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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육 과열과 등록금 인하정책


우리 대학교육이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는데도 주요 공공정책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육 부문은 정치권과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받아왔다. 지금 여야가 경쟁적으로 공약한대로 등록금 인하정책이 실현되면,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와 사회적 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이런 정책은 그 목적이나 효과가 불투명한 반시장적 개입정책일 뿐 아니라, 커다란 부작용이 예상되므로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 정책의 배경에는 크게 보아 다음의 세 가지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 대학교육의 공공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대학교육은 공공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초중등교육의 확장쯤으로 여기는 대중적 오해는 여전히 남아있다. 둘째, 대학교육이 인적자산에 대한 투자이므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빈곤타파, 사회복지 증진, 국가경제력 향상과 같은 사회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에 대한 공적 지원은 필수사항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대학교육의 기회확대를 사회정의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학교육을 선택사항이 아닌 대중적 권리로 여기는 이런 믿음은 대학정책이 포퓰리즘적 성격을 띠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이런 연유로 우리 사회는 늘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개입을 허용해 왔다. 대학은 입시제도, 입학정원, 교원 인사정책, 교육이나 연구의 내용, 재정문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정부의 규제를 받아 왔다. 이제 반값등록금 정책을 넘어 공짜 대학교육, 사실상 대학국유화를 주장하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이들 믿음의 근거가 취약하고 허점이 많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난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가지는 정서적인 호소력은 크므로, 대학교육의 대중화에 대한 욕구는 외면하기도 어렵다. 대학교육과 같은 고등교육은 그 목적이나 취지, 교육의 성과가 이루어지고 확산되는 방식도 초중등교육과는 다르다. 대학 교육의 이상은 기본적인 교양이나 기초지식 또는 단순한 직업적 소양을 전수하는 수준을 뛰어 넘는다. 대중적 대학교육의 욕구를 수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런 대학교육의 이상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사적이익, 공적이익과 대학교육의 관계


대학교육이 사적 또는 공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는 경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대학교육이 개인적 차원에서 소득, 직업 안정성, 자부심을 높여주고 개인의 경제적 성공과 정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고,1) 이는 통계적 수치로도 확인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의 2010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학력 간 임금격차는, 고졸을 100으로 할 때, 대졸이상, 전문대졸, 중졸이 각 각 177, 118, 69이다. 이런 임금격차는 평균치에 비해 다소 크다. 그러나 대학졸업 이상의 고용률은 OECD 평균치 보다 낮음을 감안하면, 개인당 평균 임금격차는 보다 작을 것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실업률 격차는 대졸이상이 4.0 퍼센트, 고졸 4.5퍼센트, 중졸은 3,2퍼센트로 나타나는데, 대졸 출신이 눈높이를 맞춰 취업하는 경우를 감안하면 학력 간 실업률 차이가 클 것이라는 인식도 과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학력에 따른 소득격차나 고용효과는 과장된 측면이 있고,2)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대학교육이 경제적 성공을 보장하거나 충분한 조건도 아님은 분명하다.


고등교육이 공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대학졸업자가 발명이나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사회전체에 경제적 기회를 확대시킬 가능성이다. 즉 대학교육이 가져올 수 있는 정의 외부성 (positive externality)이다. 다른 하나는 대학교육이 개인의 인적자산을 늘려주고, 이는 경제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설이다. 바로 일부 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대학교육에 대한 공적지원 확대를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주장하는 근거들이다.3) 그러나 이런 주장의 타당성은, 최선의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불분명하다.


고도의 교육을 받은 개인이 사회전체에 유익한 공헌을 할 수 있는 개연성은 커질 수 있겠지만, 그런 천재들은 극히 제한된 소수이고, 반드시 대중화된 대학교육에 의해서 배출되지도 않는다. 역사는 수많은 에디슨이나 제임스 왓트, 빌 게이츠나 스티브잡스, 카네기나 정주영을 길러 내었다. 대중적 대학교육의 확대가 국가경제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이들의 인과관계는,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확연히 입증되어 있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국가가 반드시 높은 대학졸업자 비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일, 일본,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대학진학률이나 대졸자 비율은 한국이나 미국, OECD 국가들의 평균치보다도 훨씬 낮다.


대학진학률의 상승의 원인과 낭비적 신호주기 교육


한국, 미국, 핀란드와 같이 대학 교육열이 높은 경우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경우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 대학졸업률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교과부의 2010년 교육기본지표 통계에 따르면, 고교졸업생의 대학진학률은 82퍼센트로 60-70퍼센트의 미국이나 50퍼센트대인 일본, 유럽선진국의 40-50퍼센트를 크게 앞지른다. <표 1>이 보여주는 대로 진학률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최고수준에 달했는데, 이는 1980-1990년대의 두 배 수준으로 상승한 것이다. 실제 대학재학생 숫자는 1999년의 159만 명에서 2000년대 중반에는 200만 명으로 약 25 퍼센트 증가하였다.


이런 증가세는 1990년대 중반이후에 대학설립이 자유로워지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같은 기간에 1인당 실질 GDP는 약 두 배, 대학 등록금은 5배 증가하였다. 대학설립 자유화 이후에도 정원은 계속적으로 규제되었기 때문에 대학재학생 수의 증가를 대학교육의 수요증가로 보기는 어렵지만, 대학진학율의 증가는 수요 증가를 어느 정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수요증가는 대학교육의 가격탄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주로 소득증가 효과를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급격한 수요증가는 주로 1990-2005년의 기간 중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기간 중 실질소득은 2.09배 증가한 반면, 대학진학률은 2.47배, 일반계 고교생의 진학률은 1.88배, 전문계 고교생의 진학률은 8.1배 증가하였다.


