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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시리즈 7] Wirtschaftsdemokratisierung - 독일에서 공부한 경제학자가 보는 경제민주화


한국은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두고 지난해부터 법석이다.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가 새로운 나라건설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학계는 학계대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경제민주화의 오묘한 뜻을 이해하려고 분주하다. 이를 줄기차게 제창하는 사람에게 경제민주화를 설명해 달라고 해도, 그는 선뜻 설명하지 않는다. 그 의미를 잘 몰라서일까? 아니면 그 의미의 무서움 때문일까?


‘경제민주화’는 지극히 독일적인 용어이다. 독일어에는 단어와 단어가 결합되어 하나의 단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독일에서 공부한 사람이라면 서로 어울리지 않은 단어들이 모여 길게 늘어선 하나의 단어를 이해하느라 진땀 흘린 경험을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은 단어들의 조합은 그들의 지극히 이성에 바탕을 둔 실험주의 정신을 엿보게 한다. 하이에크는 그의 저서 “Individualism & Economic Order"에서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인과 영국인의 민족성을 비교한 적이 있다. 그는 독일인은 자연스러운 것을 따르기 보다는 무엇인가 남과는 다른 독창적인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하였다. 독일을 여행하든지 아니면 그곳에서 생활한 한국 사람들은 구석구석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독일을 보고 놀라워한다. 그들은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것일지라도 그것이 합리적인 것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면, 이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인위적으로 설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경제민주화’, 이는 소유권의 사회화를 의미


경제라는 단어 'Wirtschaft'와 민주화라는 단어 ‘Demokratisierung'가 결합된 ‘경제민주화(Wirtschaftsdemokratisierung)’는 이런 독일적인 풍토에서 태어났다. 경제는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질서인 반면, 민주화는 인위적으로 도입되는 절차적 가치이기 때문에, 각각은 기능상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것을 거부하고 여기에 민주화라는 인위적인 것을 도입하여 새로운 질서를 설계해보겠다는 그들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구조주의적이고 설계주의적인 독일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용어로서 경제민주화보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용어가 있다. 그것은 독일의 경제질서라고 칭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용어이다. 이 역시 기능상으로 상반되는 ‘사회적’과 ‘시장경제’라는 두 단어의 결합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오이켄(W. Eucken)은 사회적 정책은 경쟁질서의 기능과 그 근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실시되어야 함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속에는 ‘투쟁’과 ‘쟁취’의 섬뜩한 기운이 배어있다. 경제민주화를 용어 그대로 해석하면 그것은 경제에 민주주의적인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 중심으로 1인 1표제의 평등한 참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경제에 이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바로 기업의 지배구조를 민주주의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으로 기업의 소유권을 사회화 하겠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그저 복지 정책의 강화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그것의 핵심은 바로 ‘소유권의 사회화’이다. 소유권의 사회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내 자산을 내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게 한다. 이처럼 무서운 내용을 담은 ‘경제민주화’를 한국에서는 지금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총선이나 대선에서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누가 집권하든지 경제민주화의 핵심을 공약대로 실시한다면 세상은 뒤바뀐다. 유권자들은 이런 무서운 사실을 잘 알고 있을까? 거의 모두가 대학 교육을 받고 있거나 받았고 좀 더 깨끗한 일자리만을 선호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런 세상을 진정으로 원하는가?


경제민주화는 독일의 노동계에서 줄곧 요구해온 사항이다. 이를 강령에 담고 있는 정당이 독일의 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이다. 사민당은 1875년 창당 이후 8번의 강령을 채택하였다. 1959년 고데스베르그(Godesberg) 당 대회에서 사민당은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계급정당이 아니라 국민정당으로 거듭 태어났다. 그 후 1989년 베를린강령과 2007년 함부르크 강령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1959년 고데스베르그 강령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1989년 베를린강령에서 무려 14번이나 나오면서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들이 세세히 명시되어 있다. 현재 우리의 여당과 야당은 이 강령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 채택된 함부르크 강령에서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단지 한 번에 그치고 있으며, 그것도 선언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다. 함부르크 강령은 스스로 마르크스 전통을 이어받은 좌파정당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큼 좀 더 좌파적으로 변한 강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여기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민당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서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실현의 실패 역사에 편승하거나 부추기지 말아야


우리나라가 독일 국민처럼 질서 순응적이고, 다름을 서로 인정하며, 망치를 들고 기름 묻힌 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라인가? 우리나라가 독일처럼 공업발전의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중소기업의 저변이 강하고, 내수 기반이 탄탄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가? 우리나라가 독일처럼 정치가와 관료들이 결코 이익집단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나라인가? 기업의 다각화와 합병, 변화의 속도가 이처럼 빠른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전략이 무엇이었고 앞으로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있는가?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를 포기하고 연대경제 또는 인본(人本)경제로 나아가자 하는 것인데,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이 있는가?


잊을 만하면 다시 얼굴을 내미는 것이 사회민주주의 사상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나라 설계이다. 100년 전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주의 실현의 꿈이 성공하였는가? 그 실험의 실패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방법으로 도전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의 복잡함이라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현실의 거대한 장벽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또 다시 뜨거운 가슴으로 치닫는 젊은이들의 열정을 목도하지만, 이를 식혀줄 정치가와 큰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에 편승하거나 더욱 부추길 뿐이다. 여당이나 야당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핵심정책들을 솔직하게 제시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받기를 바란다.


배진영 (인제대학교 국제경상학부 교수, econbjy@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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