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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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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소비세 개편방향에 대한 소고


우리나라의 개별소비세제는 흔히 3대 재정품목으로 불리는 술, 담배, 에너지(주로 석유류)를 주축으로 과세하고 있다. 부수적으로 개별소비세의 명칭 아래 자동차, 일부의 대형가전제품, 보석?귀금속류, 고급가구, 모피제품, 시계?카메라, 녹용 등을 대상으로 소위 ‘사치세’ 과세라는 명분으로 과세하고 있다. 서구선진국을 포함하여 우리와 소득수준이 비슷한 국가들은 대부분 개별소비세의 과세대상 범위를 3대 재정품목에 국한하고 있다. 사치세의 의미를 지니는 개별소비세를 운용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에서 사치세적 성격의 개별소비세를 과세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소비의 대중화가 확산됨에 따라 사치세 과세의 의미가 퇴색하여 형평성 제고 기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개별소비세의 과세로 인한 수요 억제효과는, 생산?공급 측면에서 기대할 수 있었던 “규모의 경제”를 저해하는 효과가 크다. 특히 자동차 개별소비세의 경우에는 과표산정시에 국산자동차가 수입자동차보다 불리하게 되어 세부담의 역차별 현상까지 나타나는 등 부작용도 상당히 심각하다.


자동차 등을 포함하여 일부의 고가 내구재를 대상으로 개별소비세를 과세하는 선진국도 일부 있다. 다만 그런 국가들은 자국내 해당 품목의 생산이 없고, 인구?경제규모?국토면적이 매우 작은 소국들이다. 고가 내구소비재의 수입?보유를 억제하는 의미에서 자동차 등을 과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입 억제를 목적으로 개별소비세를 과세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불공정무역에 해당하여 세계무역기구 차원에서 금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자국내 생산이 없는 경우에는 자국내 동종 제품에 대한 ‘내국민대우’ 원칙이나 ‘비차별적 시장접근’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따라서 별 문제 없이 수입?보유 억제 목적의 개별소비세를 운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극히 예외적인 사항에 해당된다. 자동차의 대량생산국으로서 자동차 산업이 국가경제의 기간산업으로 주축을 담당하고 있는 가운데 개별소비세를 과세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실정이다.


현행의 개별소비세는 1977년 7월, 아시아에서 최초로 부가가치세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물품세 과세체계를 이어받아 특별소비세라는 이름으로 과세하기 시작한 데 연유하고 있다. 경제개발 초기로서 소득수준이 높지 않았던 당시에는, 말뜻 그대로, 주로 고소득층이나 자산가들이 많이 소비하는 특별한 고가의 몇몇 소비품목을 대상으로, 일반 생활필수품과 구별하여 높은 세율로 과세하였다.


