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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R&D인력 확충을 위한 정부의 전향적 정책설계를 기대하며


오늘의 한국경제는 ‘국민소득 2만불, 교역 1조불 시대’로 요약된다. 세계 경제의 요동 속에서도 이만한 성과를 거둔 나라는 많지 않고, 이는 단적으로 한국경제의 저력 그리고 산업화시대에서의 성공신화를 대변한다 하겠다. 짧은 기간 안에 선진국 추격형(Catch-Up) 성장전략을 완성시킨 원동력은 무엇인가? 많은 요인들을 거론할 수 있지만 그 중에 제일 공신은 바로 산업기술인력과 기능인력이라는 점엔 아무 이의가 없다.


1967년 산업기술인력 수요·공급을 전문적으로 심의 조정하기 위하여 정부에 인력개발위원회를 설치하고 정부·민간 공동으로 인력개발연구소를 설치하여 기술인력의 수급조사를 체계적으로 시행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금년으로 개교 40주년을 맞은 한국과학원(오늘날의 KAIST)과 산업기술인력에 대한 병역특례제도, 1974년 도입된 국가기술자격제도 등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기술인력의 체계적인 양성·공급과 활용에 적절한 기여를 하여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정책과 제도들은 도입 당시에는 다른 부문들의 정책과 제도에 비해서, 그리고 현실적으로 동원 가능한 자원과 수단에 비해 다소 선제적이고 파격적인 것들이었지만, 국가 미래를 향한 준비와 도전의 관점 아래 과감히 도입·시행되어, 궁극적으로 기대했던 목적 이상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국민소득 4만불, 교역 2조불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이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이제까지 우리가 산업화를 ‘당겨 성장’해 온 길보다 더 험난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제까지의 패러다임과는 다른 ‘창조 경제의 패러다임’, ‘첨단기술융합의 패러다임’, ‘혁신주도형 패러다임’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상황이다. 무한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던 기업이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창의적인 혁신 주체의 양성·확보가 경쟁력 확보의 관건이 되고 있는 시대이다. 따라서 국가 미래경제의 앞날을 책임져야 하는 기업들이 창의적인 R&D인력을 적정하게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여건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국가 백년대계 중 우선순위가 매우 높은 과제 중 하나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산업기술인력 수급동향 실태조사 등에 따르면 대학과 대학원의 이공계 인력 공급은 양적으로는 과잉이지만 핵심 분야 및 미래 성장유망분야, 그리고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인력의 부족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10년 이상 지속되어온 이공계 기피현상의 여파로 우수한 인력들의 이공계 진출 및 기업 R&D인력화는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첨단기술융합의 패러다임’을 선도할 창의적 융합인재들과 중소기업에 필요한 기술인력의 확보 부문에 대한 현실 분석과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따라서 지난 개발경제 초기와 같은 선제적이고 전향적인 정부의 정책적 지원 없이는 국가미래를 위한 창의적인 R&D인력의 양성과 확보, 특히 기업에서의 우수인재 확보·활용은 요원하다 하겠다. 그동안의 ‘선진국 추격형 경제시대’에 필요한 산업기술인력의 양성·확보 정책에서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기업의 R&D 인력도 공공정책의 범주에서 지원 검토하는 인식의 전환 필요


무엇보다도 기업이 확보하고 활용하는 R&D인력도 국가적 차원에서 공공재로 인식하고 공공정책의 범주에서 정책대안을 검토하고 지원수단을 강구하는 인식의 전환이 급선무이다. 이제까지의 주된 인식은 기업에 종사하는 R&D인력의 문제는 기업의 사적자치 영역으로 간주하고 정부의 정책적 검토나 지원은 시장의 실패가 예상되는 부분에서의 보조적이고 간접적인 역할에 머물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관자적 정부의 인식이 기업들로 하여금 IMF 구제금융시대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R&D인력을 우선적으로 축소하는 우를 범하게 하는 등 다른 경영 자원에 비해 R&D인력에 대한 중요성을 소홀히 인식하게 할 뿐 아니라, 여전히 R&D인력의 충분한 양적 확보 노력과 질적 수준 제고 노력의 미흡 현상이 만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 관심이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R&D인력에 집중되는 사이, 우수한 인재들의 기업 연구현장 기피가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부는 기업의 R&D인력을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R&D인력과 동일한 차원에서 양적, 질적 관리를 체계적으로 수행하도록 인식의 전환을 기해야 할 것이며, 국가의 연구개발인력 양성·확보계획에서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인식 기반위에 기업의 R&D인력, 즉 산업계에 종사하는 R&D인력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가 개선될 수 있는 정책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산업계 종사 R&D인력이 직업분류 상에 당당한 ‘산업체 연구원’ 등의 코드로 분류되어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는 장치를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며, 일반 국민들에게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종사하는 R&D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게 비춰지고 있는 인식상의 대우를 향상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차별적 대우의 개선에는 정부의 제도 뿐 아니라 기업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한 바, 예를 들어 기업 R&D인력의 연구환경을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 내에 마련해 주어 이들이 대학 혹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R&D인력들과 동등한 자긍심을 갖도록 해 주는 방법도 유용한 방법의 하나라 하겠다.


한편 정부의 연구개발인력에 대한 각종 정책적 지원수단의 강구에 있어서, 현행과 같이 대기업, 중소기업 등 기업 규모에 따른 차별적 지원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기업 R&D활동의 활성화 정도에 연계된 차별적 지원 패러다임의 도입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현행의 기업 R&D인력 지원정책은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화되어 적용되는 바, 기업의 R&D활동이 얼마나 활발하게 진행되는가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례로 연구개발요원이나 산업기술인력에 대한 병역특례지원제도 적용의 경우, 우선적으로 기업 규모에 따른 구분이 우선되고 각 기업 규모의 구분 속에서 R&D활동 수준을 감안하는 것이 현행의 제도인 바, 이럴 경우 중소, 벤처기업의 경우 아무리 R&D활동을 열심히 해도 필요한 인력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요원한 실정이다.


연구개발인력 세액공제 제도의 경우도 각 기업의 R&D활동이 전년 대비 얼마나 더 활발히 수행되었는가에 따라 지원에 차등을 두는 증가세액 공제제도를 확대해 시행할 것이 요구되며, 중소기업이라 하여 대기업 대비 차별적으로 우대 또는 제한받는 지원정책이 아닌, R&D활동을 더 많이 하는 기업이 덜 하는 기업보다 차별적으로 우대받는 지원제도가 될 수 있도록 제도의 기본 프레임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부설연구소 설립 및 운영요건을 차등화하고 그에 연계하여 R&D인력지원정책을 차별화 하는 등의 방안이 검토 가능하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대학 및 정부출연연구기관 R&D인력들 간의 공유·활용방안이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산-산, 혹은 산-학, 산-연간 R&D협력 컨소시움의 활성화를 기반으로, 종사 R&D인력들의 공유·활용 제도가 도입되고, 이렇게 공유·활용되는 R&D인력에 대한 인건비·연구비 중 일정 부분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구한다면, 부족한 R&D인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국가 미래발전의 주역인 R&D인력자원의 공유는 연구개발 주체 간 역량의 공유와 향상, 축적 지식의 교류, 네트워크 활성화 등 긍정적 외부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일들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이고 선제적인 정책적 검토와 설계를 기대해 본다.


박영일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yipark@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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