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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된 민주주의를 기대하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승자는 환호할 것이고 패자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드린다. 그렇지만 국회의원 선거 승패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주인들을 위해 머슴 일을 하겠다고 자청한 사람들 중에서 주인들이 머슴들을 선택한 것뿐이다.


우리는 자유 사회에 살고 있고 우리의 이상은 우리가 더욱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유 사회에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의, 특히 정부의, 강제 없이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일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집합적 수단, 정치, 정부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다. 다른 개인이나 집단으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는다든지, 누가 누구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에 관해 시비를 판결하는 것이 그러한 일들이다. 국방, 외교, 치안, 사법과 관련된 일들이다.


국민들이 직접 그러한 일들을 결정했으면 좋겠지만, 직접 민주주의를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높은 의사 결정 비용 때문에 간접 민주주의,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이용한다. 의원들을 뽑아 그들이 우리 대신 집합적 결정을 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생업에 전념할 수 있다. 머슴들은 그렇게 해서 뽑힌 것이다.


그런데 그런 머슴들이 오지랖이 넓다.주인이 시장에서 잘 할 일을 머슴들이 빼앗아서 자기들이 하겠다고 한다. 전에는 염치를 알아 정치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것도 지금은 염치없이 모든 것을 정치로 결정하려고 한다. 개인과 시장에 맡길 일을 정치가 맡는다. 이를테면, 최저 임금법을 제정해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한다. FTA를 막아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하려고도 한다. 그런 것을 해도 되는지 해서는 안 되는지 알지도 못한다. 그들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더 정확히 말해 착각하고 있는 것은, 과반수를 통과하면 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결정도 과반수를 통과하면 정당화된다고 생각한다. 최저 임금제도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입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런 것을 오지랖 넓게 머슴들이 결정해서도 안 되고, 결정한다 할지라도 과반수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최저 임금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 밀턴 프리드먼이 잘 지적했듯이 최저 임금제는 근로자들과 사용자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한 집단의 근로자들과 다른 집단의 근로자들 사이의 투쟁이다. 이제 시장에 진입하려는 근로자들이 기성 근로자들, 특히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는 근로자들에 대항해서 벌이는 투쟁이다. 최저 임금제 실시로 기성 근로자들은 임금 경쟁의 압력에 덜 놓이게 되어 이익을 본다. 반면 일자리를 가지려는 미숙련 근로자들은 미취업의 손해를 보고 고용주는 고비용의 피해를 입는다. 높은 제품 가격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친다. 아주 낮은 비율의 기성 근로자들과 가족들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미숙련 근로자들과 소비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피해를 본다. 정치가 국민들의 피해를 막아야 하는데 최저 임금제 실시로 오히려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친다.


이러한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일에서 정치가 손 떼면 되지만, 꼭 정치가 해야 한다면 외부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중 다수결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최저 임금제를 통과시키고 싶다면 이를테면 3/4결(決)과 같은 가중 다수결이 사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높은 지지를 얻지 못하면 지금의 최저 임금 입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즉, 이상적으로는 1/4의 찬성으로 이 법은 폐지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경우 과반수가 옳지 않다. 최저 임금 입법의 경우 가중 다수결이 옳다.


사실 많은 규제 입법들에는 높은 가중 다수결이 사용되어야 한다. 임금뿐만 아니라 이자, 임대료 규제가 그렇다. 가격 규제도 그렇다. 수량 규제도 그렇고 품질 규제도 그렇고 작업장 안전 규제도 그렇다. 특정 집단에 대해 보조금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제 민주화나 사회적 경제 기본법도 마찬가지다. 국가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경제적 자유에 대한 침해뿐만 아니라 도로에서의 자동차 운행 속도 제한과 같은 개인적 자유에 대한 침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을 정치가 다루지 않으면 좋지만, 다룰 필요가 있다면 가중 다수결을 사용하여야 한다.


물론 모든 것을 가중 다수결로 처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과반수 미만의 소수결로 처리해야 하는 것도 있다. FTA가 좋은 예이다. FTA 체결과 같은 것은 1/3결과 같은 소수결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외부 비용이 낮기 때문이다. 자유 무역은 모든 사람이 이익을 얻는다. 많은 경제적 쟁점들에 관해 의견이 갈리는 경제학자들도 자유 무역에 관해서는 만장일치로 동의할 정도다. FTA는 낮은 투표 규칙으로 처리해도 외부 비용이 높지 않다. 따라서 의사 결정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1/3결과 같은 소수결이 바람직하다. 이런 경우에는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2/3 이상으로 FTA를 거부해야 FTA가 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경우에도 과반수로 처리했다.


긴급하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도 있다. 이런 문제는 외부 비용보다는 의사 결정 비용을 더 크게 고려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1인 규칙(one-person rule)으로 처리해야 할 것이다.


과반수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드문 경우는 의원들을 선출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후보들에 대한 투표자들의 선호가 무작위적으로 분포되어 있거나 대칭적으로 분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외부 비용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식은 과반수 규칙이다.


이렇게 문제 따라 적정한 의사 결정 규칙이 다르지만, 긴급을 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사 결정 비용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외부 비용을 고려하여 보통은 가중 다수결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정한 의사 결정 규칙을 정하기 위해서는 외부 비용이 어느 정도 될지 알아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제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의원이 경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경제 원리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진 보좌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의원들의 올바른 결정에 도움이 된다면 국민들은 의원들의 경제 이해를 돕는 그런 보좌관들의 월급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제20대 국회의원들이 무슨 문제이건 염치 불구하고 다루려 하기보다 왜 그런 문제를 다루어서는 안 되는지 깊이 생각하기를 부탁드린다. 필자는 제20대 국회의원들이 왜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과반수가 아니라 다른 규칙이 사용되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기를 부탁드린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려고 할까? 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런 국회는 계몽된 민주주의를 시도하는 세계 역사상 최초의 국회가 될 것이다. 필자는 제20대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필자는 제20대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비관적인 필자의 예상을 깨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되면 먼 훗날 대한민국의 계몽된 민주주의가 제20대 국회부터 비롯되었다고 역사가가 기록하지 않을까?

황수연(경성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shwang@ks.ac.kr)

*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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