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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경제이론과 금융위기 책임론


19세기 경제학의 혁명, ‘한계혁명(Marginal Revolution)’의 주역 중 한 사람인 레옹 발라(Leon Walras)는 “경제학계에는 많은 학파가 있지만, … 그 중에서 내가 인정하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증명하지 않고 결론을 내리는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들의 결론을 증명하는 학파이다”라고 했다.1) 그의 지적처럼 지금도 대공황이나 최근의 금융위기를 놓고 “월가의 탐욕”이니 “시장의 광기”니 하는 검증된 적도 없는 속설이 경제이론으로 포장되고 있다. 그러나 발라의 바람 위에서 발전해 온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은 그 동안 엄밀한 검증을 거친 대공황을 설명하는 이론들을 축적해 왔다.


대공황 원인을 설명하는 유효한 세 가지 이론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을 설명하는 지금도 유효한 주류경제학의 이론은 유동성 축소 이론(liquidity-squeeze theory), 디플레이션 기대 이론(expected-deflation theory), 그리고 은행권 붕괴 이론(banking collapse theory) 등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중앙은행에 의한 유동성 감축이 경기순환상의 평범한 경기후퇴를 대공황으로 만들었다는 첫 번째 이론은 미국의 경우 유동성 감소의 원인이 통화당국(연방준비제도)의 긴축정책에 있으며, 여타 국가들의 경우 금본위제도의 고수와 같은 외환제도와 관련된 정책의 결과인 만큼, 대공황의 원인을 정책실패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이론은 대공황의 근본적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이기보다는 유동성 감소로 촉발된 생산 감소와 물가하락이 어떻게 시장메커니즘을 통해서 대공황으로 파급ㆍ확산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이론을 보완한다. 디플레이션 기대 이론2)은 평범한 불황을 대공황으로 확대시킨 중요한 채널을 제시한 것이다. 어빙 휘셔(Irving Fisher, 1923, 1925)3)가 대공황 이전에 제기한 가설을 토빈(Tobin, 1975), 서머스와 드 롱(Lawrence Summers and Brad De Long, 1986) 등이 발전시킨 이론으로 소비자와 기업들의 디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불황 확산에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사람들이 일단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게 되면, 소비자나 기업이나 모두 구매를 보류하고 가격이 떨어질 것을 기다리게 되며, 차입 또한 꺼리게 된다. 명목이자율이 얼마든지 간에 가격이 떨어지면 지금보다 높은 가치의 돈으로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모든 투자지출을 미루면서 더 싸질 때를 기다리게 되기 때문에 민간투자가 급격히 감소한 것이 불황으로 악화된 중요한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제3의 공황 이론인 은행권 붕괴 이론은 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버냉키(Ben S, Bernanke, 1983)4)가 제시한 위기 확산 경로에 대한 설명이다. 은행의 부실이 기업대출 감소로 이어져 기업들의 투자가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운영자금도 조달할 수 없게 되면서 불황의 골이 깊어지는 경로를 강조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엄밀히 따지자면 은행 및 비은행 금융기관들의 금융 중개기능 마비로 이어지는 두 경로인 ‘부채-디플레이션’ 경로와 ‘금융 중개비용 상승’ 경로로 구성된 이론이다. ‘부채-디플레이션’ 아이디어의 연원도 어빙 피셔(1933)5)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아이디어는 당시 학계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를 경청했고 정책에도 반영했다.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채부담의 증가는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단순한 부의 재분배에 지나지 않으며, 이 두 그룹의 한계소비성향이 크게 다를 이유가 없다는 논리가 학계에서는 우세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리인비용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기대하지 못한 부의 재분배는 거시경제적으로 중립이 아니라는 견해가 힘을 얻으면서 버냉키가 이 아이디어를 되살려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채-디플레이션’ 효과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두 번째 경로가 작동을 시작하게 된다. 부실채권의 증가와 담보자산의 가치하락이 은행과 여타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나가서는 은행의 예금인출 사태의 위험에 대비해 은행들도 자산의 유동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은행의 대출능력은 현저히 감소될 수밖에 없다. 버냉키의 1983년 논문은 1930~1933년간의 미국에서의 은행 위기와 파산이 바로 이 메커니즘에 의해 확산되면서 대공황으로 악화되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통화쇼크로 대공황을 설명한 유동성 축소 이론은 프리드먼과 슈워츠의 주장6)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대공황 당시 케인스도 제기한 가설이다. 그는 1931년 “투자 감소가 현 사태를 설명하는 전부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없다”면서, 그 투자 감소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높은 이자율,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긴축정책, 미국 이외 지역에서의 금 부족, 미국의 해외투자 감소 등을 지적했는데, 이 모두가 미국 연준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의 결과라는 점에서 그는 하나의 원인을 제시한 셈이다.7) 이 가설은 프리드먼과 슈워츠의 정교한 통계분석을 통해서 철저한 가설검증을 거친 가장 믿을만한 대공황 이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들은 누구나 쉽게 당시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통화와 산출(혹은 가격) 간의 상관관계가 통화에서 산출/가격 쪽으로 향하는 인과관계임을 입증함으로써, 수많은 불황 중에 하나로 끝났을 1929년 불황을 대공황으로 만든 원인이 통화 공급에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분석전략은 실험실 상황과 같은 에피소드를 찾아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실험실에서 통제된 실험을 할 수 없는 사회과학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우회적 방법을 택한 것이다. 산출이나 가격변수와 무관한 이유로 통화량의 변화가 생긴, 즉 통화량의 변화를 ‘외생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찾아 그 이후 나타난 산출과 가격의 변화가 외생적 통화정책의 결과임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한 번의 가설검증으로 이 이론이 정설로 굳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그간 새로운 데이터와 새로운 통계학적 검증기법이 개발될 때마다 수많은 재검증이 이루어져 왔다. 가장 최근의 재검증이 보드도와 랜던-레인(2010)8)이다.


