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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보다 시급한 정치민주화


지난 대선의 핵심 어젠다였던 경제민주화, 아직도 정치권에서 화두다. 이명박 정부에서 주창된 공정사회, 동반성장이 경제민주화의 불씨를 당겼다. 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인 불공정, 불균형, 반칙은 시정해야 하고 지탄받아 마땅할 수도 있다. 또한 창조적 자본주의, 깨어있는 자본주의, 자본주의 4.0 등 대안적 자본주의 논의와 함께 기업의 투명성, 공정성, 도덕성 제고는 건강한 경쟁사회의 토대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다수 국민들은 기업이 정당하게 부를 축적하길 바랄 뿐, 기업 활동 자체의 위축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도외시한 채 정치권은 부르기 쉽다고 경제민주화만 18번 애창할 게 아니다. 국민이 진정 듣고 싶은 소리는 정치민주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사회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가기능이 시장을 대신하는 리버스시대가 진행 중이다. 보이는 손이 커가는 상황에서 자칫 정치권력이 제구실을 못할 경우, 국가쇠퇴의 위험성이 우려된다. 그리스, 이탈리아의 재정위기에서 보듯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정치다. 국민에 아부하는 인기 영합주의와 복지국가 환상이 재정적자를 심화시킨 요인이다. 일찍이 K. Popper는 “모든 정치적 이상 가운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소망이 가장 위험하다.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의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고 역설했다. 정치트러블이 경제리스크로 전이되어 국가위기를 초래했다. 이러한 엄연한 사실과 심각성을 아직도 정치인만 모르는 듯하다. 정치가 국가경쟁력 걸림돌이란 사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창조사회에 걸맞는 ‘정치민주화’실현으로 국가 경쟁력 제고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책결정 불투명성(133위), 불합리한 규제(114위), 예산지출낭비(107위), 공무원 의사결정의 공정성(89위) 등 정치권을 비롯한 공공부문의 경쟁력은 바닥수준이다. 기업하기 정말 힘들고 정치하기 참 좋은 나라가 대한민국 현주소로 인식되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의 골이 깊어간다. 정치적 고질병을 놔둔 채 경제민주화타령 일삼는 모습은 제 눈의 들보는 못 본채 남의 눈에 티만 트집 잡는 뻔뻔한 짓이다.


지금껏 국가는 식민지배와 군부독재가 남긴 과잉 행정 기제 그리고 분단구조가 낳은 안보위기로 과대 성장했다. 산업화에 이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관성으로 인한 정치권력의 일방적 지배가 계속되었다. 모든 공직자는 공복이요, 정치는 서비스란 얘기는 헌법조문에 불과하다. 국민위에 군림하는 정치위세가 여전하다. 과거에도 지겹게 봐왔는데 그 꼴이 변함없다. 당연한 서비스인 정책을 시혜로 착각하거나 국민을 숫자나 케이스로 취급할 정도로 권위적이다. 혹시 했는데 역시 19대국회도 기업인을 윽박지르며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이해득실에 얽매인 정치싸움으로 부지하세월이다. 예측 불가능하며 부패한 정치권이 갑 입장에서 국민, 기업을 우습게 보는 행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은 정보지식시대를 넘어 창조사회를 지향한다. 하지만 아직도 정치인 의식과 행태는 농경시대의 유교의 권위주의적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환경이 스마트흐름과 개방화로 급변하는데 정당구조와 정치문화는 계급질서와 상명하복이 강조되는 폐쇄적 권위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생을 외면한 채 법안 처리에 소홀한 사이에 표밭을 다지기 위한 지역구 현안 법안은 서슴없이 처리하는 국회는 정부에 대한 견제?감독은커녕 규제방치에 엉터리 법안까지 양산하고 있다.


