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컬럼

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심, “더 나은 규제”가 되기 위한 기본


규제개혁의 세계적 조류는 진화하고 있다. 이전까지 규제완화(deregulation)가 규제개혁의 주요 쟁점이었다고 한다면, 현재 세계적으로 추진되는 개혁정책은 “더 나은 규제(the better regulation)”이다. 규제완화(deregulation)는 누적된 비효율적 온갖 규제에 대한 정면 척결에 비유되곤 하는데, 이러한 이유로 종종 규제 화형식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이에 비해 “더 나은 규제(the better regulation)”는 규제도입의 원인이 되는 규제목적에 대한 개방적 논의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부정적 결과를 유발하는 행위를 통제하는 규제는 여러 세대를 지나도 그 존재성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위험이나 위기는 대부분 고의성 없이 발생할 수 있어 인과관계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규제는 대부분 위험의 가능성, 즉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되는데, 그 위기관리능력을 강화시킬수록 규제의 강도가 높아져버린다. 과거의 불확실성은 현재로서 이미 확인됐지만 그 불확실성을 관리하기 위해 당시에 도입된 규제가 여전히 남아있으면 ‘낡은 규제’가 되는 것이고, 불확실성을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관리하려 도입한 규제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남게 된다.


불확실성을 예측하고 가장 합리적인 방안으로 최소화시켜야하는데, 관리의 편리만을 고려하거나 혹은 명분만을 쫓다보면 과도하게 불확실성을 통제하려 하여 결국 과잉 규제를 양산한다. 이렇게 양산된 규제들을 철폐시키기 위해 규제완화(deregulation)를 전격 실시한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규제 공실에 따라 늘어나는 불확실성을 못 참고는 다시 재(再)규제(reregulation)하려 든다. 결국 불확실성에 대해 통제를 강화하려는 강한 욕구가 있는 이상, 규제완화와 재규제의 반복은 이어질 수밖에 없어 규제개혁의 실효성은 점차 낮춰지게 된다. 따라서 최근에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합리적인 방안을 고려하되 너무도 많은 부담이 예상된다면 아예 그 위험을 허용하고 인정해 버리는 즉, 우리가 위험에 노출되어 버리는 것이 더 나을 수 도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됐다. 이렇게 보다 진화된 개념이 바로 “더 나은 규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개혁정책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은 많은 역사적 경험을 치러야 했다.


개혁의 출발은 규제완화, 시스템 설립과 과제 발굴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영국의 대처 정부가 혁신적인 규제완화정책을 도입, 추진한 이래 개혁정책으로서 규제완화는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 1930년대 대공황이후 세계 각국은 자국의 이익보호를 위해 다양한 규제를 도입했는데, 이로 인해 누적된 규제가 1970년대 불황의 원인이 됐다. 따라서 1980년대 규제개혁은 당연히 누적된 비효율적 규제들의 청산이었고 정책의 중심주제가 규제완화(deregulation)였다. 규제의 편익과 비용을 비교하여 분석해야 하는 의무기반도 이때 만들어진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 규제완화를 위한 대대적 개혁정책이 추진된 시기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을 찾아야했던 김대중 정부시절이다. 이 당시 등록규제와 같은 규제관리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설립됐고 개혁과제 발굴이 활발히 추진됐다. 특히 등록규제의 3분의 1을 폐지하는 과감한 규제단두대(regulation guillotine) 정책은 이전까지 누적됐던 국수주의적 이익보호규제를 개혁함으로써 글로벌 수준으로 다가가는데 일조하게 된다. 당시 숫자적 폐지가 무의미하다는 반론도 제기됐으나, 효과는 획기적이었고 역대 가장 성공적 개혁성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받고 있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면 재(再)규제로 회귀


대중은 규제완화로 인해 증가된 불확실성을 참기 어려워한다. 그렇다보니 이처럼 규제완화에 따른 불안함을 줄이기 위해 정치권은 오히려 규제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재규제(reregulation)적 정책을 수행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규제개혁을 반대하는 복병은 아이러니 하게도 규제개혁 추진 내부에서 나타난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1억달러 이상의 중요규제만 집중적으로 분석하자는 취지의 정책을 발표하면서 레이건 대통령의 규제개혁 행정명령을 폐기시켰다. 이 조치로 미국 규제정책 담당부서로서 매년 수천 건의 규제분석을 처리했던 규제정보실(OIRA)은 이후 200-300백건 정도만 처리하는 작은 조직으로 현재까지 남게 됐다. 오바마 정부는 심지어 규제분석에 있어서 형평성, 공정성, 인간의 존엄성, 분배적 영향 등과 같은 정치적 가치관을 규제평가항목에 포함시켰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정부가 도입한 규제영향평가제도에 다양한 개념의 영향을 검토하도록 하여 규제분석의 방향에 혼동을 초래했다.


규제개선을 위해 필요한 불확실성에 대한 수용능력과 인내심


규제완화와 재규제라는 반복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규제(the better regulation)” 개념을 탄생시킨 것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였다. 블레어 총리는 사건 사고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 규제적용보다 이를 고지하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험을 강제적으로 축소시키기 위해 규제할 경우 오히려 창의성과 경제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나 인도처럼 낮은 규제수준과 높은 리스크를 허용하는 국가에서 보다 더 신속한 혁신이 나타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영국에서 네덜란드식 기업에 대한 직접적 규제비용산정을 이용한 규제비용총량제 시스템을 생각해낸 것이 이때의 일이다. 규제를 통해 위험을 완전히 줄일 수도 없을뿐더러 비용부담만 양산하게 되므로, 국가는 차라리 비용부담의 증가를 막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캐머런 정부에 이르러 시작된 규제비용총량제 “One-in-One-out”은 캐나다와 호주, 프랑스에 보급됐으며 이제는 미국의 트럼프 정부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더 나은 규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얼마나 위험과 불확실성을 허용하고 인내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위험감소와 불확실성 축소를 위해 대규모의 사회적 비용을 부과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만큼 강한 규제가 적용되고 따라서 창의성과 경제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리스트로 규제방식을 전환하고 사전규제를 사후적 규제로 전환해도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국민적 인내심이 지원해 줘야 “더 나은 규제”로 개선될 수 있다. 따라서 성공적 규제개혁을 위해서는 불확실성에 대한 수용능력과 인내심을 높일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함께 제고하는 노력이 동반되어야할 것이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 / kim@keri.or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