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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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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리 경제학


‘재벌 빵집’들이 문을 닫고 있다. 재벌 2, 3세의 베이커리 사업 진출로 동네 빵집들이 망해가고 있다는 비난여론에 밀린 탓이다. ‘재벌 빵집’ 때문에 동네 빵집이 정말로 망해가고 있는지는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재벌 빵집’을 문 닫게 하면 망해가는 동네 빵집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짚고 넘어갈 일이다.


‘재벌 빵집’ 때문에 동네 빵집이 망해가고 있다는 주장이 타당한지를 보기 위해서는 ‘재벌 빵집’이 생기지 않았다면 동네 빵집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더 성장할 수 있었음을 보여야 한다. ‘재벌 빵집’은 대부분 호텔이나 백화점에 입점해 있다. 그리고 그 수도 모두 50개 미만이다. 애초에 동네 빵집과는 직접적인 경쟁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동네 빵집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하여 호텔이나 백화점까지 가서 ‘재벌 빵집’을 이용한다면 동네 빵집은 고객을 빼앗기는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잠재적인 경쟁이 있다.


그러나 동네 빵집을 이용하는 수요자와 ‘재벌 빵집’을 이용하는 수요자가 기본적으로 다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빵의 수요층은 매우 다양하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맛있고 모양 좋은 고급 빵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맛과 모양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가격이 싼 빵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또 빵집의 인테리어, 분위기, 주인이나 종업원의 태도 등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즉, ‘재벌 빵집’의 빵과 동네 빵집의 빵은 다른 상품이고 서로 다른 수요곡선이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증가하고 시간이 갈수록 소비자의 취향이 변하며 다양해진다. 그동안 우리의 소득이 많이 증가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양한 먹거리를 원했고, 입맛도 고급화되었다. 빵에서 피자, 고급 떡, 샌드위치, 햄버거 등으로 소비자의 취향이 바뀌어 갔다. 빵만 해도 기존의 식빵, 단팥빵, 소보로빵 등에서 바게트, 하드롤, 크루아상, 페스트리, 쉬폰케익, 치즈케익, 마들렌 등의 다양한 베이커리 제품을 원했고, 같은 종류의 빵이라도 맛좋고 고급스런 것을 찾게 되었다. 이를 발견한 재벌 2, 3세들이 백화점이나 호텔에 고급 빵집을 차렸다. 여기서 재벌 2, 3세들이 고급 빵집을 차리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는 별개의 문제다. 재벌 2, 3세가 고급 빵집을 차리지 않았더라도 동네 빵집이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빵집으로 변하지 않는 한 동네 빵집에 대한 수요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재벌 2, 3세가 고급 빵집을 차린 것이 동네 빵집이 망해가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동네 빵집이 몰락해간 이유는 그 동안 소비자 취향이 변화한데 있고, 또 동네 빵집이 그 변화에 맞춰 소비자의 욕구를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한데 있다.


시장에 맡겼어야할 ‘재벌 빵집’의 퇴출, 경제적 자유의 훼손


그렇다면 ‘재벌 빵집’을 문 닫게 하면 망해가는 동네 빵집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에 답은 바로 나온다. ‘재벌 빵집’과 동네 빵집의 몰락 간에 커다란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재벌 빵집’이 문 닫아도 동네 빵집이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빵집으로 변하지 않는 한 다시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다. 동네 빵집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그 욕구에 맞는 빵을 만들어 팔아야만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동네 빵집은 수요의 변화를 발견한 ‘재벌 빵집’을 통해 뒤늦게 소비자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알아챘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재벌 빵집’과 경쟁관계를 느꼈을 수도 있다. 이제 경쟁관계가 될 수 있었던 ‘재벌 빵집’이 문을 닫게 된 후, 동네 빵집이 ‘재벌 빵집’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빵집을 운영한다면 일부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개방되어 있는 상황에서 외국의 유명 베이커리가 직접 동네에 빵집을 차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동네 빵집은 또 다른 경쟁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사실 소비자 욕구의 변화를 파악하고 성공한 ‘동네’ 빵집이 바로 파리바게트와 같은 프랜차이즈다. 파리바게트는 3,000개의 가맹점을 거느리고 있고, 그것의 대다수 가맹점주들은 바로 동네 자영업자들이다. 이번 반(半)강제적 퇴출이 없었더라도 이런 파리바게트를 상대로 재벌 2, 3세가 차린 고급 빵집이 성공을 거두고 끝까지 살아남았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실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재벌 빵집’의 퇴출은 베이커리 산업에 적지 않은 경제적인 손실을 남겼다. 직접적으로는 ‘재벌 빵집’에 원재료를 공급하던 업체나 농가들이 판로를 잃고, 고용되어 있던 인력들이 일자리를 잃게된 일이다. 물론 일부 동네 빵집이 다시 살아나면 그 중 일부는 다시 판로를 찾게 되고 고용이 될 수 있겠지만, 여하튼 실업은 증가한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수요의 변화를 발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베이커리 산업에서의 수요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를 없애버린 것이다. ‘재벌 빵집’을 계속 남아있게 했다면, 성공하면 성공한대로 어떻게 하면 베이커리가 성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왜 실패했는지, 시장에 베이커리 산업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재벌 빵집’의 퇴출로 이 중요한 정보와 지식의 전달이 차단되었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경제적 자유의 훼손이다. 한 그릇에 3천 원짜리 국밥을 파는 식당에서부터 1인분에 10만 원짜리 한정식이나 스테이크를 파는 식당과 레스토랑이 있듯이, 한 개당 5백 원짜리 빵을 파는 동네 빵집도 있고, 한 개당 5천 원 이상 하는 빵을 파는 백화점과 호텔의 고급 빵집도 있어야 하는 것이 자유사회다. 그리고 그런 자유스러운 분위기이어야 베이커리를 포함한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각자 갖고 있는 위나 근육, 신경, 내분비선, 뇌 등이 동일하지 않으며, 소득 또한 다르다. 따라서 좋아하는 음식이 서로 다르다. 음식의 다양성이 줄어들면 그만큼 사람들의 행복감도 준다. ‘재벌 빵집’ 문제를 하찮은 빵에 관한 문제로 치부해 버리고 만다면, 우리는 언제가 다른 분야에서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jwa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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