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소통

KERI 컬럼 / Global Focus / 보도자료 / 청년의 소리 / 알기 쉬운 경제상식 & 이슈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경제민주화 시리즈 1] 경제학자도 모르는 경제민주화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란 용어가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앞 다투어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니 이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정작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경제’민주화이니 경제학자들에게 그 의미를 묻는 이들이 많이 있는데, 경제학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도 경제민주화란 용어는 매우 당황스럽다. 요즈음 처음 들어본 용어라는 것이다. 필자도 미국에서 경제학과 관련된 많은 과목들을 수강했지만, 경제민주화(economic democratization)란 용어는 들어본 적이 없다.


실체와 의미가 불확실한 대선용 정치용어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가 고유의 경제적 의미를 가지는지 객관적으로 접근해 보자. 먼저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Wikipedia를 통해 검색해 보면 economic democratization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경제학회에서 1969년부터 현재까지 발행된 총 73만 여건의 경제관련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EconLit)를 검색해 보면, economic democratization 주제를 가진 논문은 한건도 없다. 세계 최대 규모의 초록 데이터베이스인 Scopus를 검색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100여년의 전통을 가진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학 사전인 Palgrave Dictionary of Economics에서도 이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경제민주화란 용어는 경제학에서는 학문적 근거가 없는 용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란 용어로 새로운 경제정책을 창조해 나갈 수 있지만, 200여 년 동안 쌓아온 주류 경제적 사고의 틀에는 이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학의 일반적인 접근법은 먼저 용어를 정확히 정의한 후에 논리전개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되지 않거나, 정의될 수 없는 용어는 분석대상에서 제외되는 절차상의 엄격함이 있다. 그래서 경제학은 다른 사회과학에 비해서 다루는 영역이 좁다. 일반인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의(justice), 행복 등과 같은 용어가 경제학에서 발전하지 못한 이유이다. 경제민주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경제’와 ‘민주화’ 각각은 확실한 개념을 가진 용어들이지만, 붙어서 한 용어가 되었을 때, 무슨 의미인지는 불확실하다.


경제민주화는 경제학적 개념이 없는 대선용 정치용어다. 정치인의 목표는 정치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다수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경제학적 엄격한 접근을 통해 정제된 용어사용에는 관심이 없다. 후보자의 출신, 머리모양, 몸짓, 눈물, 말투 등과 같이 통치철학과는 무관한 것들에 의해 감성적 쏠림현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들었을 때 기분 좋고, 뭔가 철학이 있는 듯한 효과적인 용어를 개발하려고 경쟁한다. 경제민주화는 이런 조건에 맞는 대선용 정치용어다. 그래서 정치경쟁을 하는 모든 진영에서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라는 구호가 아닌 당장의 경제현실을 직면하여야


공자는 정치의 첫 출발은 정명(正名), 즉 용어를 바로 사용하는 것이라 했다. 정치에서 정확한 용어사용은 사소한 것 같지만, 용어가 바로 서지 않으면, 세상은 어지러워진다고 했다. 공자의 정명론은 정치경쟁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좋은 정치의 규범적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대선경쟁을 하는 현 정치인들에 정명론을 강요하기는 어렵다. 공자의 규범적 방향은 국민들의 정치 지지를 확보하는데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란 정치용어는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는데 좋은 정치슬로건이지만,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정치권이 당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치시장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경제발전에서도 장애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고 경쟁적으로 정치깃발을 들다 보니 정치인마다 제각각 다른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불확실한 용어아래 대기업 때리기 경쟁, 복지확대 경쟁 등 어디로 뛸지 모르는 정책들이 난무하고 있다. 같은 정당 내에서 조차 경제민주화 개념과 방향에 대해 혼선이 있을 정도다. 혼란의 깃발을 앞세워서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열시켜, 소수를 때림으로써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같은 경제적 강자는 소수이기 때문에 가혹하게 때림으로써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대기업을 규제하자는 많은 정책안들이 앞 다투어 개발되는 이유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경제민주화’라는 구호가 아닌 당장의 경제 현실이다. 국내외의 난관을 뚫고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려면, 정치권에서 분열의 리더십이 아닌 통합의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앞서가는 것을 주저앉히는 방식의 경제민주화는 결국 대립과 갈등만 양산한다. 뒤쳐진 것을 끌어올려 주는 것, 더 많은 기업이 대기업이 되고 그 속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져서 국민들이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이 정작 고심해야 할 과제이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 jkhyun@keri.org)


KERI 칼럼_20120917
.pdf
PDF 다운로드 • 1.20MB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