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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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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의 공평한 세금이란?


정부는 통치철학으로 ‘공정한 사회’를 새롭게 내세웠다. 이후 공정한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회적 토론과 비판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나 공정한 사회에 대한 공감대는 아직 형성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국민 다수의 감성을 흔들기에는 충분했으므로 정치적으로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된다. 주된 이유는 ‘공정’ 혹은 ‘공평’이란 객관적인 사실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고 주관적인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고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선도적으로 이 문제를 정치이슈로 들고 나오니 국민들은 감성적으로 시원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 일간지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의 73%가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공정한 사회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므로 세상이 아무리 공정해도 전체 73% 국민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또한 못사는 사람이 잘사는 사람보다 많으니 우리 경제가 절대적으로 아무리 발전해도 상대적 격차는 어쩔 수 없으므로,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인식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향후 공정한 사회에 대한 논쟁은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계속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생각된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개념이 아니므로 결코 해답이 없으면서 사회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여러 집단들에서 자신들의 가치판단을 근거로 사회는 더 갈등이 깊어갈지도 모른다.


공정한 사회의 큰 통치철학 속에서 세금정책을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모든 국가는 세금정책에서 ‘공평한 세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런데 어차피 ‘공평’이란 개념이 주관적 판단을 근거로 이루어지므로 모든 사람들의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공평한 세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만들어낸 공평한 세금이 만족해야 할 두 가지 원칙이 제시되고 있다. 즉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정도에 따라 세금을 부담하는 ‘응익원칙(benefit principle)’과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세금을 부담하는 ‘응능원칙(ability principle)'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서로 보완적이지도 대체적이지도 않다. 단지 이러한 원칙들을 적절히 사용하여 공평한 세금을 디자인하면, 주관적인 개념이라고 그냥 팽개치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지금도 두 가지 원칙을 사용한다. 그런데 응익원칙에 근거를 둔 세금은 비록 공평을 판단하는 하나의 원칙이지만 이 원칙은 효율성도 만족시킨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세금은 응익원칙에 근거한 세금이다. 경제학에서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명제를 그대로 반영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익원칙은 이론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실제 현실에는 이를 적용하는 예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공평한 세금에 대해 응능원칙을 근거로 이루어지는 게 보편적인 현실이다. 즉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이 세금을 부담하는 비율도 높은 누진세 구조가 공평하다고 일반적으로 인식한다. 또한 부유한 계층에게 적용되는 한계세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공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현재 최고 한계소득세율이 35%인데, 이를 60%로 인상하면 더 공평해질지는 잘 모르겠다.


공평에 대한 개념은 주관적인 개념이므로 시대별 국가별로도 서로 다르다. 일례로 공평한 세상을 만들려고 지난 세기 동안 전 세계를 흔들었던 러시아는 2001년에 소득세제를 13% 단일세율로 바꾸었다. 공평한 세상에 대한 열망이 컸던 러시아에서의 공평은 우리의 공평과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평에는 다수의 폭력이 존재한다. 앞의 예처럼 소득세의 최고 한계세율을 60%로 인상하는 안에 대해서는 국민의 다수가 찬성할 것이고 이를 공평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공평’과 민주주의 의사결정원칙인 ‘다수결’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국민 대부분이 찬성한다고 해도 세금정책이 지켜야 하는 기본이념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공평한 것이다. 다수의 논리로 소수에 세금을 부과한 대표적인 세금이 종합부동산세이다. 전체 국민의 2%가 부담하므로 민주주의 절차상 아무런 문제도 없고 헌법재판소에서도 기본구조에 대해서는 합헌 판정을 하였다. 그러나 하이에크 사상의 핵심 개념인 자유주의는 다수결 원칙에 의해 정해진 법이라고 해도, 그것이 자유를 보장하는 법이 아니면 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주장한 자유주의를 위한 정의로운 법이 되기 위해서는 보편성 원칙을 만족해야 하며, 그 중에서 법을 적용하는 대상에 ‘차별’이 없어야 하는 일반적 조건을 강조하였다. 소수의 부유계층에 한정한 세금부과는 법의 자유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요사이 일부 정당에서는 부유세 신설을 정책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논리로 다수의 국민들에게 솔깃한 정책안이 될 수 있고, 종합부동산세처럼 국회에서는 여론에 따라 얼마든지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공평한 세금이 다수결 원칙에 기대어 국민적 여론으로 형성되면, 우리의 세금은 자유주의 헌법정신을 침해하는 불공평한 세금이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헌법은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 헌법에서 세금에 대한 조항은 ‘조세법률주의’라는 대원칙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세금은 법률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국회가 포퓰리즘에 따라 소수의 자유를 침해하는 불공평한 세금을 제정하는 데에 대해서는 보호장치가 전혀 없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8조에는 이러한 문제를 사전적으로 보호하는 조항이 있다. 즉 세금은 특정대상에 대해 선별적이어서는 안 되는 보편적(uniform)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공평한 세금을 가지기 위해서 헌법에 “세금은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명문화해야 할 것이다.


현진권 (아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jkhyun@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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