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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시리즈 14]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근본이 다르다


우리는 두 가지 의사결정과정 속에서 나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나는 유권자로서 참여하는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자 소비자로서 참여하는 시장적 의사결정과정이다. 정치적 의사결정과정과 시장적 의사결정과정은 의사결정 투표의 수, 의사결정의 빈도, 의사결정 합의의 기준 등에 있어 크게 다르다. 민주 사회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은 구성원들이 각기 똑같은 정도의 의사 결정권 즉 1인 1표를 가지고 참여하는 반면, 시장적 의사결정에 있어서 사회구성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에 비례하여 참여한다.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선택은 시장적 의사결정 과정에서처럼 언제나 가능한 것이 아니며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기간이 지나야만 가능하다. 경제력만 있으면 보통 재화는 시장에서 언제나 구입이 가능하지만 국민의 대표는 비록 현재의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도 일정 기간 즉 4년 또는 5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시장적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관련자 전원이 합의를 해야 거래가 이루어지기에 만장일치가 의사결정 기준임에 반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만장일치는 매우 드물고 의사결정은 참여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받아들여지는 다수결제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질적(異質的)인 두 체제: 민주주의는 강제성이 전제, 시장경제체제는 자발성이 근간


최근 우리사회의 화두는 단연 경제민주화이다. 경제민주화는 말 그대로 경제의 민주화이고 이는 곧 경제의 정치화를 의미한다. 즉 경제민주화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이 시장적 의사결정 과정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가 경제를 다스린다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본질이라면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정치와 경제의 각각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리고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상호 연관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경제를 민주화하고 정치화하면 그 경제는 멍들어 쇠락한다. 이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고 역사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경제의 민주화를 역사상 가장 완벽히 이룬 나라들이 옛 소련과 중국 그리고 현재의 북한등 사회주의 국가들이다. 재벌도 없고, 노동자가 기업운영 아니 나라운영의 핵심이고, 일감 몰아주기도 없고, 동반성장위원회도 필요 없고, 세금은 아예 없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도 필요 없는 등 오늘날 경제민주화 주창자들이 내세우는 경제민주화가 실현될 뻔 했던 곳이 이들 사회주의 국가들이 아닌가? 한국의 경제민주화 세력들은 왜 역사에서 배우지 못할까?


돌이켜 보면 경제민주화가 국정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김대중 정부였다.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국민의 정부」의 기본철학이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공통적으로 개인의 자유, 책임, 경쟁, 참여, 법치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병행 발전하는 속성이 일부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정치권력의 남용을 차단함으로써 그리고 자유로운 풍토를 조성함으로써 진정한 시장경제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다. 또한 시장경제는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받게 함으로써 민주체제의 물적 기반을 제공하고 정치적 안정에 기여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근원적 출발에서부터 다르고 진행과정과 지향목표도 다르기 때문에 각각 분리하여 논의되어야지, ‘민주적 시장경제’나 ‘경제민주화’ 같이 혼합될 경우 개념이 혼돈스러워지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이 수립되는 경우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이는 어느 한 나라가 완벽한 민주주의와 완벽한 시장경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본래 이질적(異質的)인 두 체제가 상충할 것이기 때문에, 특히 경제정책을 두고는 양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정치적 의사결정은 과오를 범하지 않는 전지전능한 주체에 의해 높은 곳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최근 화두로 등장한 경제민주화 논의 내용과 방법을 두고 진행되는 논의에서 갑론을박의 근원은 관련자 모두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본질 그리고 그 양자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데서 야기되는 것 같다.


민주주의의 경우 강제성이 항시 전제되나 시장경제체제는 자발성이 근간을 이룬다. 선거를 통해 직접 결정되든 또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든지 간에, 민주주의의 의사결정은 다수결로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반대를 한 소수도 최종 결정이 이루어진 후에는 반드시 그 결정에 따라야 할 의무를 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강제성은 시장경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경제에서는 생산자든 소비자든 상대방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제공할 의사를 표명하고, 상대방이 자신의 제의를 수용할 때에만 거래가 이루어진다. 어느 누구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 모든 거래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며, 성사되는 거래의 경우는 항시 만장일치가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잘 조화되는 제도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앞서 간략히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이해와 인식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참으로 잘못된 이해와 인식이 최근 대두된 경제민주화 등장의 배경이며 경제민주화 주창자들조차도 헷갈리고 소리만 요란하지, 구체적 내용에 오면 전혀 새로운 것이 없는 이유이다.


경제민주화는 획일적 제공이 주축, 소비자의 다양성 충족은 불가


경제민주화를 놓고 일반 국민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우리 국민들은 대체로 정치를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혐오하는 지경이다. 우리 국민은 또한 정부의 무능력과 비효율을 한탄들 한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에 대한 정치의 개입이고 정부에 의한 경제의 통제이다. 정부의 무능력과 비능률을 한탄하는 국민들이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면 일이 잘 되리라고 기대하는지 필자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가 무엇이고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를 정부에 의한 교육서비스의 제공과 시장에 의한 교육서비스의 제공을 비교해 봄으로써 살펴보자. 정부가 교육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질 때 예상되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교육이라는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가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 어느 경우든 시설기준, 교수학생 비율, 교과과정, 교육시간, 교과서의 내용 등등 모든 것이 획일화될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일본의 어느 경제학자는 ‘일본의 교육은 맛없는 배급쌀(정부미)이다’라고 설파한 바 있다.


그러나 교육을 시장에 맡길 때에는 이러한 획일화가 사라지고, 모든 부문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요청하는 다양화가 중심에 자리 잡는다. 시설, 교수 당 학생 비율, 교육시간 등에서 각 학교가 다름은 물론 종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학교와 중시하지 않는 학교, 기술훈련을 강조하는 학교와 교양을 강조하는 학교, 예술을 중시하는 학교와 과학을 중시하는 학교, 한 해에 두 학기를 개설하는 학교와 세 학기를 개설하는 학교 등등 아주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나타난다. 학부모나 학생은 자신들이 부담하는 비용을 고려하면서 여러 선택대안 중 자신들에게 최적이라고 판단되는 학교를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에 불만을 갖지 않게 된다.


교육 외에도 정부는 수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농업, 문화, 건설, 교통, 통신, 보건, 복지, 환경 등등 여타의 경우도 정부가 주관을 하는 한 획일적 제공이 주축을 이루게 된다. 소비자의 선호는 각 서비스별로 매우 다양한데 정부의 제공이 획일적으로 이루어지면 결코 효율적인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 앞으로 경제민주화가 적극 추진되면 정치에 의한 시장개입, 정부에 의한 시장 개입이 늘어날 터인데 그 결과로 국민들은 맛있는 일반미 밥보다 맛없는 정부미 밥을 먹으며 일생을 보낼 것이다.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다.


최 광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부 교수/前 보건복지부 장관, choik01@chol.com)


KERI 칼럼_201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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