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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집행의 딜레마


공정거래법은 공적 규제의 요소가 매우 강한 법이다. 독과점시장의 폐해와 같은 시장실패의 상황뿐만 아니라 불공정한 거래질서로 인한 조정실패의 상황에도 대처하기 위하여 사업자의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다양한 규칙들을 포함하고 그 집행의 권한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우선적으로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정조치, 과징금, 동의의결, 분쟁조정 등 폭넓은 집행 수단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속고발권과 같이 형사적 집행과의 균형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보유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집행 다양화의 요구


최근에 경제민주화의 제도적 실현 요구가 거세지면서 공정거래법 집행체제에 대한 문제제기도 많아지고 있다. 관련된 법 개정안들도 봇물 터지듯 발의되고 있다. 공정거래법 집행체제를 개선하기 위한 제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사인에 의한 행위금지청구 제도, 집단소송 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같이 사인에 의한 공정거래법 집행을 강화하는 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 또는 제한하여 검찰의 형사적 집행을 더 쉽게 하는 방안이다.


공정거래법의 집행체제는 제도적으로 공적 집행과 사적 집행이 혼합된 이원적 체제이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 중심의 집행체제를 갖고 있다. 비교법적으로 보면 미국과 다르고 유럽연합에 가깝다. 그에 반하여 사적 집행과 형사적 집행의 비중을 높이려는 제안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제도를 접목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런 미국의 제도를 소개하고 국내에 도입하려는 이론적 시도는 전부터 존재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의 제도적 실현 요구가 거세지는 맥락에서 왜 이런 시도가 본격적인 제도화 시도로 강하게 나타나는지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원인으로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집행체제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더라도 바람직한 집행 수준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최근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과징금 부과율이 너무 낮다는 비판이 나오는 사례에서 보듯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였다면 어느 정도 바람직한 집행 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새로운 제도 실험을 요구하는 추세에 보다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도의 무비판적 도입으로는 집행의 딜레마 피하기 어려워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유럽연합의 제도적 모형을 따르는 우리나라에서 그 현황을 그대로 두고 미국의 제도를 더하면 공정거래법 집행의 수준이 더 바람직한 수준으로 발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의 제도나 유럽연합의 제도나 그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의 경제적 여건이나 역사적, 문화적 환경을 고려하여 입법자의 선택에 의하여 설계된 제도이다. 규제 집행에서 행정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유럽연합의 제도적 모형을 따라 행정적 집행 수단을 위주로 하면서 사적 집행 수단과 형사적 집행 수단을 보완적인 수단으로 배치하고 있다. 이는 공적 집행과 사적 집행을 서로 대안이 되는 집행체제로 이해할 때, 각 체제의 다양한 변수를 미세 조정함으로써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한 제도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제도 설계에 큰 문제가 없다면 공정거래법 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질 경우 최적의 집행 수준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있는 제도와 대체재의 관계에 있는 새로운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도입하기만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과징금 제도와 대체재의 관계에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된 상태를 가정할 때,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업자가 야기한 사회적 피해에 상응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피해자 역시 법원으로부터 자신의 실제 손해를 넘는 금액을 징벌적 배상 명목으로 사업자로부터 받아간다면 사업자는 이중부담을 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경우 공정거래법 집행은 집행기관이나 사인이 각자 그 집행을 적당히 하는 편법적인 상황이 아니면 언제나 과다집행의 오류에 빠지게 되는 딜레마 상황을 면하기 어렵다.


제도 도입 여부는 현재의 집행체제를 보완하는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공정거래법 집행은 기본적으로 법위반행위를 억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집행 수단의 선택은 바람직한 집행 수준을 달성하기 위하여 공적 집행과 사적 집행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그 역할을 적정하게 분담하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법정책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공적 집행과 사적 집행의 주요한 차이점을 고려하여 각 집행 수단이 억제 목적과 집행비용 및 그 상호작용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재 제도 도입의 전제로서 제기되는 비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집행 수준이 미흡하다는 데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공정거래위원회 중심의 집행체제 자체가 문제이므로 이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제도 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운영하는 집행 수준의 문제라면 왜 자꾸 공정거래위원회의 집행 수단과 경합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고만 할까? 어차피 제도를 잘 만들어 놓아도 공정거래위원회든 사인이든 검찰이든 집행을 잘하지 않을 테니까 적당히 하는 여러 집행을 모아서 최적의 집행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장에서 사업자 간에 경쟁이 필요하듯 집행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사인 간에도 경쟁을 시켜서 집행 효율의 극대화를 모색하자는 것일까? 전자의 관점도 문제이지만, 후자의 관점의 경우 시장에서의 사업자 간 경쟁과 달리 집행기관 간의 경쟁은 집행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는 별로 관계가 없고 오히려 집행 대상인 사업자들의 시장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행위 유인을 위축시킬 우려가 높다.


공정거래위원회 중심의 집행체제를 유지한다면 사적인 집행 수단이든 형사적 집행 수단이든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현재의 집행체제를 보완하는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도입이 검토되는 새로운 제도가 공정거래위원회가 갖고 있는 행정적 집행 수단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이를 대체하거나 상충하는 역할을 할 것인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독자적 소추 제도가 특히 문제가 된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경우 추가적인 배상의 형태로 공적 집행이 수행하는 억제의 기능을 수행할 권한을 사인에게 부여하는 것이므로, 공적 집행 수단인 과징금 제도와 그 기능이 중복되거나 상충되는 성격이 있다. 또한 전속고발권의 폐지로 도입될 수 있는 독자적 소추 제도의 경우 형사적 집행의 속성이 사실의 확인을 넘어 경제적 영향에 대한 평가를 수반하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여부 판단에 적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요컨대, 공정거래법 집행체제를 개선하는 작업은 무엇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면 그 제도를 통해 기대되는 역할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집행을 보완하는 것인지를 검토하고 실제 제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중복되거나 상충되는 요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세 조정을 하고 공정거래위원회와의 협력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법 집행의 영역에서의 섣부른 경쟁 도입은 자칫 큰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dshong@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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