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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정책과 ‘열반의 오류(Nirvana Fallacy)’


이상적 세상(ideal world)에서의 기업조직과 기업행위를 기준으로 현실을 보면 온통 비정상적이고 불공정한 기업행위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책가라면 누구나 이러한 현실을 이상에 가깝도록 바로잡고 싶은 유혹에 빠질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기업정책이 이러한 유혹에 빠져들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일 뿐이다. 해결책은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현실의 불완전한 시장을 이상적인 완전시장과 비교하며 법과 규제를 통해 현실을 뜯어 고쳐 이상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도달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게 되는 정책적 오류, 즉 ‘열반의 오류(Nirvana Fallacy)’에 빠질 위험이 있다.


완전 시장에서의 이상적 기업: 블랙박스(black box)


우리는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업에 익숙해져 있다. ‘기업’하면 우리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독립된 경제주체’라는 사실이다.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소비자에 대응하는 또 다른 하나의 경제주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을 주주가 ‘소유’한다고 본다. 물리학에서 마찰 없는 세상을 가정하듯 교과서에서는 거래비용이라는 마찰이 없는 완벽한 시장을 가정한다. 기업은 얼마의 비용을 들여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고 이것은 생산요소 비용과 산출물 사이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생산함수(production function)’에 의해 결정된다. 입력을 하면 이에 걸맞은 것을 출력 해내는 장치를 의미하는 블랙박스(black box)가 기업의 본질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블랙박스를 주주가 ‘소유’한다는 것이다. 완전 시장에서는 이러한 독립된 개별기업이 생산을 위해 다른 기업에게서 생산요소를 구입하고 산출물을 다른 기업에 판매하기 위해 필요한 표준거래계약(standard contracts) 이외의 계약유형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이상적 경제학을 칠판 경제학(blackboard economics)이라고 비판했던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코즈(Coase)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실의 복잡한 기업관행이 이상적인 경제학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비정상적인 독점으로 간주하려고 한다.


이러한 이상적 시장에서 이상적 기업의 모습을 전제로 할 때 지배주주가 계열사를 이용해 실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지분보다 많은 지배권을 행사하며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주주가 회사를 소유한다고 할 때의 ‘소유’개념에는 개별 주주들이 자신이 소유한 주식 수만큼만 지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사실이 당연히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별 기업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집단을 형성하며 계열사 간 거래를 하는 것은 표준계약유형에서 벗어나므로 역시 비정상적 거래로 보인다. 그리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을 받으면서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거나 간섭하는 것 역시 표준계약에서 벗어난 불공정 행위로 접근한다.


불완전 시장에서의 현실적 기업: 계약의 결합체(nexus of contracts)


현실의 시장이 마찰이 없는, 즉 거래비용이 소요되지 않고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장소라면 애초부터 기업이라는 생산조직은 탄생하지도 않았다. 소비자들의 수요가 있을 때 개별 생산요소 소유자들이 일시적으로 한 장소에 모여 필요한 만큼의 생산요소 공급계약을 체결하여 생산을 하고 다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면 된다.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면 다시 모여 계약을 체결하면 되므로 굳이 기업이라는 조직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매번 이렇게 단기 계약을 체결하는 데는 상당한 거래비용이 소요된다. 계약이라는 것이 서로 필요한 사람을 찾아 협상을 통해 의견 일치를 보는 과정이므로 상당히 번거롭다. 거래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거래비용을 줄일수록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할 것이므로 사람들은 대안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생산과 경영에 관련된 포괄적 사항을 계약 당사자중 일방이 일정한 범위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즉 ‘경영권’을 핵심으로 하는 장기계약을 한번만 체결하여 거래비용을 줄이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생산요소 간 수직적 통합형식의 장기 계약형태(nexus of contracts)가 바로 ‘기업(firm)’의 본질이다. 이러한 기업이 독립적으로 법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인(法人)이라는 옷을 입혀 놓은 것이 ‘회사(corporate)’이다. 법인이라는 옷을 입고 있어 마치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다양한 생산요소 소유자들 사이의 ‘계약의 결합체’다. 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므로 이러한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한 계약형태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계약들의 결합체가 기업의 본질이므로 기업의 경계(boundaries of the firm) 역시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다. 기업집단 내부에서 ‘계열사 간 관계’ 또는 대·중·소 기업 간 ‘하도급 관계’가 하나의 기업이라고 인식될 정도로 강력한 수직적 통합구조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독립된 기업 간 표준계약형태도 아니다. 거래비용을 극복하기 위한 중간 정도의 수직적 통합계약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기업이나 회사의 본질은 하나의 독립된 실체라기보다는 다양한 생산요소 소유자들 사이의 계약의 결합체(nexus of contracts)이므로 주주가 일반적인 물건처럼 회사를 ‘소유’한다는 개념은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소유-지배괴리의 기업집단 구조를 ‘당연히’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며 교정하려는 정책은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다. 1주1의결권 원칙에서 벗어나는 차등의결권 주식 역시 당연히 비정상적인 주식이므로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계약의 관점에서 보면 회사지배권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히려 싼 가격에 주식을 구입해 더 많은 배당을 받기 원하는 주주와 그 반대의 선호를 가진 주주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 차등의결권 주식이다. 또한 소유-지배괴리 구조 때문에 지배주주에게로 지배권이 집중되어 권한남용이 문제될 수 있지만 오히려 경영권이 집중되어 강력한 리더십 행사가 가능해짐으로써 회사 성과가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이러한 소유구조를 선호하는 주주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주주들도 있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의 소유구조가 자신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주주들의 몫이다. 소유-지배괴리는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닐 뿐 아니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확고한 실증연구도 없다. 유럽연합(EU)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소유-지배괴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며 사전적으로 직접 규제하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많으므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표명한바 있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도 완전시장에서의 이상적인 표준계약에서 벗어나는 비정상적 거래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전혀 관련성이 없는 회사와 거래를 하거나 이러한 회사에 사업기회를 할당했을 경우에는 사업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적고 사업비밀의 유출위험 등이 있어 상당한 거래비용이 소요된다. 반면 기업집단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이러한 비용을 줄여줄 수 있다. 하도급 거래나 대형유통점 납품거래의 경우도 대기업이 납품 중소기업보다 우월적 지위를 가질 경우 이를 남용하여 납품업자에게 피해를 줄 위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을 촉진시킬 수도 있다. 2008년 OECD회의에서도 계약당사자중 일방의 구매협상력(bargaining power) 행사는 경쟁을 촉진시켜 최종제품의 가격하락과 안정화에 기여하며 소비자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으므로 규제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결론 맺고 있다.