대학학비는 주로 학부모가 부담하며, 교육이 취업에 선행하므로, 진학률 상승의 인과관계는 소득상승에 따른 대학교육의 수요증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대학진학률의 증가는 소득상승에 따라 보다 보수가 높고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경제학적인 용어로는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은 소득효과를 반영하는 사치재의 성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중에 실업계 고교생들이 취업대신 대학진학에 몰리기 시작하였고, 대학졸업자들의 정규직 취업 비율이 40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진 반면에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심화되었으며, 대학원 진학이 급격히 늘어난 사실들은 모두 그런 경향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 준다(<그림 1> 참조).


<표1> 대학진학률과 GDP


<그림 1> 고등교육기관의 재적생 비율

이런 사정 때문에 대학진학의 주목적은 취업준비가 되고, 소비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대학은 교육프로그램이나 내용, 학사관리도 졸업생의 취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대학교육이 창의적인 엘리트의 양성보다는 취업률 향상에 유리한 학과를 만들고, 자격증취득에 유리한 교육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대학평가에서 졸업생 취업률이 주요 항목이 되고, 정부도 재정지원의 근거로 이를 활용한다. 하버드와 같은 미국의 유명대학에서도 학점 부풀리기가 문제가 되고, 서울의 일부 명문대학에서 A학점 취득자가 70-80퍼센트에 이른다는 사실도 이를 반영한다.


문제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고, 좋은 일자리일수록 일자리 숫자는 적고, 사정은 경기하강기에 더욱 나빠진다는 데 있다. 한정된 숫자의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일수록 보다 유능한 인재를 뽑으려는 하는 반면, 대학졸업자의 수준을 선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되므로 보다 높은 학력, 보다 수준 높은 자격증을 추가로 요구하게 된다. 그럴수록 대학원 진학이 늘어나고, 명문대학 입시경쟁, 자격증 취득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헛교육경쟁 (education rat race)이 심화된다. 한편, 대학은 명성유지를 위해 시설과 교수자원을 늘리는 경쟁에 빠지고, 이는 대학교육의 비용을 증가와 대학교육의 학비부담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런 대학교육은 불필요하게 자원을 낭비하면서 학력과잉 현상을 일으키는 낭비적 신호주기 교육 (dissipative-signaling education)이다.


등록금 인하정책의 허실


‘반값등록금’ 논쟁으로 촉발된 등록금 인하 정책은 되돌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다. 과중한 교육비부담에 시달리는 학생, 학부모의 염원이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한 술 더 떠서 무상 대학교육에다 대학국유화라는 무책임한 주장까지 한다. 또한 그 근거로 사회적 정의차원에서 대학교육의 기회를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불행히도 이런 정책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정당성이 없고, 전혀 실효성이 없을 뿐더러,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먼저 사회정의의 문제를 보자. 이 주장은 아마도 사회적 약자에게 힘을 실어주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와 교육기회의 상실로 인한 인적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하는 것 같다. 대학교육은 초중등교육과는 달리 교육의 성과가 개인의 자질, 성취동기와 의욕, 경제적 여력에 크게 의존하는 개인특이적(individual specific) 성격을 지닌다. 이를 무시한 획일적 교육비 깎아주기는 어떤 정의 개념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자질과 의욕이 있는 경제적 약자의 경우라면 장학금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 터이다.


등록금인하 정책이란 실은 대학교육에 대한 보조금 지급정책을 의미한다. 대학교육의 구조나 방식의 개편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수요가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인 까닭에 보조금은 주로 교육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위에서 논의한대로 대중적 대학교육의 혜택은 주로 개인에게 돌아갈 뿐, 공익증진에 별로 기여하지 않는다. 등록금인하라는 보조금은 수혜자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주지만, 이는 대학교육에 대한 과소비를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다. 대학진학률이 더 커지고, 재학기간은 더욱 길어지는 반면, 명문대나 대학원 진학에 대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소모적인 학력과잉 현상이 나타나는 반면에, 대학의 재정사정 악화, 대학교육의 자율성과 교육내용의 질적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대학교육에 대한 소비는 교육비 절감의 효과보다 크게 증가하는 낭비적 신호주기 교육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런 효과를 내는 대학교육에 공적자금을 동원해 보조금을 주어야 할 명분이 있는가?


대학교육비를 부담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대학의 비효율적 비용구조를 개선하고 대학교육이 취업준비 과정이라는 굴레에서 보다 자유롭게 만드는 방법뿐이다. 단기적으로는 연구중심 대학과 리버럴아트 대학의 구분을 강화하고, 전문대학의 교육내용을 보다 충실하게 만드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대학이 스스로 재정확충 방안과 엘리트 양성과 직업적 소양교육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기업은 외형적 학벌 위주의 단순한 선별방식 대신 보다 정교한 인재발굴 방식을 개발해야 하며, 학생, 학부모와 언론은 대학교육의 효용성을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훈련을 해야만 한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대학에 대한 일체의 간섭을 풀고, 이런 노력들이 자생적인 질서로 진화될 수 있도록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는 일이다.


장대홍 (한림대학교 재무금융학과 교수 dtjaang@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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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많은 연구, 조사 결과들은 이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Goldin and Katz, Long-run changes in the U.S.

Wage structure, NBER working paper 13568, 2007. 또는 The U.S. College Board report, Education Pays,

2010.

2) 이런 사실은 OECD 국가들에 대한 통계적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McIntosh, S. Education and Employment

in OECD countries, UNESCO, 2008).

3) 미국의 예를 들자면, 폴 크루그만이나 로버트 라이시와 같은 좌파경제학자들,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입장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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