이란 공정위의 조사를 받는 피조사기업에게 자신의 권리를 미리 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피조사기업에게 조사 개시 전에 조사기간, 목적 및 범위를 구체적으로 통보하고, 조사는 필요 최소한의 기간과 범위내에서 진행하며, 조사종료 후 3개월 내에 진행상황을 통지하여 피조사기업의 알권리도 보장하겠다고 한다.


원래 ‘미란다 원칙’은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Miranda v. Arizona)에 의해 확립된 형사법 원리로서,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구속할 때 묵비권과 변호인선임권 등을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1963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 경찰은 어네스토 미란다(Ernesto Miranda)를 절도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서로 연행된 미란다는 변호인이 선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관에 의해 조사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2시간 가량의 신문을 받은 뒤 절도·납치·강간 범행을 인정하는 자백과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미란다는 자백을 번복하고, 진술서를 증거로 인정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애리조나주 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20년의 중형을 선고했고, 미란다는 애리조나주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유죄가 인정되었다. 그는 최후 수단으로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는데, 상고장에서 미국 수정헌법 제5조에 보장된 불리한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와 제6조에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했다. 연방대법원은 5대 4의 표결로 애리조나주 대법원 판결을 기각하고 재판을 다시 할 것을 명하면서 자백은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기각의 이유는 미란다가 묵비권 및 변호인선임권 등의 권리를 고지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미란다는 다시 재판을 받았고 다른 증거에 의해 유죄가 선고되어 11년간을 복역하였다.

미란다 판결 이후 대부분의 주정부 경찰들은 연방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미란다 경고문을 준비하여 수사관들이 피의자를 구속하거나 신문할 때 이 경고문을 미리 읽어 주도록 했고, 이후 미국 영화에서 경찰관이 범인을 체포할 때 종종 이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미란다 판결 이후 미란다 경고가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서도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는 미란다 판결로 인해 범죄자들이 무죄 석방되리라는 우려가 기우로 판명되었다.

공정위가 ‘미란다 원칙’을 천명한 것은 피조사기업의 권리보장을 중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되며, 특히 적법절차(due process)의 원칙에 따라 행정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점에서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피조사기업에 대한 ‘미란다 원칙’의 고지를 통해 기업 입장에서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함께 실질적 권리보호에 상당한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행정기관의 이러한 노력을 계기로 기업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절차 및 법원의 소송절차에서 변호인-고객간 비밀유지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이 보장되게 함으로써 실질적인 면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확보되었으면 한다.

변호인-고객간 비밀유지특권이라 함은 고객이 변호인과의 비밀스런 의사소통의 내용에 대한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변호인-고객간 비밀유지특권에 의해 변호인과 고객은 법률자문이나 조력을 제공하고 받는 과정에서 교환된 비밀스런 의사소통의 내용이 강제적으로 공개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변호인-고객간 비밀유지특권은 변호인과 고객간의 숨김없고, 솔직하며, 제약 없는 의사소통을 촉진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로서, 이를 통해 고객이 제공하는 모든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변호인은 고객의 법률적 수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변호인-고객간 비밀유지특권은 국민들이 변호인의 효과적인 조력을 받을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근간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변호인-고객간 비밀유지특권은 고대 로마에서 비롯되어 영국 보통법을 거쳐 영미법의 중요한 법원칙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현재는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널리 인정되고 있다. 변호인과 비밀을 유지하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면 고객은 변호인으로부터 효과적인 조력을 받을 수 없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변호인-고객간 비밀유지특권은 법률상 허용되는 행위가 무엇이고 법률에 따라 올바르게 행동하고자 할 때 어떠한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등 변호인이 고객을 돕는데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외에도 변호인-고객간 비밀유지특권은 기업이 임직원의 위법행위를 조사하고 문제점을 최대한 빨리 시정하고자 할 때 외부에 공개될 위험이 없이 변호인으로 하여금 자체 조사를 철저히 수행하게 하고 고객이 변호인과 충분하게 의사소통을 하도록 보장해 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러한 장점은 기업은 물론 사회 전체에 커다란 효용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예상된다.

정 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hjeong@shinkim.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