대공황 발생은 정부와 통화당국 탓


상기한 세 공황이론에 보완적인 역사적 설명도 있다. 테민(Temin 1989)과 아이켄그린(Eichengreen 1992, 1996)이 그것이다. 대공황이 큰 충격과 불안정한 파급 메커니즘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으로, 테민이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충격에 무게를 두었다면, 아이켄그린(1996)은 큰 충격보다는 불안정한 파급 메커니즘에 무게를 둔 설명을 제시했다. 전쟁 이전과는 달라진 1920년대의 상황, 즉 노동시장과 상품(commodity)시장이 갖고 있던 전통적인 유연성 상실, 쉽사리 쇼크를 수용하지 못하는 시스템, 정부의 신뢰성 결여 등의 문제 때문에, 시스템에 교란이 발생했을 때, 안정화 방향으로 이동하던 금융자본이 도피하면서 작은 교란이 위기로 확산되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금본위제도(고정환율제) 하에서 충격을 조정하는 방법은 디플레이션인데, 만약 가격(특히 임금)이 경직적이라면, 불황이 유일한 해결책일 수밖에 없게 된다는 설명이다. 최근 이들은 특히 금본위제도라는 국제금융시스템과 이데올로기화한 금본위제에 대한 집착(gold standard mentalite)이 정책당국의 정책 선택의 폭을 제한한 것이 통화정책 실패의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9)

경제학은 대공황이 왜 일어났는지를 잘 설명하는 검증된 이론들을 이미 제시했다. 그것은 시장의 광기나 비합리적 경제주체를 가정하지 않는다. 이 이론들의 공통점은 정부와 통화당국에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며, 이 점에 관해서는 통화주의자와 케인지언 간의 이론도 없다.


“대공황은 독일을 시작으로 다음은 미국에서 전형적인 경기위축으로 시작되었다. 이 특별할 것 없는 경기후퇴가 중앙은행들과 정부들의 행동으로, 특히 1931년 여름과 가을의 일련의 통화위기 와중에서의 경제정책들은 불황을 완화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악화시켰다. 번영기에 잘 작동하던 조치들이 1930년대 초의 경기후퇴에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했다.”10)


“1920년대와 30년대 초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은 수은으로 모차르트를 치료했던 18세기 의사들과 같았다. 경제병 치료에 그들은 전적으로 무능했을 뿐 아니라 환자를 죽였다.”11)


대공황을 통화정책의 실패로 규정한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자신들의 결론에서 매우 흥미로운 추론을 보여주었다. “만일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이라는 반사실적(counter-factual) 가설의 당연한 귀결은 대공황기에 상업은행의 절반 가까이가 문을 닫거나 다른 은행에 흡수 합병되는 것과 같은 은행권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중앙은행 제도가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은 경제사에서 흔히 만나는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인 셈이다.12)


김우택 (한림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 wtkim@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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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obert Heilbroner, Teachings from the Worldly Philosophy, 1996.(『고전으로 읽는 경제사상』, 민음사,

2001, p.258)

2) 먼델(Mundell) 효과로도 불린다.

3) Fisher, Irving, "The Business Cycle Largely a 'Dance of the Dollar'," Journal of the American Statistical

Association, December 1923, 18, pp.1024-1028.

_______ , "Our Unstable Dollar and the So-Called Business Cycle," Journal of the American Statistical

Association, December 1925, 20, pp.179-202.

4) Bernanke, Ben, "Nonmonetary Effects of the Financial Crisis in the Propagation of the Great

Depression," American Economic Review 73, June 1983, pp.257-276.

5) Fisher, Irving, "The Debt-Deflation Theory of Great Depressions," Econometica, October 1933.

6) Friedman, Milton, and Anna J. Schwartz, 1963. 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867-1960.

Princeton University Press.

7) Keynes, John Maynard. 1931. "An Economic Analysis of Unemployment (Harris Lectures)." Reprinted in

The Collected Writings of John Maynard Keynes, Vol.13, edited by Donald Moggridge. London:

Macmillan, 1973; pp.349-351.

8) Bordo, Michael D.,and John Landon-Lave, "The Lessons from the Banking Panics in the United States

in the 1930s for the Financial Crisis of 2007-2008". NBER Working Paper No.16365, September 2010.

9) Eichengreen & Temin 2010, "Fetters of Gold and Paper," NBER Working Paper No.16202.

10) Eichengreen & Temin, 2010.

11) Temin, Peter, Lessons from the Great Depression, The MIT Press, 1989, p.12.

12) Friedman and Schwartz, 1963, pp.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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