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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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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나라에는 유럽의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 시스템이나 제도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정책을 만들 때면 항상 “스웨덴을 보라, 혹은 북유럽을 보라. 저렇게 잘 살고 있지 않는가, 우리도 유럽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모델에 우호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한국이 “유럽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열성적으로 주장한다.


지난 3월 12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는 11년 동안 유럽의회에서 활동해 온 다니엘 한난(Danniel Hannan)씨의 의미 있는 기고문이 실렸다. 칼럼의 제목은 “한 유럽인의 미국에 대한 경고”이다. 영국 출신인 한난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 미국의 정책 변화를 유심히 지켜본 결과 “더 공정한 미국, 더 참을성 있는 미국, 덜 오만한 미국, 더 열심인 미국”을 표명하고 있지만, 이를 솔직한 언어로 표현하면 “더 높은 세율, 더 적은 애국심, 더 큰 정부 그리고 국제기관들로의 권력 이동”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런 정책들의 변화를 두고 “나는 요즘 미국인들이 진정으로 유럽식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른바 미국의 ‘유럽화’의 의미와 결과에 대해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유럽모델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은 착각


오랜 의회 경험을 통해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세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럽모델이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은 착각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유럽이 거둔 성과의 상당부분은 행운 때문이었다. 행운을 가져다 준 요인은 전쟁 피해를 복구해야 하는 특별한 상황, 미국에서 들어온 자본 그리고 당시까지 성실함을 겸비하였던 인적 자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하지만 이런 행운이 계속될 수만은 없다. 행운이 다하였을 때부터 유럽의 어려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지적이다.


둘째, 유럽이 미국식 자본주의도 아니고 소련식 전체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런 주장은 유럽이 지속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거두고 정부의 지출 확대 정책을 합리화하였을 뿐 전혀 새로운 길은 아니다. 흔히 ‘제3의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런 선택은 결국 큰 정부를 합리화하는 미사여구(美辭麗句)에 불과하다. 유럽의 선택은 개인으로부터 국가를 향한 힘의 이동을 의미할 뿐이다.


셋째, 유럽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장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구조적인 장기 실업이 유행하고 사회와 경제가 모두 침체되는 사회로 나아가고 말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40년간 경제적 데이터는 명백하다. 유럽은 미국의 삶의 수준보다 점점 뒤처지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유럽은 장기적이고 높은 실업률에 적응해 버리는 어이없는 일까지 발생했다. 유럽처럼 정부의 크기를 늘리고, 양적 완화정책을 실행하고, 자유시장에 규제를 늘리자 미국의 실업률도 유럽처럼 높아졌다.”


한난 의원은 기고문의 끝에 자신이 이런 조언을 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한 영국인으로 자신의 조상들이 가져왔던 자유와 개인의 권리 및 의무에 대한 확실한 사상들이 이제껏 미국에 잘 스며들어 있었음을 보아왔고, 이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비뚤어지지 않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미국이 유럽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배워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칼럼을 쓴 이유라고 말한다.


단기이익과 장기이익 사이에 균형 유지할 수 있는 현명함 필요


불우한 사람을 돕는 일은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도움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스스로 자활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보조금을 지불하는 정책으로 탈바꿈되지 않아야 한다. 유럽모델은 불우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순수하고 따뜻한 소망들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역사적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유럽 사회의 침체와 구조적인 고실업이 그들에게만 특별한 현상일까? 결코 그들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유럽의 경험으로부터 한국 사회도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결국 이런 저런 명분으로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는 주장들이 정책화되고 늘어나는 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도 역시 더 많은 세금, 더 큰 정부를 선호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혜택을 보는 사람에겐 달콤함 그 자체이겠지만 경제에 건너뛰는 법은 없다.


어떻게 이런 추세를 막을 수 있을까? 결국 사람들이 단기이익과 장기이익 사이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현명함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더욱이 한국 사회는 지적 토대나 역사적 경험에서 이런 추세를 막기엔 허약한 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개인의 권리 및 의무를 중시하는 것이 번영으로 가는 길임을, 누군가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일을 맡아야 할 것이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gong@g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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