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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지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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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법과 제도이슈

회사의 본질과 에버랜드 판결

09.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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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훈

지난 5월 29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한 경영권 승계 건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로 종결됐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에버랜드가 전환가격을 7,700원으로 하는 전환사채를 주주배정 형식으로 발행했으나 기존 주주들이 이를 인수하지 않자 경영진이 실권된 부분을 이사회 결의를 통해 제3자인 특정인에게 배정한 것이 ‘형법상 배임죄’에 해당하느냐 하는 것이었으나 그렇지 않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하에서는 회사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형법 제355조 제2항에 의하면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성립한다. 지금까지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견해의 주장은 경영진이 가능한 최대한의 자금이 회사에 유입되도록 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고 보고,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가격을 정상적으로 책정했더라면 7,700원보다 훨씬 많은 자금이 회사로 유입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이는 회사의 본질이라는 원론적 관점에서 보면 틀린 말이다.


흔히 기업과 회사를 동일시하지만 엄격히 따져보면 각기 다르다. 예를 들어 ‘개인 기업’의 경우 기업가가 자신의 자금으로 기업운영에 필요한 자산을 구입하여 이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고 부족한 자금은 자신이 채무자의 지위에서 채권자로부터 차입하며 자신이 직접 경영한다. 반면 ‘회사’는 기업조직 중 ‘주식’을 매개로 불특정 다수로부터 대규모의 자금을 끌어 모으는 자본조달 방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직관적으로 보면 개인 기업에서의 기업가가 수많은 주주들로 분할된 상태이다. 그러나 이때 주식을 매개로 끌어들인 자금으로 구입한 회사의 자산을 수많은 주주들이 공동소유하고, 채권자로부터 돈을 빌려올 때 수많은 주주들이 채무자의 지위에서 계약을 체결하며, 이렇게 갖추어진 기반 위에서 수많은 주주들이 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인 자연인에 대응하는 법인이라는 별도의 법적 인격체를 제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주주와는 다른 별도의 인격체에 이사회나 대표이사 등의 기관을 만들어 마치 인간처럼 법적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회사와 관련해서 발생하는 법적 권리의무 관계가 법인에게 직접 귀속되도록 하면 효율적이다. 따라서 회사 자산은 법인인 회사가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하게 되고 주주는 자산의 소유자인 법인에 대해 채권자의 몫인 부채를 제외한 나머지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이 권리를 금액으로 평가한 것이 바로 자본이다. 그런데 이때 모든 주주들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회사의 성과에 자신들의 이익이 좌우된다면 마음 놓고 투자하기를 꺼려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투자할 유인을 제공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어떠한 경우에도 주주 자신들이 내놓은 돈 이외에는 금전적 부담을 질 필요가 없는 ‘유한책임제도’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반대로 회사라는 법적 주체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이 자칫 돈을 받지 못할 위험이 있으므로 회사법은 유한책임이라는 특혜를 주주에게 부여하는 대신, 회사의 성립부터 해산 시까지 발행주식의 액면총액에 해당하는 재산액을 회사 내에 유보할 ‘자본충실의 원칙’을 설정하여 주주에 의한 회사재산의 부당 유출을 방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회사를 제도적으로 법인화한 것은 정말로 회사가 생명체를 가진 인격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법적 처리를 간편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적 차원이 아닌 실질적인 문제를 다룰 때는 당연히 회사가 별도의 인격체라는 논리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실질관계를 중요시 하며 세금문제를 다루는 법인세법에서는 법인과 주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증자·감자·배당 등과 같은 법률행위를 ‘자본거래’라고 하며, 이러한 행위로 법인의 손익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본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쌈지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실질적 관계를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형법적 문제와 관련된 에버랜드 사건에서도 배임죄 적용의 대상이 되는 경영진의 전환사채 발행 행위는 자본거래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저가로 발행했다고 해서 ‘회사’가 ‘손실’을 입었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자본충실의무를 최대한의 자금이 회사에 유입되도록 할 의무로 보며 경영진이 이러한 원칙을 위반했으므로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본충실의 원칙은 액면가 이상의 자금이 회사로 유입되도록 하는 것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채권자 보호를 위해 최소한 발행주식 액면총액에 해당하는 재산액만큼이 회사내에 유보될 것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실질적으로 손해 본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관계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만들어 놓은 법인이 손해를 입었다고 보며 자연인인 경영자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는 논리는 적절하지 못하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어떠한 형태의 자본거래도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는 경우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전환사채를 기존 주주들에게 배정한 에버랜드 사안의 경우와 달리 앞으로 주주가 될 제3자에게 저가로 발행할 경우 역시 자본거래에 해당하므로 앞에서 설명한 동일한 논리에 따라 회사에게는 아무 손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의 주주들은 제3자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자신들의 주식이 희석되어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회사의 손익과 무관한 주주 간의 비례적 분배와 관련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죄를 다스리는 형법이라는 최후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이미 회사법상의 다양한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을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수단으로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헌법에서 국민의 기본권 제한의 한계로 ‘과잉금지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


흔히 회사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시장이라는 무의식의 바다로 둘러싸인 의식의 섬(Islands of Conscious Power)”이라는 표현을 통해 회사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시장의 기능은 리더 없이 수행되지만, 회사에서는 리더가 있어야만 하고 이것이 시장이라는 생산 메커니즘과 회사라는 생산 메커니즘을 구별 짓는 본질적 요소라는 것이다. 회사법은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을 통해 이러한 본질적 요소가 유지될 수 있도록 기능하고 있다.


이번 에버랜드 판결을 계기로 회사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사용해 왔던 형법이라는 최후적 수단이 ‘의식의 섬인 회사’를 ‘무의식의 바다’로 침몰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았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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