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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경제위기와 한국 기업집단의 변화


전 세계가 미증유의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며 핵심 경제 주체인 기업들도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 불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구조조정과 기업체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경제와 기업들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약 10년 만에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권에 들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보다 강한 내성을 보이며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연 한국경제와 기업들의 저력은 무엇일까?


우리는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다. 당시 외환위기는 태국 등 동남아에서 시작되어 한국까지 확산되었으나 결과적으로 경제위기의 원인을 대내적 요인, 특히 기업과 금융의 부실에서 근본원인을 찾았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나 민간 모두 과감한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을 위기 탈출의 핵심과제로 인식하였다. 많은 반대와 이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IMF 권고와 정부 주도로 사업구조조정, 재무구조조정, 지배구조조정 분야에서 기업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특히 기업의 과잉투자를 해소하고, 부실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룹 간 사업교환(business swap), 이른바 빅딜이 강력하게 추진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시장의 독과점화를 조장한 면도 없지 않지만 하이닉스 등과 같이 오늘날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변모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한편 재무구조 조정의 핵심은 부채비율 인하 정책이었다. 1999년 12월말까지 인위적으로 200% 이하로 부채비율을 인하하라는 금융당국의 요구는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살인적인 고금리 정책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업들이 적극 노력한 덕분에 목표 기한까지 5대 그룹을 위시한 대부분의 그룹들이 200%를 크게 하회하는 부채비율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런 추세는 계속되어 상위 5대 기업집단의 경우 2009년 현재 부채비율이 82.8%에 불과할 정도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배구조 조정에서는 그룹 경영의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하여 사외이사제도 강화, 결합재무제표 의무화, 내부거래 규제 강화 등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었다. 비록 정부 주도라는 한계와 부작용이 있었으나 외환위기라는 국가비상 시기를 맞이하여 정부와 기업들이 양보하고 협력하여 조기에 경제 위기를 극복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된다.


10여 년이 지난 현재 미국발 부동산 버블, 선진국 금융시장 붕괴 등으로 국내 경제가 다시 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위기의 본질이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의 부동산 및 금융 버블의 붕괴에 있는 것이어서 지난번 위기처럼 기업을 속죄양으로 삼는 기업구조조정 정책이 핵심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신 정부의 환율정책 등 대외경제정책의 운용이 문제점으로 제기되었으며 다행히 이후 충분한 외환보유고 확보로 국가 리스크는 크게 감소하여 경제가 안정궤도에 접어들고 있다.


IMF 위기와 다른 점은 조선업ㆍ건설업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과잉투자의 문제점보다는 오히려 과소투자가 더 문제가 되고 있다. 기업이 과도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현금(달러)을 충분히 보유한 글로벌 선두기업들에게는 오히려 시장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10년 전의 경제 위기는 한국 기업들에게 또 다른 위기를 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다운사이드 리스크(downside risk)에 내성을 길러준 “위장된 축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의 대기업 그룹들은 이미 지난 10여 년간 이들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이 급변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대학의 로널드 코즈(Ronald H. Coase) 교수의 이론대로 그룹 경영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편익은 낮아지는 형태로 기업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내부거래에 대한 강력한 규제, 소액주주들의 재산권 강화, 경영투명성 강화를 위한 증권, 금융시장의 법제 강화 등은 대표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과거처럼 그룹 체제에서의 총수에 의한 일사분란한 경영 지휘보다는 느슨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계열사의 독립경영의 편익이 더욱 강조되는 환경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변화와 그룹의 대응은 이미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기업집단의 전형이 보다 느슨한 형태로 독립경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IMF 직후 많은 그룹에서 그룹분할ㆍ회사분할ㆍ분사(spin-off)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으며, 현재 한층 느슨해진 그룹 체제하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준 독립적인 계열사들이 속속 성장하고 있다. 최근 많은 그룹이 지주회사제를 채택하여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왔으며,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강도 높게 추진해 오고 있다.


두 차례의 금융 위기에서 한국 경제는 취약점을 극복하고 빠르게 회복하는 강인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리더십과 기업의 지속적인 구조조정 노력의 덕분으로 예상보다 수월하게 위기를 타개해 나가고 있다. 최근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은 더 이상 재벌이라고 불리는 기업집단이 일방적으로 비난받는 현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아마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한국 대기업들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지금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나 규제 때문이 아니라 시장과 경쟁의 힘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기업의 형태ㆍ지배구조ㆍ사업구조 등 세세한 부분까지 정부와 국외자가 관여하는 것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대신에 기술과 정보가 고도화되고 있는 지식기반경제에서 정부는 안정적인 경제 운용과 기업하기 좋은 제도를 구축하여 부실한 기업을 시장이 정리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재우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jaewoo@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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