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법과 제도이슈
금융위기 해법과 법경제학
09. 5. 6.
5
신석훈
최근 세계 각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대책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통적인 금융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를 겪을 이유가 없다. 모든 합리적인 투자자들이 이용가능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미래의 현금수익에 대한 기대치를 예상하며 자신이 취득하고자 하는 증권의 현재가치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지금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되풀이되어 왔다. 이것은 결국 투자자들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며, 비록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투자자 집단 전체의 관점에서 나타나는 행동의 결과는 그렇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금융관련법은 이러한 의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왔다.
예를 들어 회사법에서는 개별 주주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이러한 행위의 집단적 결과 역시 합리적 결과, 즉 회사전체 이익의 극대화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주주들의 권한 강화에 힘써 왔다. 회사의 매각여부를 결정하는 적대적 기업인수 상황에서 공격회사와 대상회사의 개별 주주들 사이의 주식거래에 제3자인 경영진이 끼어들어 경영권방어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주의 대리인인 경영진보다 주인인 개별 주주들이 회사의 최적가치를 가장 잘 파악하며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주주의 대리인인 경영진 역시 자기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 즉 주주의 이익이 훼손되더라도 자신의 이익에 합치되면 항상 그러한 방향으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주주와 경영진의 행동원리에 대한 이러한 가정하에서 회사법상의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법의 설계와 운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의 적용을 받는 주체들의 행동원리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복잡한 행동원리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법학은 경제학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이것이 법경제학(law and economics)이라는 학문이 생겨나게 된 이유이다.
법경제학은 가격이 변화할 때 사람들의 인센티브 변화와 이에 따른 행동 변화를 예측하는 경제학의 기본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법이 변화할 때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예측하며 바람직한 법을 설계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법경제학에서는 인간행동을 예측하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은 장려하고 그렇지 못한 행동은 억제하기 위해 법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법경제학에서는 전통적인 경제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전제하에 인간행동을 예측하며 법의 역할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간이 대부분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는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므로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한 법의 설계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근의 법경제학은 전통적인 경제학에 심리학과 사회학을 접목시켜 인간의 행동원리를 더욱 철저히 밝혀낸 공로로 2002년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다니엘 카네만 교수의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을 받아들이며 이러한 한계를 보충해 나가고 있다. 여기서는 인간 행동 원리에 대한 다양한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며 자신만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법을 분석하는 목적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전통적인 경제학의 기본가정을 대체하기 위함이 아니다. 기존 이론의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수정해 현실에서 인간의 행동을 보다 잘 예측하며 바람직한 법을 설계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의 행동원리를 예측하며 바람직한 제도 설계를 모색하는 금융 관련법도 이러한 행동경제학을 참조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럴 경우 지금까지 이러한 역할을 해왔던 기존 경제학분야의 금융이론들과 갈등이 우려될 수도 있다. 수학적 방법론에 기초한 최첨단 금융공학이 심리학이나 사회학적 방법론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잡한 인간의 행동원리를 파악하며 법을 설계하고자 할 때 여러 분석 도구들을 가지고 있으면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어 오히려 득이 되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뉴톤역학을 오직 마찰이 존재하지 않는 조건하에서만 적용한다면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 분야에서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마찰을 고려한다면 뉴톤역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고 이를 응용한 과학기술은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해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전통적인 경제학에 기초한 최첨단 금융공학과 행동경제학의 만남은 기존 금융공학의 기능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며 현실 적용가능성을 더욱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인간의 행동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가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금융정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책들도 우리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와 관련된 단순할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의도는 좋았지만 엉뚱한 결과를 야기했던 대부분의 정책들과 규제들이 인간행동원리에 대한 잘못된 예측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