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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적 외환시스템의 구축과 원화의 국제화 방안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외국인은 기관투자자, 중앙은행 등 장기투자자 중심으로 상장국고채의 13.4%, 통안채는 18.7%를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국제투자자들은 원화표시 국채를 안전자산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신흥국 뿐 아니라 일부 선진국 중앙은행도 보유외환으로 편입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화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것은 다변화되지 못한 국제통화에 대한 높은 수요와 함께 신흥국경제의 위상이 높아진데 따른 결과다. 외국인보유채권에서 원화표시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8%에 불과하였으나 현재 5배 이상 증가한 것은 원화국제화가 이미 상당부분 진전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통화국제화는 한편으로는 비거주자가 원화증권에 투자하거나 발행함으로써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떨어뜨리고 자칫 외환부문의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거주자의 자금조달수단이 다변화되고 금융중개기능이 활성화됨으로써 금융의 양적·질적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나아가 상식적 견해와 반대로 외부충격으로부터 안정적인 거시경제운영이 가능하다. 비록 한국경제가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선진국으로 분류되고는 있으나 금융발전측면에서는 여전히 신흥국의 위상에 머무르는 것은 크게 미흡한 원화국제화에 根因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라면 자국통화로 외채를 발행할 수 없을 때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 위기가 일어날 수 있는 原罪’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교역조건의 악화와 같이 자국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부(負)의 충격은 국제통화로 외채를 발행 시 상환할 외채가 더 늘어나는 負의 평가효과를 동반한다. 선진국과 달리 신흥국의 통화위기가 진정되지 못하고 은행위기, 국가부도위기 등 쌍둥이, 세쌍둥이 위기로 확산되는 현상은 결코 불운의 탓이 아니다. 負의 평가효과가 경제전반에 파급됨으로써 위기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현 외환시스템은 아시아금융위기와 글로벌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자기보험으로서의 보유외환, 거시건전성정책, 외환관리법으로 그 골격이 구축되었다. 2014년 9월말 우리나라 대외채권은 6,540억불, 대외채무는 4,291억불이며 단기대외채권이 단기채무의 4배 이상 초과하고 있다. 경제전체로 볼 때 통화불일치와 만기불일치의 위험이 없다. 더욱이 외환당국이 56%를 점유하고 있는 대외채권, 즉 보유외환은 모두 단기채권이다. 그러나 은행, 기업 등 나머지 부문은 대외채무가 대외채권을 초과하는 통화불일치가 존재한다. 비록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뚜렷이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경제주체별 대외채권과 채무의 분포가 편중된 것은 외환당국이 통화 및 만기불일치 위험에 대한 최종보험자역할을 수행하도록 외환시스템이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금융위기는 국가간 자본교역이 크게 늘어난 글로벌금융세계에서 보유외환이 자기보험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차입, 증권투자, 경상수지흑자, FDI 등으로 국내에 유입된 외화자금은 외환준비금적립 등 대외채권으로 일부 잔류할 뿐 나머지는 해외직접투자, 증권투자 등 다양한 창구를 통해 해외로 리사이클링된다. 특히 외채를 중심으로 막대한 외화자금이 유입된 2007년 외화유동성관리를 위해 허용되었던 거주자 해외주식투자는 해외에서 돈을 빌려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레버리지 투자에 다름없었다. 더욱이 호황을 맞은 수출업체의 환헤징활동의 결과 외채가 크게 늘어나는 부작용이 일어났다. 다음 해 10월 발생한 막대한 규모의 디레버리지에 대응하여 외환당국은 564억불의 보유외환을 매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연준과의 통화스왑이 체결될 때까지 외환불안은 멈추지 않았으며 또다시 한국경제는 큰 상처를 입었다. 글로벌금융위기를 계기로 정부는 외화차입을 억제하는 거시건전성 정책을 시행했다. 2010년 외환파생거래 포지션을 은행의 자기자본에 연계하고, 외채만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조달한 외화자금의 상환기간에 따른 차별적 부과금을 도입한 것이다.


아시아금융위기 이후 단행된 전면적인 외환거래자유화조치에 따라 외환관리법을 대체한 외환거래법은 기업의 대외영업활동과 관련한 경상지급제한을 폐지하고 자본거래의 원칙자유, 예외허용, 즉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네거티브 시스템은 외국환은행에 한하여 적용하고 있으며 증권, 보험 등 비은행권에 대해서는 허용된 외환업무를 규정에 열거하고 있다. 이 열거주의는 거주자간 원화거래와 비거주자간 외환거래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형태의 금융거래를 포함하는 것이다.


