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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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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법과 제도이슈

미국 경제위기가 우리 법제에 말하는 것

09.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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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재

최근 미국 경제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회복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반면에 크루그먼과 같은 경제학자들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심지어 뉴욕대의 루비니 교수 같은 비관론자는 ‘베어마켓 랠리(bear market sucker's rally)', '죽은 고양이의 반등(dead cat bounce)‘이라고 최근의 상황을 규정짓는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세계화를 진전시킨 바 있다. 우리의 뜻이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이 IMF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라는 단어가 상법을 포함한 기업법 관련 문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던 것도 이러한 영향력 하에서 가능하였다. 우리는 하나의 정답이 있고, 그 정답을 풀어내는 과제를 받은 학생처럼 기업 관련 법제를 정비하였다.

우리 경제성장이 따라잡기 전략(catch-up strategy)에 기초한 것이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기업법제도 따라잡기 전략을 사용하였다. ‘좋은’ 기업지배구조에 대칭되는 ‘나쁜’ 지배구조가 상정되었다. 일본의 신회사법 개정이 이루어지니 우리도 회사법제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신회사법에 대한 대대적인 소개와 함께 이루어졌다. 지주회사구조는 갑자기 얼음 속에서 깨어난 트랜스포머라는 영화 속의 ‘메가트론’이라는 강력한 로봇처럼 인식되어 우리나라 기업집단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으로 제시되었다.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우리 기업들에게는 ‘옵티무스 프라임’과 같은 로봇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주회사구조가 특정기업집단의 지배구조로 어울릴 수 있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는 여러 가지 실증연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집을 구입한 사실도 없고, 우리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과 같은 경제위기 지원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는 더더욱 없다. 그러나 미국발 경제위기는 우리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 태풍으로 불어 닥치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는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관심도 없었을 베어스턴스가 운영하던 헤지펀드나 리먼 브라더스와 관련된 CDS(Credit Default Swap) 등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있다.

미국 경제위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나? 시류에 부합하는 유행은 있더라도 어떤 시기에도 통하는 하나의 좋은 지배구조가 존재하는가? 좋은 지배구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기업들의 역사와 제품라인업, 기업의 혁신성향 등에 비추어 당해 기업의 특성을 잘 반영하는 지배구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품설계에서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장애인이나 일반인 모두에게 편리한 디자인이라는 의미에서 좋은 디자인이지만 기업법제의 설계 내지 제도설계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 회사법제가 기본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가져왔던 틀인 정관자치를 통한 개별기업들의 맞춤형 설계를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면서 안정적인 고용을 확보할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는 정도의 생각을 할 수 있겠다.

금융법제도 마찬가지이다. 금융법제에서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었다. 그러나 투자은행이 ‘유일한’ 방향은 아니었다는 것은 이번 5대 투자은행의 몰락에서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투자은행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모든 증권회사가 투자은행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안정적인 수수료 기반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하여야 할 브로커 모델이 적합한 증권사가 있고, 치열해지는 시장상황을 고려하여 스스로 본인투자(principle investment)를 하는 모델로 나가는 것이 필요한 증권사가 있다. 마켓 포지셔닝(market positioning)을 해서 각자의 생존방향을 잡아야 할 뿐이다. 제도적으로는 금융회사의 혁신이나 창의가 가능해지도록 장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그 역할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해야 한다.

2002년 엔론 사태 이후 미국은 회계부정 사태를 경험하면서 전문가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미국의 US GAAP(Generally Accepted Accounting Principle)이 결코 원칙중심의 회계보다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우쳤다. 그러면서 SOX(Sarbanes-Oxley Act)를 통과시키고, 아서 앤더슨이라는 유서 깊은 회계법인을 없앴다. 이번 사태에는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02년 이후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SOX가 지나친 규제를 하고 있다는 반론이 나왔다. 그렇지만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회계법인들이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잘 했어야 했는데, 그들은 자문료라는 행복감에 취해 회계감사(auditing)라는 본연의 업무에 눈을 감고 말았다. 이번에는 신용평가회사(Credit rating agency)들이 회계법인의 자리에 있다. 금융규제의 알파(α)는 문지기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한다. 금융규제와 관련하여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선진금융기법이라는 구조화금융(Structured Finance)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던 시기에 RMBS(Residential Mortgage-Backed Security)나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는 기적의 묘약이었다. 그리고 지금 논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원래 나쁜 고기가 햄버거 패치형태로 바뀐다고 좋은 고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었던가. 전문가들은 불어인 ‘트란시(tranche)’, ‘메자닌(mezzanine)’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서, 뭔가 대단한 묘약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CDS는 거의 위험이 없는 것으로 말해지면서 금융회사들이 길에서 줍는 그린백(greenback: 미국 달러)처럼 인식되었다. 결국 기적은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금융회사들이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을 이용해서 공장(흔히 ‘factory’라는 말을 쓴다)에서 내놓은 이런 첨단 금융상품들이 버블을 만들어서 지금의 고통을 주고 있다. 버블은 인간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규제당국도 감히 손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소규모 개방경제에 있는 우리는 지금 오히려 ‘선진금융기법’을 지속적으로 익혀야 한다. 뒤로 물러설 것이 아니라 규제당국도 금융회사들도 그 위험성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화재위험이 있다고 불의 이점을 포기할 수는 없다. 불을 잘 사용하고 통제하여 위험을 대비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미국발 경제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현자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법이다.

최승재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lawntech@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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