1966년 인분이 등장한 이후 해머, 전기톱에 최루탄 테러까지 이어지면서 국제적 망신까지 자초하였다. 국회와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이 통하지 않는 갈등구조, 국익과 직결되는 문제를 정치적 이슈와 결부시키는 모습은 수십 년 전부터 내려온 병폐다.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는다. 갈 길 먼 의회민주주의의 불편한 진실이다. 19대 국회를 돌이켜보면 여야대치로 국회법이 규정한 본회의가 열리지 못해 42일 만에 의장단을 선출했다. 정부예산안 및 정부조직법 늑장처리 등으로 식물국회라 비판 받았다. 현행 국회법 상 국정 전반에 대해 장관(국무위원)을 상대로 질의할 수 있지만 질의 시간 48시간 이전에 구체적으로 작성한 질문요지를 정부에 보내야 한다. 하지만 이조차 무시되어 대정부 질의는 물론 청문, 감사, 비준도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렇듯 불량한 국회야말로 민주화 우선대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여론기관의 조사결과, 국회가 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질문에 국민의 5.3%만 긍정하는 것으로 드러나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이 법을 가장 지키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제민주화 이전에 법위에 군림하는 국회가 직면한 바닥수준의 정치신뢰부터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최근 시민사회 확장, 정부와 민간 간 협력과 파트너십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민주화와 의회민주주의의 실천이 요구된다. 시민참여와 소통확대를 통한 민주정치의 구현을 위해 권위주의 정치도 청산해야 한다. 만일 시대적 흐름을 거슬러 경제민주화라는 명분하에 정치가 경제에 개입한다면 더 많은 규제와 간섭이 생기면서 국가권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개인과 시장의 자유는 감소하면서 경제활동의 주권이 권력에 귀속되는 상황이 야기될 수 있다. 심지어 정치인이 정치적 이익에 따라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특정지역이나 이익집단에 유리한 규제나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구성원 간 갈등과 지역분열을 초래하면서 궁극적으로 공동체정신과 사회통합을 와해시킬 수 있다.


‘정치민주화’ 선행으로 국민신뢰 회복해야


정치민주화를 위해 국민이 신뢰하는 의정활동이 시급하다. 의원의 비윤리적 행위를 제한하고 엄중한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독일은 의원행동강령에서 의원직 인수 전 직업과 관련한 활동을 신고하고, 의원 재임 중 수행하는 다른 업무를 신고하게 해 정치비리를 차단하고 있다. 미국도 하원 의사규칙에 의원이 직위를 이용해 부적절한 보수를 받을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연설과 기고의 사례금은 물론 단일품목으로 50달러 이상의 선물수수금지, 1년 중 한 곳으로부터 받은 선물의 총액이 100달러가 넘지 못하도록 정했다. 그리고 현금이나 현금등가물은 아예 선물로 받지 못하게 했다. 물론 우리도 국회법, 국회의원 윤리강령,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을 두어 청렴하고 윤리적 의정활동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세부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해 적용상 한계가 있다. 불명확한 내용과 절차를 개선하되 국회의원이 자신에 대한 규범을 엄격하고 세밀하게 규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추상같은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그래야 국회가 만든 법률이 존경받고 정중한 권위를 유지할 수 있다.


정치민주화의 선행 없이는 경제효율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창조경제의 성패는 정치민주화에 달렸다. 이른바 개방, 공유, 소통, 참여의 가치가 정치민주화 과정에 스며들면서 기업하기 참 쉽고 정치하기 정말 힘들어야 창조경제도 꽃필 수 있다. 정치는 문제원인이자 해결의 주체이다. 성숙한 민주사회를 위해 4류 정치가 1?2류 기업 옥죄는 모습은 사라져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정치권이 권력만능주의에서 깨어나 성장잠재력이나 민간의 창의성을 높이는 정치역량부터 강화하여 국민여망과 시대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경제민주화 이전에 정치권 자정과 자기혁신이 먼저다. 징치인 우월감과 정치권특권의식을 버리고 창조적 혁신으로 환골탈태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선창할 때, 국민은 장단 맞추며 춤까지 출 수 있을 것이다.


한세억 (동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sehan@d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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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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