현행 외환거래법은 비은행 및 비금융기업이 각종 외환업무를 수행하는 데 따른 법적위험을 야기함으로써 외환업무자체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 기업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동기 없이 법을 위반하여 제재를 받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본다. 이 법적위험은 기업의 해외진출을 위축하거나 법적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기업이 해외로 分社하는 등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뿐 아니라 비은행권의 금융회사가 외환업무를 기피, 금융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적정 외환보유액의 논란은 단골메뉴다. GDP대비 외환보유액이 증가하는 추세는 실물경제 측면에서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다. 외환보유액이 지나치게 많을 때 오히려 국민경제에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글로벌금융위기 후 각종 통화지표 대비 외환보유액비율은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신흥국을 중심으로 외화자금의 유입이 중단되고 대거 역류되었을 뿐 아니라 국내유동성이 외화자금으로 통화대체 되었던 사실을 고려할 때 결코 외환보유액이 많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반박하기는 어렵다. 금융발전과 경제성장으로 다양한 형태의 금융수요가 늘어나고 금융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외환수요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 외환시스템은 외환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적정 보유외환액도 함께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진다. 기 지적하였듯이 수출기업이 환위험을 헤징할 때 상식적 판단과 달리 외채가 늘어나는 것은 외국환은행이 선물환계약에 따른 환포지션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거래상대방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출기업과 은행의 환위험이 사라지는 대신 외채가 늘어나고, 늘어난 외채는 외환에 대한 적자경제주체인 은행의 통화 및 만기 불일치위험을 높이고, 이 위험은 궁극적으로 외환당국이 떠안게 되는 인과관계가 일어난다. 해외증권투자 시 환위험을 헤징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통화국제화가 크게 진전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는 우리와 같은 구조적 문제가 없다.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GDP대비 외채비율이 50%를 넘어섰던 오스트레일리아는 보유외환이 불과 US300억불 남짓했으나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일시적 유동성위기를 겪었을 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우리와 달리 거래상대방을 찾아 외채 대부분을 AUD로 환헤징함으로써 환위험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거래상대방은 AUD로 부채를 발행한 신용이 높은 비거주자다. 그러므로 사실상 자국통화로 외채를 발행한 경우와 다름없었다. 그 결과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AUD/USD환율의 상승은 오히려 상환할 외채가 줄어드는 정(正)의 평가효과를 작동하였고 환율상승에 따른 수출수요가 증가하는 우호적인 경제여건이 조성되었다. 뉴질랜드도 유사한 경험을 하였다. 갑작스런 국제자본흐름의 역전으로 인하여 일국경제가 큰 피해를 보는 ‘자본유입의 문제’가 신흥국에 집중되는 것은 외채를 자국통화가 아닌 국제통화로 발행하는 데서 연유한다. 통화국제화가 충분히 진전 시 자국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대외충격은 반대로 정(正)의 평가효과를 동반하는 것이다.


글로벌금융위기는 보유외환만으로는 외환시스템의 안정을 담보할 수 없다는 교훈을 주었으며 보완책으로서 외채를 억제하는 거시건전성정책이 도입되었다. 그동안 외환당국의 노력으로 무분별한 외채증가를 억제하고 외채구조도 개선되는 등 금융안정프레임워크의 핵심인 외환부문의 안정성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안정성이 항구적인 것은 아니다. 종국에는 규제가 창출하는 차익을 노리는 활동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내금융회사만을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으로 정의하고 규제의 대상으로 삼을 때 그 규제가 장기적으로도 유효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외환부문이 금융발전의 걸림돌로 제약받지 않고 우리경제가 글로벌금융세계의 주변부를 벗어나 原罪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현 외환시스템을 미래지향적으로 수정·보완해야 한다. 우선 비은행 및 비금융기업의 외환업무에 따르는 불필요한 법적위험을 제어하기 위해서 외환거래법은 투명하고 단순하게 운영되는 것이 마땅하다. 덧붙여 동법의 취지인 외환거래의 원칙자유, 예외허용, 즉 네가티브 시스템을 증권, 보험 등 다른 금융권으로 확대함으로써 비은행권의 국제금융업무 활성화를 촉진해야 한다. 한편 은행 등 외환업무를 수행하는 금융회사차원에서 위험관리능력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대신 외환당국은 외환업무에 따르는 경제규제를 건전규제로 전환하고 감시·감독역량을 배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수요에 따른 원화국제화는 이미 상당부분 진전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외면하지 말고 질서있게 수용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글로벌금융세계의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 원화가 국제통화로서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로드맵을 준비하고 일정에 따라 이를 이행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미래지향적 외환시스템을 갖추고 원화국제화의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때 금융회사의 사적 외환업무활동이 우리나라 외환부문의 안정과 상충되는 문제는 극복될 수 있다. 지난 5년여 급속히 추진해 온 인민폐국제화의 일환으로 작년 12월 개설된 원-위안화 직거래시장은 원화국제화를 제한된 범위에서 시행하고 그 공과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다.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kimks@skku.edu)


*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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