특별소비세가 도입된 시점에는 상기의 품목 외에도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열난방기 등이 과세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품목은 현재 모두 대중적으로 보급이 완료된 생활필수품이지만, 70년대에는 보급률이 한자리 수에 불과할 정도로 일반 가정에서 쉽게 구비하지 못하는 고가의 사치품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소수 극상위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승용자동차와 연료유(주로 휘발유)와 나란히 이들 품목에도 특별소비세가 과세되었던 것은, 말뜻 그대로 특별소비세가 “사치세”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밖에 당시에는 고소득층 소비품목 위주로 과세함으로써, 조세수입 확보 및 소득재분배 기능의 보정, 경제개발 투자재원 조성을 위한 저축 장려, 수입대체?억제를 통한 외화절감, 국제수지 방어 등과 같은 부수적인 과세목적도 상당히 컸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실효성이 의문시되거나 또는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이 있나”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경제 및 재정규모가 작고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았던 당시의 경제상황에서는 그러한 정책효과가 상당히 컸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1986년과 1988년의 아시안게임?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일반 가전제품에 대한 대중적 보급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90년대 접어들면서 가전제품 보급률이 100%를 초과하기 시작하였다.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면서 승용자동차를 중심으로 자동차 보급과 유류 소비도 급증하였다. 과거 일부 고소득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가전제품의 대중화와 중?저소득층으로의 자동차 구입?보유의 확산은, 본격적으로 특별소비세의 사치세 기능을 사라지게 하는 한편, 세부담 구조를 소득역진적인 방향으로 바뀌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동차 보급 및 연료유 소비가 급증하면서 환경오염물질 배출 증가에 따른 대기환경 악화와 교통혼잡 등과 같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삶의 질을 급격하게 악화시키는 부작용, 즉 소위 외부불경제 문제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소비환경의 변화는 사치세로서 기능하던 특별소비세의 과세환경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질되는 가운데 외부불경제 축소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하였다. 변화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정부는 1995년부터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류 과세체계를 가격기준의 종가세에서 물량기준의 종량세 체계로 개편하였다. 환경 차원에서의 석유류 수요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국민들의 소비구조가 대중소비화되면서 특별소비세의 사치세 기능 약화추세를 인지하고 세율을 하향조정하였다. 특히 1999년과 2004년 두 차례의 혁신적인 개편을 통해 가전제품과 상당수의 식음료품을 과세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자동차와 석유류, 그리고 과세의 실익은 별로 없지만 국민정서상 저항감이 큰 보석?귀금속제품, 시계, 카메라, 모피제품, 가구 등을 과세대상에 잔류시켰다. 특별소비세가 더 이상 특별한 품목에 과세하는 소비세가 아니라는 인식 하에 가치중립적이면서 친환경세제로서의 면모를 변신한다는 의미에서 2008년부터 개별소비세로 세목의 명칭도 개편하였다. 환경적 측면에서의 과세기능을 보완하고자 에너지 효율 제고라는 정책목표를 표방하면서, 2004년에 폐지되었던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TV 중 대형제품을 대상으로 2009년부터 개별소비세를 다시 과세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큰 맥락에서 볼 때, 현행 개별소비세의 구조변화가, 변화한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였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우리 경제발전단계 및 소득수준, 규모의 경제에 바탕을 둔 대량 산업생산 및 수출을 통한 성장모델을 지니고 있는 우리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세부적으로는 구조변화의 모습이 미흡하거나 아직도 진행형으로서 추가적인 보완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점이 여러 군데 있다.


사치세로서의 특별소비세가 주로 기능하였던 과거 시점에서는, 경제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공급 측면에서 산업생산을 저해하는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던 반면, 수요관리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장점이 상당히 컸다. 그러나 소비패턴의 고도화?대중화가 완료된 현 시점에서는 수요관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장점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반면, 수요 통제로 인해 산업생산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방해하거나, 고부가가치 시장의 태동을 저해하는 등 공급 측면에서의 부정적인 효과가 결코 작지 않다.


모두에서 예를 들었듯이, 세계 유수의 자동차 대량생산국에서 자동차에 대해 개별소비세를 과세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점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비록 과세품목의 수가 소수지만 일부 가전제품에 대해 개별소비세를 과세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과세목적은 에너지 효율 제고 촉진에 있지만, 가격 인상으로 인해 기존의 저효율 제품에 대한 교체주기를 늘림으로써 기회비용적 관점에서 오히려 에너지소비 절감효과를 저해하는 부정적인 효과도 작지 않다. 일단 구입 후에는 에너지 소비절감의 유인이 없다는 점에서도 대형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의 과세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에너지 소비절약이나 효율개선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직접적으로 에너지 가격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선택이다.


세계적으로 시장의 절대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소위 명품시장은 고가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 미래성장성이 높다.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장을 위해서는 국내명품시장 및 브랜드 육성이 절실하다. 명품시장은 초기 시장진입이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보석?귀금속제품이나 장신구, 고급 디자인 등에 기반을 둔 모피제품, 가구, 시계, 카메라 등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손재주와 심미적 안목, 기술력 등을 감안할 때 성장성과 세계시장진출 가능성 등, 산업성장의 잠재성이 큰 품목들이다. 이들 품목의 경우 지원은커녕 개별소비세 과세를 통해 국내시장 태동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 유수의 명품 브랜드 보유국가들치고 해당 품목에 대해 개별소비세를 과세하는 국가가 하나도 없음은 별도의 추가적인 설명이 없더라도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매우 크다.


국민정서상 상기의 품목들을 비과세하는 것에 대해 저항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실없는 명분을 지속하기 보다는, 지속가능성장 기반을 조성을 위해 보다 실효성 높은 경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절실하다.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장 기반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이미 사치세 과세기능이 사라진 반면 그로 인한 역기능이 압도하고 있는 개별소비세의 과세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성명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mjaesung@hongik.ac.kr)

*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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