‘당연위법의 원칙’이 아닌 ‘합리의 원칙’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 정책의 근저에는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괴리는 당연히 그 자체로서 비정상적 구조이므로 이를 일치시키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현재 논의 중인 순환출자 규제, 출자총액제한 재도입, 지주회사 규제강화, 금산분리 강화 등의 정책들이 그러하다. 또한 중소기업과의 거래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진 대기업은 당연히 권한을 남용할 것이므로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듯하다. 최근 하도급법 개정과 대형유통업법 제정이 그러하다. 여기서는 우월적 지위남용으로 의심되는 행위유형을 법에서 제시하고 대기업의 행위가 이러한 행위유형에 해당할 경우 불공정성에 대한 구체적인 입증 없이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소유-지배괴리 구조와 대기업의 우월적 권한행사가 항상 바람직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규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소유-지배가 괴리될 경우 지배주주가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사적이익을 추구할 위험성이 있고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할 위험성도 분명 있다. 다만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책을 세우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항상 ‘과잉’규제의 문제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규제로 인한 외형적 개선은 눈에 보이지만 그것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규제의 실효성도 중요하지만 규제의 한계도 항상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


급속한 기술변화와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이 점점 증가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계약구조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 기업조직과 행위에 대한 위법성 판단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상적인 기업행위를 위법행위로 잘못 판단할 오류(false positive error)가 그 반대의 경우(false negative error)보다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법적 판단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위법성에 대한 입증책임(burden of proof)과 입증기준(standards of proof)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기업행위의 위법성을 국가가 구체적으로 입증하여 규제함으로써 불필요한 시장개입을 최소화 하겠다는 것이다. 당연위법의 원칙(per se illegal)에서 합리의 원칙(rule of reason)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적법절차원칙(due process of law)


시장도 불완전하고 인간도 불완전하고 기업도 불완전하고 정부도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시장에서 거래비용을 극복하며 자신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거래 참여자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계약들의 결합체가 기업이다. 인간이 불완전하다보니 이들이 만들어낸 기업조직 역시 완전할 수는 없다. 계약의 결합체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닌 정부가 보기에 이러한 기업의 불완전성은 눈에 거슬리기 마련이다. 조금만 손질하면 완벽한 기업이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부도 불완전하다. 정부의 이러한 유혹을 억제해 신중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도록 하여 ‘불필요한’ 국가개입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헌법상 적법절차원칙(due process of law)이다. 정상적인 기업행위를 위법행위로 잘못 판단할 오류(false positive error)를 최소화 시켜 줄 수 있는 원칙이다. 국가가 열반의 오류(nirvana fallacy)에 빠져드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원칙이다. 규제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원칙이다. 최근 대기업규제의 실효성과 필요성만을 강조하는 정치권에서 반드시 음미해보아야 할 원칙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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