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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에게 세금 더 매긴다고 가난한 사람이 잘사는 것은 아니다


지난 4ㆍ11 총선 보름 전쯤 서울의 한 중심 구(區)를 걸을 일이 있었다. 우연히 한 건물의 꼭대기를 보니 “1% 대 99%” 글자 아래 야당 후보의 이름이 쓰인 현수막이 눈에 띠었다. 이는 ‘1%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매겨 나머지 99%가 잘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당시 야당의 정치구호였다. 그 야당 후보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얼마 후 그는 ‘1%에 드는 부자’로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 국회의원은 앞으로 자신이 내세운 “1% 대 99%” 정치구호를 과연 실천에 옮길 것인가 자못 궁금해진다.


한국의 정치권은 2011년 말 부자 증세로 정부재정을 확충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이른바 '버핏세'를 도입해 소득세의 경우 ‘3억 원 초과 구간 및 38%의 최고세율’을 신설했다. 이로 인해 종전의 4단계 소득세 과표구간(1,200만 원 이하 세율 6%, 1,200만 원 초과~4,600만 원 이하 세율 15%, 4,600만 원 초과~8,800만 원 이하 세율 24%, 8,800만 원 초과 세율 35%)이 모두 다섯 단계로 확대되었다. 신설된 ‘3억 원 초과 구간 및 38%의 최고세율’은 야당의 정치구호 “1% 대 99%”와 관련된다. 이 같은 정치권의 흐름을 보노라면, 한국의 정치가들은 세계의 변화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누진소득세는 소득불평등 해소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음


불평등 해소를 내세워 사회주의를 택했던 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로 전환한 뒤 왜 누진소득세를 버리고 단일세(flat tax)를 택했는가 한국의 정치권은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까? 누진소득세는 소득이 많아질수록 높은 세율이 적용되어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되므로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는 조세다. 반면, 단일세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은 세율이 적용되어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더 적은 세금을 내게 되므로 소득불평등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조세다. 70여 년 동안 사회주의를 택했던 러시아를 비롯해 10여 개 이상의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로 전환한 뒤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단일세를 도입해 왔다. 이는 부자에게 세금 더 매긴다고 가난한 사람이 잘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해 주는 좋은 예다.


소득불평등 해소에 도움이 되는 누진소득세의 대안으로 소득불평등 악화에 기여한다는 단일세를 제안한 학자는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튼 프리드먼이다. 그는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해 누진소득세가 이론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생 동안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현행 누진소득세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 현행 누진소득세제는 지나치게 복잡하다. 둘째, 현행 누진소득세제는 일반 납세자가 부담해야 할 조세협력 비용이 너무 많다. 셋째, 현행 누진소득세제는 지나치게 높은 세율이 탈세 유발에다 세액감면ㆍ공제 등 합법적인 조세회피를 조장한다. 넷째, 현행 누진소득세제는 투자보다 소비를 조장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프리드먼은 단일세 도입을 주장했다. 단일세 도입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따른다. 첫째, 모든 국민과 모든 과세근거에 단일세율을 적용해야 한다. 둘째, 소득 전체를 과세 대상으로 하되 인적공제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필요경비 외에는 일체 공제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프리드먼은 실제 세수와 똑같은 세수를 보장해줄 수 있는 단일세 세율은 연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경우 17~23% 정도가 된다고 제시했다.


프리드먼의 주장이 도움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시장경제로 전환한 뒤 구 사회주의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누진소득세를 버리고 단일세를 채택해 왔다. 몇 나라를 보자. ()안의 수치는 실시 연도와 단일세율을 나타낸다.

에스토니아(1994년; 24%), 라트비아(1995; 25%), 리투아니아(1995; 33%), 러시아(2001; 13%)

슬로바키아(2003; 19%), 세르비아(2003; 14%), 우크라이나(2003; 13%), 그루지아(2004; 12%)

루마니아(2005; 16%), 그리스(2006; 26%)


이들 국가의 단일세율은 낮게는 그루지아의 12%에서 높게는 리투아니아의 33%에 이르는데, 일반적으로 20% 안팎이다. 이는 프리드먼이 언급한 약 20% 수준과 비슷하다.


단일세 채택과 소득세 최고한계세율 인하 모두 경제활성화를 위한 세계적 추세


그러면 구 사회주의 국가들은 왜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단일세를 택해 왔을까? 그 목적은 경제활성화에 있다. 에스토니아는 1994년 동유럽에서는 처음으로 단일세를 도입했는데, 그 목적은 해외자본 유치를 통한 경제재건에 있었다. 러시아는 시장경제 국가로 전환한 뒤 처음에는 세율 12~30%의 누진소득세를 도입했다가 2001년 경제재건을 위해 세율 13%의 단일세로 돌아섰다. 슬로바키아는 2003년 21개 세목과 5단계에 걸쳐 수많은 감세조항이 붙어 있는 누진소득세를 19%의 단일세로 통일시켰다. 슬로바키아는 단일세로 전환한 후 13억 달러의 현대자동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처럼 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해외자본 유치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하고자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누진소득세를 버리고 오히려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단일세를 채택해 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나 더 있다. 세계는 한결같이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을 인하해 오고 있다. 소득세 최고한계세율 인하는 최고세율 이하의 모든 세율 인하를 뜻한다. 1980~2009년간 소득세 최고한계세율 감소폭이 가장 큰 나라는 50%포인트인 한국이고, G7 국가 가운데서는 영국이 43%포인트로 가장 크며, 프랑스가 17%포인트로 가장 작다. 같은 기간 복지국가 스칸디나비아 3국의 경우 감소폭은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각각 35%포인트, 핀란드가 17%포인트다. 한마디로 1980∼2009년간 소득세 최고한계소득세율 인하 폭은 엄청나게 크다. 그러면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은 왜 이토록 엄청나게 인하되었을까? 높은 소득세율은 일을 열심히 해서 소득을 높이는 사람들을 차별하기 때문에 잘사는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국, 영국 등 자유주의 국가들과 준복지국가로 불리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물론 심지어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조차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을 낮춰 그 이하의 모든 소득세율을 낮춰온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이 같은 흐름으로 보아 ‘부자에게 세금 더 매긴다고 가난한 사람이 잘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치가들은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고 있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박동운 (단국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 dupark@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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