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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혼란스러운 까닭은 충신이 많아서이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지도자들이 통치하면서 거둔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살펴보면, 전두환 정부는 10.0%, 노태우 정부는 8.7%, 김영삼 정부는 7.4%, 김대중 정부는 4.4%, 노무현 정부는 4.4%,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원년 2.2%, 2009년 0.2%, 그리고 2010년 1분기 8.1%였다.


국민소득이 많아질수록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는 역U자 가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흥미로운 사실은 각 정권이 나름대로 내건 도덕주의적 캐치프레이즈가 한국 사회에 차별과 대립과 반목하는 문화를 유산으로 남기는 데 일조하였고 도덕주의 정부일수록 경제적 성과가 빈곤했다는 것이다. 보통사람을 위한 정부를 내세운 노태우 정부는 보통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차별하고, 문민정부를 내세운 김영삼 정부는 문민이 아닌 무인들과 대립하고, 국민의 정부를 내세운 김대중 정부는 국민이 아닌 외국인을 차별하고, 참여정부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는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반목을 조장하는 도덕주의 정부였다. 해외여행 자유화와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한 전두환 정부에서 이루어진 차별 없는 경제적 자유는 높은 경제성과를 달성하였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제18장에 “커다란 도덕이 사라진 것은 인의가 있기 때문이고, 지혜가 판을 치는 것은 큰 거짓이 있기 때문이고, 육친이 불화하는 것은 효도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고, 국가가 혼란한 것은 충신이 있기 때문(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이라고 하였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어지러울 정도로 도덕적 메시지가 난무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이름하에 수많은 도덕적 메시지가 국가를 혼란스럽게 할 정도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기서 도덕적이란 비도덕적이라는 말과 대조적으로 사용되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도덕이 아니고, 도덕적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견해(도덕적이건 비도덕적이건)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의미를 뜻한다. 광우병으로 촉발된 촛불집회, 노무현 대통령 사망에 따른 시민들의 애도물결, 천안함 사건에서 나타난 국론분열, 세종시 건설을 둘러싼 지역 간 찬반논쟁, 야당 및 종교 지도자의 4대강 개발 반대운동, 교육감 후보의 선거공약이 되어버린 무상급식, 2040년에 국민 1인당 소득이 6만 달러가 된다는 정부 연구기관의 구호 등의 인위적인 인의, 거짓 지혜, 효와 자애를 빌미로 삼은 불화, 국가를 혼란의 구덩이로 몰아가는 충언들이 난무하고 있다.


장자(莊子)는 “완전한 도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고(大道不稱), 완전한 주장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大言不言), 완전한 베풂은 베풀지 않는 것(大仁不仁)”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장자에 따르면 사회를 위해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마음으로 사생취의(捨生取義)하는 행동은 예를 들어 백이(伯夷)나 숙제(叔齊)처럼 모두 “남이 해야 할 일에 애쓰고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을 즐기면서 자신을 위한 즐거움을 즐기지 못한 사람들(是役人之役, 適人之適, 而不自適其適者也)”의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생활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허망한 명예를 위해 살다보니 참된 생명은 도덕이나 가치 등과 관련된 허울 좋은 이름 속에 매몰되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는 자신만을 돌보는 무도덕적인 사람들(편리하게 ‘역적’이라고 부르자)을 존중하는 문화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선진화된 사회란 다른 사람의 도덕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 사회이다. 그러려면 국가가 도덕주의에서 벗어나야만 하고 그렇게 하려면 그 근원인 국가의 구호(계획)도 사라져야만 한다.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는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에서 정부의 계획이 어떤 특정한 효과를 직접 의도한다면 그 효과를 국민들이 알게 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정부는 국민의 개성을 발전시키는 공평무사한 기구가 되지 못하고, 하나의 도덕적 기관으로 전락해버린다고 주장하였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도덕적으로 매도해서도 안 될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이 존중을 받으려면 동시에 다른 사람의 가치관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자유론』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전혀 무관한 척하고, 또한 다른 사람의 복리와 선행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두고, 개인이 이기적으로 무관심하기 때문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선을 촉진시키기 위해 정부가 무관심을 증대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달리 말해 장자(莊子)의 이야기처럼 국가가 베풀지 않는 것이 국민을 위해 최고로 베푸는 것이다. 밀은 국가의 충고와 경고를 듣지 않아 일어나는 모든 실수보다도 나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제안하는 국가의 속박을 허용함으로써 일어나는 실수가 훨씬 더 무겁고 두렵다고 말하였다. 하이에크도 『자유헌정론』에서 “중요한 자유란 내가 개인적으로 행사하고 싶어 하는 자유가 아니라,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의 자유인데, 이 자유가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제공하는 길뿐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자기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는 데에는 게을리하면서 다른 사람이 행사한 자유로부터 얻어진 성과물을 눈여겨보는 도덕주의자들의 메시지가 포퓰리즘에 편승하여 기승을 부리는 일이 보답 받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유주의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과 하이에크의 지혜대로 국민들 스스로 자신의 책임과 판단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타인의 삶을 간섭하는 도덕적 메시지가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유동운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dwyu@p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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